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정치인이라면 꼭 봐야할 드라마 '체인지'

朱雀 2009. 7. 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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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하는 아사쿠라 총리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만나고 싶은 진정한 정치인이다. 그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상식적인 행동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 그런 정치인은 안타깝게도 거의 만날 수 없다.



요 며칠 정신없이 본 일본 드라마가 있다. 바로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한 <체인지>다. 시공 초등학교 교사인 아사쿠라 케이타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고, 결국엔 일본 총리까지 되면서 겪게 되는 일이 드라마의 주요한 내용이다.

총 10부작인 <체인지>엔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무라 타쿠야와 후카츠 에리 그리고 아베 히로시 등이 등장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드라마의 강점은 재밌는 판타지 정치드라마란 사실이다.

정치 1년차인 초선 국회의원(그것도 이제 겨우 35살인)이 일본 총리대신이 되는 일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이후 정치판에서 펼치는 일들이 파격적이라 눈감아 줄 수 밖에 없다. 18년전 자신이 아닌 죽은 아버지가 벌인 부정에 대해 그는 지역구 주민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빈다. 용산참사로 철거민 다섯명이(그것도 불에 타서 참혹하게) 죽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지 않는 우리 사회에선 더더욱 울림이 클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초년 국회의원 때는 35마리의 들고양이를 주워와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는 한 시민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총리가 되어선 누구보다 먼저 재해현장에 가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성실하게 들어준다. 그건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다. 그는 비서진들과 밤새 서류를 뒤지고 상의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결국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선거때면 간이라도 내줄 듯 행동하다가 당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를 꼿꼿이 들고 국민위에 군림하려 드는 국회의원만이 판치는 세상에서 우린 바로 이런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중요한 고비 때마다 아사쿠라 케이타가 하는 말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상식적인 이야기들 뿐이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해 일하기 위해 뽑혔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고, 아무리 오래전에 저지른 부정이라도 그것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라고.

또한 그는 일본 정계에서 가장 높은 총리직에 있으면서도 건방지지 않다. 일반 시민이 그에게 하소연해도 충분히 들어준다. 자신과 남이 의견이 다른 것을 인정하고 함께 토론해 보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쓴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그건 듣는 귀가 적다는 사실이리라. 서로들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떠들고 남의 의견을 도통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당이 방침을 정해면 자신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찬성표를 던진다. 그것이 국민의 이익과 의사와 맞는지는 관심도 가지지 않고.

극중 주인공인 아사쿠라가 다른 정치인과 차별되는 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국회의원 등과 만났을 때 자신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을 다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선 바로 인정하고 경청한다. 이건 분명히 교과서에 나오는 가장 지식인의 상식적인 태도이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선 거의 지켜지지 않는 규칙중 하나다.

아사쿠라는 상냥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휘둘리기에 쉬워 보인다. 사실 극중에서도 아사쿠라가 총리가 된 이유는 노회한 정치인 칸바야시가 자신의 의중대로 정치를 운영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아사쿠라는 노회한 정치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차츰 그와 대립각을 세운다.

아사쿠라 총리는 부드럽고 상냥하지만 국민의 이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가차없이 강한 모습을 보인다. 미국 농수산물의 수입을 크게 늘리고자 온 대표와 일전을 불사하고 그가 최후통첩으로 “미국과 싸우자는 겁니까?”라고 협박성 멘트를 날려도 “국민을 위해서라면 싸우겠습니다”라고 결연하게 답한다. 동시에 “우린 각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직자입니다. 따라서 의견이 상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신 여러 차례 대화를 해서 서로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냅시다”란 말을 정중하게 건넨다. 특히 이 부분은 미국산 수입쇠고기 문제가 전면에 떠오른 작년에 인터넷을 떠돌던 영상이었는데, 보면서 당시 우리 상황과 너무 비교되면서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 인상 깊게 본 장면이기도 했다.

<체인지>는 일본 만화 같은 작품이다. 만화식 이야기 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니다. <체인지>를 보면 일본의 정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움직이는지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아들이, 아들이 없으면 부인이 물려받는 형태이며 거대한 관료체계에 맞춰 움직이는 정계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총리의 과다한 업무량은 그가 봐야할 산더미 같은 서류와 살인적인 스케쥴 그리고 각종 위원회 회의등에서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모든 그러한 과정에는 충분한 설명이 뒤따른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설정이지만 제법 긴박감 넘치는 연출로 오히려 극의 흥미를 돋아준다.

<체인지>는 ‘정치’가 철저히 중심이 된 드라마다. 우리나라 같으면 ‘연애하면서 정치'하겠지만, 아사쿠라 총리와 비서 미야미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만이 있을 뿐, 자신들의 애정을 겉으로 표현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체인지>에선 그 흔한 키스신 조차 없다. 중간에 한번 정도 다른 이유로 조심스럽게 포옹하고, 서로의 마음을 모두 밝힌 마지막에서조차 수줍게 손 한번 잡을 뿐이다.

한 마디로 ‘로맨스’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양념의 역할이며 그들의 감정은 살짝 드러날 뿐이다. 철저하게 총리대신을 중심으로 일본 정계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 보여주는 게 <체인지>의 목적이다. 의례적으로 내놓는 차를 폐지하기 위해 관료 체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 결국 차관과 총리가 담판을 짓는 장면은 관료사회가 얼마나 타성에 젖어 움직이는 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체인지>같은 드라마가 일본에서 나온 이유는 아마도 썩은 정치에 대한 환멸감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낸다. “정치계는 더럽다”가 그들의 논지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은 그들의 권력을 누리고 이어가고 커가기 위해 갖은 냄새나는 뒷거래를 한다.

자신들이 행사한 한표가 매번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좌절한 이들이 늘어간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관료사회에서도 국민의 이익을 위해 밤새 잠도 못자고 서류와 씨름하고, 국회에서 핏대를 높혀 외치는 국회의원들 또한 있다. 그저 상대적으로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체인지>는 그러한 부분을 바라봐줄 것을 호소한다. 아사쿠라 내각이 저지른 부정 때문에 끝내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아사쿠라 총리가 TV 생중계로 무려 22분이 넘게 보내는 담화는 이 드라마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아무런 배경음악이나 효과음 없이 오로지 기무라 타쿠야 혼자서 진행하는 부분은 단 한순간의 점프 컷 없이 진행된다. 20분이 넘도록 국민에게 전하는 담화를 때론 담담하게 때론 감정에 북받쳐 눈시울을 붉히면 말하는 기무라 타쿠야의 혼신을 다한 연기엔 그저 감탄사가 연발될 뿐이다.

<체인지>는 판타지다. 현실에선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아사쿠라 총리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아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정 국민의 이익을 위해 며칠 밤을 세어가며 일하고 고민하는 인간적인 수장을 만나고 싶은 열망은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시민이 보아선 안 된다. 이건 정치가들이 꼭 봐야만 한다. 국민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국민의 표를 받아 국회의원을 선출된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적잖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체인지>의 아사쿠라 총리처럼 국민을 진정으로 생각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그런 정치인을 현실에서 만나고 싶다. 정말로 간절히...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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