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왜 ‘귀향’을 봐야만 하는가?

朱雀 2016. 2.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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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를 이토록 두고 예매와 취소를 반복한 적이 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위안부’ 관련 다큐와 드라마는 늘 피했다. 가슴이 아픈 수준을 넘어서서 살아가는 것이 죄스럽고 면목이 없는 탓이 컷다. ‘귀향’ 개봉 소식을 듣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끝에 예매했지만 함께 보기로 한 일행이 감기로 약속을 취소하면서 고민은 더욱 커졌다. 일단 취소하고 다시 그 자리에 혼자 예매했다가 다시 취소하고, 개봉일에 어떻게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다시 예매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했다.



‘귀향’을 볼 엄두가 나지 않은 탓이었다. 유대인 학살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비록 끔찍하지만 ‘남의 일’로 치부하고 ‘쉰들러 리스트’ 같은 영화를 나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귀향’은 다르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아직도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계신다.





지난 2015년 12.28 한일협정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당사자들인 할머니들에겐 아무런 의논도 없이 멋대로 밀어붙였고, 말도 안되는 협상 결과에 대해 할머니들이 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집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으며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한분씩 한분씩 소천하고 계신다. 따라서 ‘귀향’을 보는 것은 나에겐 커다란 죄스러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왜? 어른으로서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주’는 비록 부끄러움일지언정 영화는 나름 볼 수 있었지만, ‘귀향’은 아무런 죄없는 소녀들이 짐승만도 못한 일본군에게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일제강점기가 끝난지 그 언제인데 아직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국민의 한명으로서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그저 죄스럽고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귀향’의 내용은 새로울 것이 없다. 1943년 열네살 밖에 안된 소녀 정민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군의 손에 떠밀리듯이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 기차를 타고 중국 길림성의 한 일본군 부대 가운데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여성으로선 차마 상상도 못한 끔찍한 형벌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단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귀향’의 수위는 매우 낮은 편이다. 그러나 어린 소녀들이 일본군의 매질에 무참히 당하는 모습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고, 그들이 짐승 같은 소리를 울부짖을 때는 그저 ‘어서 화면이 지나갔으면’이란 생각만으로 가득찰 뿐이다.



왜? 그것은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답답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살아남은 영희가 죽은 정민을 무당의 빙의로 만나는 것은 살아남은 자로서 죄스러움을 한을 풀기 위한 장치였다. ‘귀향’에서 무당이란 존재가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엔 나름 이해가 된다.






일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굿과 무당이란 문화에 익숙한 세대이고, 무당이란 존재를 통해 한을 풀어오셨다. 대한민국은 죄스럽게도 할머니들께 무엇하나 제대로 해드린 게 없다. 그런데 어떤 존재나 단체가 영화에 등장해서 그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죄스러움을 풀어드릴 수 있을까?



‘귀향’에서 무당이란 존재가 등장하고 죽은 자와 산자가 만나는 것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귀향’은 철저하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에서 만든 작품이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에 대해, 당시 일본군의 상황에 대해, 위안부에 대해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책이나 관련 자료를 통해서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귀향’은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제 몫을 다해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진행중인 안타깝고도 답답한 역사의 한 대목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되야 할지 다시금 고민해야할 대목이지 않을까?

 





‘귀향’을 본다는 건 관객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과연 일억분지 일이나마 될 수 있을까? 우린 아직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직시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고민과 행동이 필요하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직 살아계실때 뭔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후손인 우리들이 노력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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