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장현성의 미친 연기력, ‘여우누이뎐’

朱雀 2010. 8.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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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회를 남겨놓은 <구미호 : 여우누이뎐>은 보는 이들을 소름끼치게 하는 마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여우누이뎐>의 모티브를 준 <전설의 고향>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결과라고 본다.

 

<전설의 고향>의 경우, 시청자들에게 공포를 주기 위해 공포영화에서 자주 쓰는 방식을 차용했다.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거나, 갑작스런 소음 등을 이용한 음향효과로 공포감을 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이미 영화에서 많이 써먹은 방법이었고, 영화보다 예산과 표현에서 뒤질 수 밖에 없는 TV로선 공포감을 주는데 실패했었다.

 

그러나 <여우누이뎐>은 다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공포에 떤 것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15화역시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내면을 건드려 공포심을 일깨우는 <여우누이뎐>의 저력은 기실 배우들의 연기력에서 나온다. - 인간의 사악한 본성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는 그들의 사실적인 연기때문에 -

 

얼마전 연이의 혼령에 빙의되어 공포감을 주었던 초옥역의 서신애의 연기가 일품이었다면, 15화에선 죄책감에 시달리다 못해 서서히 미쳐가는 윤두수 대감역의 장현성이 그야말로 ‘미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15화에선 자신의 부인을 의심하다못해 결국은 칼로 찔러 죽이는 그의 모습은 소름끼치기 짝이 없었다. 구산댁의 정체를 알고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하는 양부인을 보고 오해한 윤두수는, 연이를 죽인 것도 부족해 구산댁마저 죽이라는 양부인의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그러자 답답한 마음에 양부인이 검을 내주고 충동질을 하자,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양부인을 오히려 찌르고 만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을 그녀에게 전가하는 윤두수의 모습은 소름이 끼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딸인 초옥을 아끼지만, 연이를 나름 아끼고 귀여워 했던 그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어린 연이를 죽여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초옥을 살리기 위해 연이를 죽이고 나선,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만신에게 써준 문서 때문에 행여 사또의 손에 그 문서가 들어가 자신이 ‘파멸’될까봐 이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해 그 공포감은 몇배로 불어난다.

 

자신의 자식을 위해선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우리처럼 말이다. 죽은 양부인을 비가 내리는 밤중에 들고 가서 몰래 내다버리고 ‘난 잘못이 없어’라고 되뇌이는 그의 모습은 현대판 햄릿을 떠올리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 술한잔을 하다가 술잔과 음식에 핏물이 떨어지고, 자신의 방에 피가 범벅이 되자, 책을 찢어 닦아내던 그의 모습은 또 어떤가? 사실 이런 장면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에서 본 유명한 장면이라, 아무래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워낙 장현성이 연기를 잘해 공포감이 전달될 정도였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연이의 목소리에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엔 귀를 틀어막고 졸다가, 종이가 빠져서 다시 소리가 들리자 두려워하다가 다시 귀를 막고 만족해하는 그의 모습 등은 흡사 블랙 코미디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15화에서 다시 느낀 거지만 한은정의 구미호 분장은 그다지 공포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끝없이 자신의 딸만 생각하는 양부인의 집착과 연이를 죽인 이후 미쳐가는 윤두수 대감, 그리고 연이의 혼령이 빙의된 이후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되는 초옥의 이야기가 뒤범벅이 되면서 이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15화에선 죄책감과 자신의 파멸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부인을 충동적으로 죽이고, 더 큰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윤두수 대감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장현성의 연기력에 그저 감탄사가 나올 뿐이었다. 그의 멋진 연기 덕분에 <여우누이뎐>은 그 어느 때보다 볼만하고, 공포심이 일어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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