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0일 ‘내부자들’은 누적관객수 700만명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더욱 빛이 난다. 그리고 지난 12월 31일 3시간 버전인 감독판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이 개봉되었다.
무려 50분이나 추가된 버전. 당연한 말이지만 10분만 상영시간이 늘어나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 하물며 50분이나 추가되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로 봐야만 한다.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은 일단 오프닝과 엔딩이 달라졌다!
오프닝에선 안상구가 호텔에서 기자와 일대일과 인터뷰하는데, 뜬금없이 영화 ‘차이나타운’을 이야기한다. 1974년작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잭 니콜슨이 맡은 사립탐정이 코가 망가진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오른손이 의수임을 밝힌다.
그러면서 자신이 벌인 일이 단순히 정의감이나 복수심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어찌보면 안상구는 지극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미 법전식 정의에 충실한 인간이다. 그는 거창한 사회정의니 무협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복수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저쪽에서 내 손을 가져갔기에 나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가져와야 한다는 식의 무시무시한 계산을 하는 인간이다. 어찌보면 안상구는 괴물이다. 그는 정치깡패로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따라서 그가 ‘억울하다’란 식의 말은 어이가 없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아무런 죄없이 당해야 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그러나 그가 상대해야 될 인간들이 유력 대선후보와 유력 일간지의 논설위원처럼 어마어마한 인물들이라 우린 상대적으로 약자인 안상구를 응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상구에게 온갖 범죄를 사주했고, 밀실에서 권력을 좌지우지 하며, 국민을 짐승으로 여기는 태도는 우리에게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에 관객이 열렬한 반응한 것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단죄’일 것이다! 안상구는 비자금파일을 입수한 댓가로 오른손이 잘렸다. 논설위원 이강희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안상구에 의해 도끼로 오른손목이 잘린다.
‘내부자들’의 가장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섬뜩하면서 동시에 통쾌하다! 왜냐하면 그는 논설위원으로서 진실과 사회정의가 아니라, 오로지 개인의 출세와 권력자들의 입맛에 철저히 맞춘 거짓을 남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생 그렇게 삿된 글을 써온 그의 죄는 단순히 감옥에 가는 정도가 아니라, 손목이 잘려나가는 집행이 필요하다고 관객은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에선 정의가 실현된다! 유력 대선후보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권력에서 멀어지고, 그렇게 오만하던 미래자동차 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다. 물론 이강희는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내부자들’에선 끝내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히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강희는 몰라도, 미래자동차 회장과 유력 대선후보가 감옥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선 이강희가 전화통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백윤식이 홀로 독백하는 이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을 ‘오징어다리’에 비유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오른손이 없으면 왼손으로 쓰겠다’라고 말한다. 안상구가 비록 그의 오른손을 가져가고 우장훈은 내부자가 되어 그의 단죄엔 성공했지만, 결국 그에게서 펜을 빼았진 못했다. 이강희는 감옥에서조차 자신을 위해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권력자들을 위해 펜대를 굴리게 될 것이란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의 결말은 꽤 충격적이다!
검찰을 나온 우장훈과 감옥에서 출소한 안상구가 옥상에서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을 말하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함께 기억하던 이전 극장판과 다른 결말은 관객에게 찝찝함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건 현실에 가깝다. 현실의 재벌과 권력자들은 죄를 지어도 감옥에 잘 가질 않고, 설혹 감옥에 간다고 해도 일반 죄수들과는 다른 대우를 받는다.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을 보면서 놀라운 점은 3시간에 이르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백윤식, 이병헌, 조승우의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고, 이경영, 김홍파, 조재윤 등의 조연들의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고, 우리 사회의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풍자적으로 그려낸 모습들은 관객이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전 극장판에선 모두 삭제되었던 편집부 회의 장면은 일간지의 편집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는 지와 함께 ‘언론’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읽어보면, 단어의 정의를 바꾸고 개수를 줄여서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려는 지배층의 모습이 풍자적으로 그려진다.
얼마전까진 그런 모습을 그저 하나의 ‘풍자’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서 보여진 조국일보의 모습이 그렇지 아니한가? 이강희는 단어 하나에 고민한다. 그는 ‘팩트’를 늘 입에 붙이고 살지만, 팩트보단 그걸 어떻게 조작해서 자신의 입맛대로 논설을 쓰고 여론을 조성할지에 집중한다-이건 단순히 신문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적용되는 부분이리라-.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서 그가 ‘숨겨진 권력자’로 그려진 것엔 그런 이유가 존재하리라.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이 개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내부자들’이 700만을 넘기는 엄청난 흥행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나마 통쾌함을 주었던 영화가 관객에게 더욱 찝찝함을 남기는 여운을 주는 감독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에서 안상구와 이강희는 ‘정의’에 대해 ‘달달한 것’이라 말한다. 아마도 대다수 관객들은 그 말에 동의하고 한숨을 쉴 것이다. 그러나 한숨만 쉰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영화는 달라진 엔딩을 통해서 관객이 좀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쉽게 중요한 이슈를 잊지 말고, 선거를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정치권에 경고와 단죄를 하길 바라는 게 아닐까? 그래야 우장훈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의 후손들은 좀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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