리뷰/영화이야기

지루하지만 멋지다! ‘헤이트풀8’

朱雀 2016.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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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관객에게 기대이상의 뭔가를 항상 안겨준다. 이번 ‘헤이트풀8’ 역시 그렇다! 영화가 시작하면 새하얀 설원위를 질주하는 짐마차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 짐마차는 시체들을 쌓아놓고 길을 막고 있던 현상금사냥꾼인 워렌 소령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그는 흑인이다.



짐마차를 전세 놓은 존 루스 역시 현상금사냥꾼인데, 놀랍게도 그가 호송중인 죄수는 여자로 데이지 도머그다. 존 루스는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자신의 손과 그녀의 손에 사이좋게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눈보라가 뒤쫓아오는데, 이런! 얼마 가지 않아 또 한명의 불청객이 짐마차에 올라타게 된다.






바로 자신을 레드락의 새 보안관이라 소개하는 크리스 매닉스다. ‘헤이트풀8’는 이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아마 여기까지만 봐도 ‘지루하다’고 느낄 국내관객은 꽤 많을 거라 여겨진다. 충분히 동감한다.



최근 필자가 본 영화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빠른 편집과 전개를 자랑했다. 따라서 눈밭을 달리는 말들을 한참동안 보여주고, 짐마차 안에서 네 명의 사람들이 수다를 한참동안 떠드는 것을 봐야 하는 것은 관객에게 참을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건 그들의 목적지인 레드락에 도착하기 전에 들른 잡화점에 가면서 더욱 심해진다. 거기엔 수상한 멕시코인 밥과 교수형 집행인이라는 오스왈도 모브레이, 성탄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어머니를 찾아간다는 조 게이지, 아들을 찾으러 왔다는 샌포드 스미더스 장교들이 먼저 와 있었다.



워렌 소령의 시선은 잡화점 이곳저곳을 관찰하면서 이곳이 ‘몹시 수상한 곳’임을 관객에게 알린다. 이윽고 눈보라는 너무나 심해지고 9명의 사람들은 잡화점에 갇혀서 며칠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헤이트풀8’은 아마 여기까지 진행되는 게 거의 절반 이상의 상영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다.



심한 눈보라 때문에 문을 열때마다 '발로 차'라고 하고, 들어오면 '못 박아. 판자는 두개로'라는 외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웃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헤이트풀8’에서 돋보이는 부분은 우선 ‘엄청난 양의 대사’다! 원래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캐릭터들은 말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특별한 유흥거리가 없는 서부시대가 배경인 탓일까? 아님 고립된 잡화점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탓일까? 특히 인물들간의 대화가 무척 많고, 그들의 대화는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나 그 대화들 사이사이에는 서로간의 불신을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정보들이 숨어있다. 우린 배우들의 대화를 통해 데이지 도머그를 구하기 위해 온 인물이 누구인지 추리를 하게 된다. ‘헤이트풀8’은 존 루스가 독약이 든 커피를 마시고 피를 쏟고 죽게 되면서 긴장감이 최고조로 이른다.



그 이후 ‘헤이트풀8’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답게 피가 넘치고 눈쌀이 찌푸려 질 정도로 신체훼손이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헤이트풀8’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요 등장인물인 8명은 모두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시대배경이 남북전쟁이 일어난 지 얼마 안된 탓에, 흑인인 워렌 소령은 백인에 대해 엄청난 증오심과 복수심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을 상대로 무자비한 살육을 펼친 사실은 (아무리 전쟁중이라지만) 관객의 입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존 루스 역시 현상금사냥꾼으로 살아왔기에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자신을 신임보안관이라 소개했지만 크리스 매닉스 역시 남부군 출신이라 흑인에 대해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그의 과거 역시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헤이트풀8’은 많은 정보가 관객에게 주어지지만 그것들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감추려고 하는 것을 관객이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소수의 등장인물을 폐쇄적인 공간에 몰아넣고 그들이 치열한 심리전과 총싸움을 하는 것을 관객이 즐기게끔 유도한 부분이다.



소수의 인물을 폐쇄적인 공간에 집어넣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명연기 그리고 감독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를 비롯한 제작진과 쟁쟁한 배우들은 이런 ‘미션 임파서블’을 훌륭하게 해낸다!



사무엘 잭슨, 커트 러셀, 제니퍼 제이슨 리, 채닝 테이텀 등등 출연배우들은 정말 서부시대의 인물들처럼 완벽하게 행동한다. 또한 처음엔 다소 지루해 보이던 영화는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이윽고 하이라이트부턴 결말까지 정신없이 질주한다.







물론 영화는 피가 난무하고 신체가 훼손되기 때문에 관객의 취향에 따라선 반감을 일으킬 만 하다. 또한 요즘 영화답지 않게 무려 168분에 이르는 상영시간은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지루한 감이 있다. 그러나 대화들은 곰씹어볼만한 구석들이 많으며, 대사와 장면 사이사이에는 힌트와 상징들이 풍성하게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흑인 현상금사냥꾼과 여성 죄수는 흥미로운 설정이다. 왜냐하면 기존 서부영화에서 흑인은 중요역활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는 ‘장고:분노의 추적자’를 통해서 그런 공식을 과감히 깬 전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재밌는 설정은 잡화점이 문이 고장나서 판자와 못으로 고정시키는 장면이었다. 서부영화를 보면 발로 차서 부시고 들어가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를 보여준 영화는 없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한번 망가진 이후’ 내내 문을 열때마다 발로 차고 다시 판자와 못으로 고정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특유의 블랙 유머를 보여준다.



그뿐인가? 남북전쟁에 대한 입장차이, 흑인과 백인의 갈등,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등을 들려주며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또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만큼 무수한 총격전이 벌어지며 시원시원한 액션신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헤이트풀8’는 기존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환영할 만한 요소들로 가득차 있다. 반면 빠른 전개와 편집의 최신영화 추세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상당히 지루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인내심을 가지고 볼 수 있다면, 다른 영화들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아우라를 느끼게 될 것이다. 영화마니아라면 도전(?)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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