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당신이 생각하는 중국문화란 없다!

朱雀 2010. 11.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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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초상        출처: 위키백과

풍경 1: 현재 중국 전역에서는 설날 아침에 차례나 제사를 일체 지내지 않는다. 1949년 모택동이 중국인민공화국을 세우고 제사 등을 미신으로 규정하며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선 제사 지내는 것이 불법이다.  출처 : 교회신문

 

풍경 2 : 2004년 중국 산동성 곡부에선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 의식이 치러졌다. 중국공산당이 직접 주관하고, CCTV를 통해 국내외에 무려 4시간에 걸쳐 방송되었다.   참고 : 해럴드 경제

 

오늘은 간단한 문제로 시작하겠다. ‘풍경 1’을 보면 알겠지만, 중국에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은 물론, 제사지내는 방법 자체가 사라졌다. 그런데 ‘풍경 2’를 보면 중국 공산당이 직접 주도하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다. 50년이 넘게 지난 다음에 일반 제사도 아닌 대성현 공자에게 지낸다는 (그 까다롭고 어렵다는) 문묘제례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분서갱유때 처럼 문묘제례를 아는 이가 구전으로 전하거나 방법을 적은 책을 몰래 숨겼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비전을 전하는 비밀단체 등이 있어서 맥을 이어온 것일까?

 

아마 답을 들으면 조금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배워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묘제례가 남아있는 곳이다. 오늘날 미국과 더불어 G2라 불리우며, ‘희토류’로 일본을 외교적으로 누린 그 강대국 중국이 우리가 아니면 유교의 시조인 공자에게 제사조차 지낼 수 없다니. 이 무슨 희비극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경제-군사대국인 중국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개인적으론 그 원인을 세 가지에서 찾는다.

 

첫 번째는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중국과 전쟁을 하던 시기다. 이 시기에 일본은 만주국을 비롯한 괴뢰정부를 세우면서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서 노력하고, 다른 한편으론 우리에게 그랬듯이 최대한 중국 국보급 문화재들을 본국으로 침탈해갔다.

 

두 번째는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게 패배한 장제스 총통이 대만으로 간 때다. 당시 장제스 총통은 가져갈 수 있는 유물은 최대한 대만으로 옮겨갔다. 여기엔 청황실 보물 창고에 보관 중이던 국보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청황실의 보물 창고에는 청때뿐만 아니라 이전 시기의 중국의 황실 보물들이 보관되고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오늘날 무협지에서 온갖 ‘보물의 보고’로 묘사될 정도의 황실 보물을 들고 갔으니, 중국 본토엔 남아있는 중요한 문화재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196년부터 76년까지 벌어진 문화대혁명이다! 마오쩌둥이 실시한 대격변 시기엔 중국 내의 문화재가 파괴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곡부에 있던 (홍위병에 의해) 공자의 비석은 부셔지고, 그의 석상은 두 눈이 훼손되는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 공자의 유교 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종 명승고적과 문화재들이 모두 이와 같은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첫 번째-두 번째와 세 번째 사례가 결정적인 차이는 ‘자기부정’에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단순히 중국에 산다고 해서 중국인이 될 수 없다. 중국인이 되기 위해선 먼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유구한 문화유산을 발전-계승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의 손으로 공자를 비롯한 각종 선조의 문화재를 파괴했다는 것은 ‘역사적 단절’을 했다는 점에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라 본다(문화대혁명은 그런 면에서 '제 2의 분서갱유'라 부를 만 하다).


일본이나 대만으로 가져간 문화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찾을 수 있다. 혹은 서로 협의를 통해 최소한 연구를 위해 가서 볼 수나 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당시 벌어진 파괴로 인해,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스스로 부정한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오늘날 중국 역사학자들은 연구를 하기 위해선, 일본 국회 도서관과 대만 고궁박물관 그리고 우리나라를 방문해야만 하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중국의 문화침투..대응책 마련해야..

 

위의 링크기사를 보면 왜 중국이 ‘동북공정’에 기를 쓰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 본다. 만약 중국이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제례악이 한국의 것인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고 가정해보자. 중국정부로선 그 다음의 일은 상상조차하기 싫을 것이다. 중국이 우리에게 배워간 것은 단순히 종묘제례악이 아니다. ‘정신문화’다! 오늘날 중국이 서북공정이니 동북공정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남의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우겨서 다른 이의 영토를 편입시키려는 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중국의 것’이라 할 수 있는 전통문화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현실에 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그리고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문화가 완전히 단절되거나 잊혀져 버린 상황이다.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은 중국식 공산주의와 서구의 물질문명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중국과 중국인은 우리가 이전까지 가지고 있는 중국(중국인)의 이미지와 상당히 멀다. 일례로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법조차 잊어버린 상황이다.

 

중국 공산당이 그동안 철저히 부정했던 공자를 널리 알리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은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자신들의 위치에 맞는 문화를 전파해 공고히 하는 한편, 중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자신의 예악을 잊어버린 중국에게 그런 일은 마치 ‘모래위의 성’을 짓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게다가 각종 공정을 실시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도 나빠질 수 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공자의 유교 외엔 다른 전통문화가 여전히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엔 오늘날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자신들의 문화를 잃어버린 그들은 남의 문화를 자기 것이라 우기고, 이전까진 깎아내리기 바빴던 공자를 국가 유지와 선전을 위해 사용할 만큼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 물질(문명)에만 매달려 정신(문화)을 잃어버리는 것이 어떤 의미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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