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현아의 ‘170센티 남’ 이상형 발언이 씁쓸한 이유

朱雀 2010. 8.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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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꽃다발>에선 현아의 이상형이 170센티대의 남자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S파일이란 코너에서 포미닛 차례 때 ‘180’이란 숫자가 나온 탓이었다. 180이란 숫자를 보고 장영란이 반장난으로 ‘키 180이상만 사귄다’라고 말했고, 이에 포미닛의 권소현은 현아의 이상형이 ‘170센티의 남자’라고 밝혀, 장영란의 발언이 사실과 다름을 강조했다.

 

사실 포미닛이 ‘180’이란 숫자를 들고 나온 것은 멤버인 전지윤이 평소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매너와 달리, 180도 돌변한 아기 목소리의 애교를 보여준 탓이었다. 그러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현아의 이상형이 ‘170센티의 남자’라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씁쓸했다.

 

이전의 ‘루저남’ 사태가 떠오른 탓이었다. 당시 <미수다>에선 한 출연여대생이 ‘180이하는 루저’라는 발언을 했고, 이는 곧 사회적인 물의로까지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오늘날 젊은 여성의 이상적인 남자의 키는 보통 180이상이다. 그러나 전체인구로 따졌을 때 180이상의 키를 가진 남성은 불과 10%에 불과하다. 즉 ‘180이하의 남성이 루저남’이라는 소리는 전체남성인구의 90%를 ‘루저’로 만드는 발언이다.

 

만일 우리사회가 좀 더 마음이 넉넉한 사회라면 이런 발언은 그저 철없는 대학생의 발언이나 해당 방송사의 지나친 방송 정도로 치부되고 마무리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오늘날 우리사회는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대학생 때부터 소위 스펙쌓기에 골몰하고 있다. 무한경쟁에 내몰려 스펙을 쌓느라 여념 없는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위너와 루저로 구분하는 이분적인 시선에 분통을 터트리고 만 것이다. -그만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렸다는 반증이리라-

 

물론 키를 가지고 루저와 위너를 구분하는 말도 안 되는 이분법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키가 작아도 얼마든지 다른 매력으로 180이상의 키를 가진 이들보다 멋진 남성들이 수두룩하다! 따라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이라면 얼마든지 철없는 대학생의 발언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은 그 발언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심지어 인터넷에 해당 방송부분과 캡처사진이 나돌아 다니며 해당 발언자는 물론, 당시 함께 출연했던 이들의 관련 신상정보가 나돌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거센 비판과 격렬한 반응으로 당사자와 해당 프로 담당자는 거센 후폭풍에 어쩔 줄 몰라했다.

 

 

 

게다가 ‘루저남’사태는 <세바퀴>에 출연한 가희에게 엉뚱한 불똥이 튀고 말았다. 자신의 이상형을 묻는 박미선의 발언에 ‘183이상이면 좋겠다. 키 작은 남자는 싫다’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상형을 말했다가, ‘루저남’ 발언으로 오해를 사서 엄청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가희의 경우 하이힐까지 신으면, 170이 훌쩍 넘어 180에 이르기 때문에 그저 자신과 키를 맞출 수 있는 남자의 신체적 조건을 이야기한 것 뿐이었을 것이다. 허나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일부 시청자들은 이전의 <미수다>를 기억하며, 가희의 발언을 오해해 한동안 논란이 일어났었다.

 

반대로 현아는 164센티의 키에도 불구하고 170센티대의 남자를 이상형으로 밝혀 호감형이 되었다. -심지어 ‘하하 어때요?’라는 김용만의 물음에 ‘딱 그 정도’라고 말해 훈훈한 웃음을 샀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183센티의 이상형을 댄 가희의 발언이나 170센티를 말한 현아의 발언은 내가 보기에 별 차이가 없다. 그건 각자 개인의 취향이며, 말 그대로 이상형일 뿐이다. 실제로 사귀는 남성의 키는 그와 전혀 달라서 가희는 170센티대의 남자를, 현아는 180센티대의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왜 한쪽은 비호감이 되고, 한쪽은 호감이 될까? 그것은 대중이 ‘달리 해석’하기 때문이다. 내가 현아의 이상형 발언에 대해 씁쓸한 것은 같은 것을 놓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오늘날의 우리 때문이다.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인 사회. 그저 연예인이 자신의 이상형을 밝힌 것에 대해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이입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가 너무 각박하고 삭막하게 느껴진다. 이건 정말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관용과 이해’의 미덕이 사라진 사회라고 평한 다면, 너무 박한 것일까? 예능에 나온 여성 연예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웃고 화내며 반응하는 오늘날의 우리를 뭐라고 평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저 웃자고 한 이야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황당한 경우가 아닌가?- 그저 씁쓸한 미소만이 감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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