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위저드 베이커리 - 악마의 시나몬 쿠키

朱雀 2009. 6. 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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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구병모 (창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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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안드는 상대에게 먹이면 2시간 동안 내내 실수만 하게 만드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사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생겼을때 먹이면 100% 확실한 노 땡큐 사브레 쇼꼴라, 시험이나 출장처럼 중요한 일을 앞둔 시점에서 도와주는 마인드 커스터드 푸딩...

 

실제로 있다면 한번쯤 사용해보고 싶은 음식들. <위저드 베이커리>는 판타지와 동화 그리고 호러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어린시절 엄마에게 이끌려 청량리역에 버려진 경험이 있는 열여섯 살의 주인공은 그 이후 말을 잘 하지 못하게 되었다. 엄마의 자살 이후, 아버지가 재혼한 새어머니와 딸은 그에게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주인공을 못마땅하게 여긴 새어머니는 여러 가지 자잘한 핑계를 들어 그를 못살게 군다. 그러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새동생 무희가 강간을 당한 것. 새어머니의 추궁을 견디다 못한 무희는 범인으로 주인공을 지목하고, 그는 쫓기듯 나가 위저드 베이커리로 들어가게 된다.

 

알고 보니 마법사인 점장이 온갖 마법의 효능을 지닌 빵을 만들어내고, 인터넷 등을 통해 그 효능을 체험하고자 오는 군상들의 모습은 씁쓸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마음이 동해 빵을 이용해 연인이 되었지만, 이내 졸업 후 백수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 우등생인 동급생이 싫어서 설사를 하게 만들었다가 그녀의 자살로 인해 괴로워하는 여고생 등. 그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통해 보여지는 현대인의 모습은 흉칙하기짝이 없다. 게다가 그들은 진심으로 뉘우치지도 않는다. ‘그저 호기심에 했다’란 식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보여지는 설정과 이야기들은 기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다른 판타지 소설에서 써먹은 소재들이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는 재밌고, 새롭다. 그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학벌지상주의에 빠져버린 부모와 아이들. 무한경쟁에 내몰려 친구를 ‘친구가 아닌 경쟁상대’로 보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이기심의 끝을 달리는 현대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들을 향한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나는 이에 반대한다. 이건 청소년용 소설이 아니다! 현대인을 위한 우화다.

 

구병모 작가는 세밀하고 농익은 묘사로 <위저드 베이커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금방이라도 한입 베어먹고 싶은 빵과 과자를 묘사하며,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식객>의 그것처럼 세세히 묘사한다. 빵에 얽힌 개개인의 사연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다중결말을 취한 방식은 새롭다고 하긴 어렵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 마음에 든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무슨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보면 ‘존재’니 ‘철학’이니하며 현실의 독자를 외면한 채 자신들끼리 ‘예술’하는 듯한 경향을 보여왔다. 그런 탓에 현실의 독자들과 괴리되어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해버렸다. 오늘날 많은 독자들이 한국 소설이 아니라 일본 소설을 찾는 이유는 그런 탓이 클 것이다. 그러나 <위저드 베이커리>는 그렇지 않다. 바로 우리 근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입시에 짓눌린 아이들. 삐뚤어진 욕망에 몸을 내어맡긴 어른들. 그들이 펼치는 이야기들은 씁쓸하다.

 

동화라면 아름답게 포장될 이야기들이 여기선 핏빛으로 물든 잔인한 현실로 묘사된다. 그런 탓에 우린 더더욱 <위저드 베이커리>에 가고 싶어진다. 작품의 소재와 이야기 구성에 참신성은 아주 높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 최대한 가깝게 붙여내어 현실감을 높였다. 오늘날 우리가 무슨 고민을 하는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있는지 작가는 애정을 가지고 써내려갔다.

 

비록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과 상관없는 판타지가 아니기에 읽는 이의 마음은 더더욱 아파온다. 별 다섯 개는 주지 못하겠다. 그러나 흡인력 있는 묘사력과 스토리텔링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런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보면 국내 소설의 미래도 어둡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기대 없이 본다면 꽤 재밌게 볼만한 책이다.

 

마음만 먹으면 두 세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적당한 분량도 현대인의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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