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왜 노인과 젊은이는 지하철에서 싸우는가?

朱雀 2011. 2.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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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일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한 노인께서 말로써 여러 사람을 죽이고 다시 되살리는 ‘부활’의 기적을 행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하고 살펴보니, 지하철 한량의 끝쪽에 모여 다소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젊은이들을 향해 ‘조용히 해라. 등산 갔다 오는 게 벼슬이냐?’면서 훈계조로 나무라고 있었다. 다행히 젊은 측에서도 웃으면서 상대를 안했고, 노인도 자기 자리에 앉아서 별다른 마찰 없이 지나갔다.

 

그러면서 최근 겪었던 몇 가지 경험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앉아있다가 노인이 타시길래 자리를 비켜줬더니 당연한 듯이 앉으면서, 서 있던 노인분에게 ‘왜 서 계세요? 이쪽 자리는 법적으로 우리 껍니다. 젊은 것들한테 비키라고 당당히 요구하십쇼’라던가, 술 먹고 주정하는 노인을 향해 한 젊은이가 분을 참지 못하고 ‘저 하늘의 별이 되고 싶습니까?’라며 거친 언사를 내뱉은 일 등등.

 

아마도 비슷한 일을 많은 이들이 겪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두고 젊은이와 노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자주 본다. 지하철과 버스만큼 젊은이와 노인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일례로 요새 지하철과 버스의 경우엔 노약자와 장애인 그리고 임산부에게 특정 좌석을 양보할 것을 표시해놓는다. 우리 사회는 많이 개인주의화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는 이들이 많다. 문제는 몇몇 소수의 노인들이 그런 지정석을 ‘자신들의 권리’로 오해하는 부분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젊은이가 앉아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일어설 것을 요구한다. 많은 선량한 이들은 그냥 일어서주지만, 때때로 강하게 반발하는 젊은이들과 언쟁을 벌이게 된다.

 

왜 노인들은 ‘좌석’에 집착하는 것일까? 한글을 읽을 줄 몰라서? 누가 봐도 쉽게 그림으로 기호화 되어있기 때문에 그건 불가능하다. 그들은 그냥 ‘경로우대석’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난 여기에 슬픈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있다고 본다.

 

50대 이상의 노인들은 우리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 밥상에 앉아서 집안의 어른(할아버지나 아버지)이 수저를 드실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집에서나 마을에서 항상 노인들의 말을 모두가 존중해줬고, 그런 세상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어떤가?

 

예전처럼 노인이나 가장이 밥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아니 가족이 한 밥상에 앉을 일이 1년에 몇 번 있는 ‘행사’로 여겨질 정도다. 입시에 바쁜 아들은 새벽녘에 먼저 나가고, 딸은 다이어트 한다고 굶기 일쑤다(그러면서 방안에선 군것질 하고).

 

그뿐인가?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스마트폰이 자신이 쓰는 핸드폰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50대가 넘어서니 직장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네’라고 핀잔을 듣기 일쑤다. 마음 같아선 사표를 쓰고 나가고 싶지만, 집을 위해 그럴 수도 없는 상황. 한참 어린 나이의 상사가 ‘명퇴’를 강요하고, 집안에선 누구도 가장을 대접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지정석에 집착하는 것은 그것이 ’내가 당연히 차지해야 될 몫‘이란 생각이 앞선 탓이 아닐까?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게다가 가정에서까지 노인들은 밀려나고 있다. 오늘날 자식들은 경제적인 사정으로 봉양하고 싶어도 못한다. 직장에서 떠난 이후,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파트 경비 취직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눈앞에 보이는 좌석을 보고 ’내꺼야!‘라고 외치는 상황은 다른 면에서 보자면 그것 외엔 아무것도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오늘날 대한민국 노인들의 현실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핵가족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태어난 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정석은 ‘노인이나 임산부’등이 주변에 있지 않으면 앉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노인이 이를 나무라면 ‘임산부등이 오면 비킬께요’라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어린 시절 모르는 이라도 ‘노인을 공경하라’고 배운 노인들에겐 이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자 도전으로 비출 수 있지만, 젊은이들에겐 ‘말도 안되는 권리주장’에 대한 상식적인 대응일 뿐이다.

 

이렇듯 지하철 자리를 하나 두고 벌어지는 노인과 젊은이의 언쟁은 너무나 급격한 변화를 겪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가장 강렬하게 맞부딪치는 화제가 아닐까 싶다. 그건 언뜻 작아 보이지만, 작게 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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