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또 노예생활인가? 지겨운 영웅만들기, ‘계백’

朱雀 2011. 8.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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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계백>에선 그동안 멋진 카리스마를 보여준 무진의 멋진 퇴장이 이루어졌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가져온 살생부가 무왕에 의해 스스로 불태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안 무진은, 의자왕자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멋지게 희생하는 길을 택했다. -바로 자객이 되어 사택비를 죽이려 하고, 마침 옆에 있던 의자왕자를 이를 처단한다는 멋진 시나리오로 말이다-

 

물론 죄수가 그저 사택비를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토록 쉽게 황후의 곁에 접근할 수 있고, 이미 황후를 죽이려 했던 이가 다시금 쉽게 황궁무사들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 다시 발생했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워낙 등장인물들의 연기가 멋져서 그런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특히, 자신을 위해 그동안 희생해온 무진을 스스로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나온 의자왕자의 처지는 마치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안타깝게 여겨졌다. 게다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을 수 밖에 없는 계백의 모습 역시 '비극' 그 자체였다.

 

게다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무진을 끝까지 연모의 마음으로 대하는 사택비 역시 그동안 싸이코패스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피가 도는 인물로 그리기 했다. 이렇듯 드라마 <계백>의 전반부는 멋지기 그지없었다. 선화황후와 의자왕자를 위해 끝까지 충성을 바치는 무진과 그런 무진을 끝까지 사모의 정으로 대하는 사택비. 특히 차인표와 오연수의 연기는 그야말로 명불허전그 자체였다.

 



-도대체 전쟁포로라지만,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자가 왜 도망가지 않고 이런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거야?


그러나 국경 지대로 끌려간 계백이 신라군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고, 심지어 무기를 들고 고구려군과 싸우러 가는 전쟁노예(?)가 되버린 상황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처럼 사령관이 검투사가 된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하물며 국내 사극에서 영웅들이 가장 비참한 상황인 노예가 되었다가 왕처럼 가장 존귀한 자리로 오르는 이른바 인생역전’-아니 인생로또라고 불러야 하나?-를 이루는 상황은 너무나 자주 반복되어왔다.

 

지성이 주연을 맡았다가 호된 참패를 맛본 <김수로>도 그랬고, <광개토태왕>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계백>에선 계백을 포로로 잡고 있는 신라군의 우두머리로 김유신이 등장한다.

 

재밌게도 KBS사극 <광개토태왕>에서 담덕으로 열연중인 이태곤이 전에 출연한 <연개소문>에서 김유신네서 노비생활을 하는 갓쉰동(연개소문)으로 출연해서 묘한 '데자뷰'를 느끼게 해주었다.

 



-나중에 김유신과 계백의 황산벌 전투를 위한 포석이겠지만, 이들의 느닷없는 대결장면도
헛웃음을 유발했다. 도대체 이런 식의 대결구도 말고는 이야깃거리가 없나? 하고 말이다.


물론 찾으면 더욱 한도 끝도 없다. 물론 가장 비참한 노예나 전쟁포로같은 신분에서 자신의 노력이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살아남아 결국 자신의 무예나 범상치 않은 성정등을 내비치는 것은 무척 효과적인 장치라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상황이 그동안 국내 사극에서 너무나 자주 너무나 많이 반복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계백>은 이미 왕권과 신권대립이란 <선덕여왕>에서 써먹은 갈등구조를 고스란히 답습했다. 덕분에 초반에 시청자들로부터 ‘<선덕여왕>과 등장인물 빼놓고 바뀐게 뭐냐?’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했다.

 

게다가 오연수가 분한 사택비 역시 짝퉁 미실이란 오명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차인표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열연과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이제야 '<선덕여왕 2>'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공인 계백이 겨우 신라군의 전쟁포로로서 고구려를 비롯한 적국과 싸우기 위한 검투사 비스무리하게 쓰이다니. 쓴웃음을 짓는 시청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 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계백이 활약하던 당시는 삼국의 형세가 몹시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고구려는 수나라에 이어 당나라의 침공으로 어려웠고,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합공으로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백제 역시 성왕의 죽음 이후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국력이 날로 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굳이 주인공을 노예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삼국시대의 자료는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빼놓으면 변변히 남아있는 사서는 거의 없다. 작가의 상상력만으로도 역사의 빈구멍을 채울 수 있는 곳들이 차고 넘친다는 말이다.

 

국내 사극을 보다보면 작가들이 역사공부를 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동남품을 빌려오거나, 그전에 사극에서 많이 하던 것들을 고스란히 가져오거나 해서 말이다. 무진의 퇴장과 함께 일단락을 맺은 <계백>은 흥미로울 수 있는 주인공 계백 이서진의 등장을, 너무나 진부하고 식상하게 만들어 놓았다.

 

또 한번 국내 사극에서 너무나 많이 우려먹어서 더 이상 국물을 나올 건덕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노예에서 장군 만들기프로젝트가 어떻게 방향타를 잡아나갈지 귀추가 너무나 심히 멋들어지게 주목된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극에서 노예생활을 빼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되는 건지, 사극 작가들에겐 주인공은 반드시 노예생활을 거쳐야 한다라는 강박증이 왜 생긴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누가 옆에 서서 지키면서 반드시 주인공은 노예생활을 시켜라라고 협박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니면 사극용 정석에 반드시 주인공은 노예생활을 시켜라라고 쓰여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매번 반복되는 이런 상황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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