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키스신보다 숨막혔던 탱고신, ‘여인의 향기’

朱雀 2011. 8.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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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여인의 향기>를 보고 있노라면 탱고 지상낙원이란 비전을 가진 탱고 예찬론자들이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될 정도다. 그만큼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라는 춤은 멋지게 표현되고 있고, 다른 드라마에서 보여준 춤들과는 달리 보다 사실적이고 근사하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그중 백미는 어제 방송분이었다! 강지욱(이동욱)은 임세경(서효림)과 약혼반지를 고르기 위해 갔다가 결국 이연재(김선아)를 너무너무 보고 싶어져서 무작정 차에 올라 전화를 했고, 그녀가 밀롱가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결국 그녀를 안고 탱고를 추었다.

 

! 그때 탱고를 추면서 두 사람이 보여준 미묘한 표정의 변화와 몸짓은 그야말로 탐미적이었다! 서로 격렬한 호흡과 눈빛을 나누면서 나누는 몸의 대화는 그 어떤 키스신이나 배드신보다 격렬하고 자극적이어서 TV를 보는 필자가 가슴이 터져버릴 것 만 같았다. ! 어떻게 <여인의 향기>는 이렇게까지 탱고를 녹여내고 써먹는지 대단하다라는 찬사가 나올 지경이다.

 

이 탱고신 하나로 강지욱과 이연재의 마음이 너무나 격렬하게 표현되었다. 수백번의 대사와 지문보다 이 탱고신 하나로 우린 두 사람의 위험천만하고 가시밭길이 애정된 애정의 행로를 예견할 수 있게 되었다.

 

여주인공 이연재가 탱고를 배우게 된 계기는 또 어떤가?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고 떠난 오끼나와 여행에서 우연히 나이 지긋한 탱고댄서를 만나 추면서 삶에 대한 위로를 받게 된 탓이었다.

 

이연재는 외국인 할아버지의 품에서 우리말로 중얼거리면서 펑펑 우는데, 그 댄서는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다 잘될 거에요라는 식으로 다독거린다. 허나 말보다 연재를 위로하는 것은 춤 그 자체였다. 드라마 상에선 다소 생뚱맞아 보일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워낙 김선아의 서럽게 우는 연기와 아름다운 탱고 장면 때문에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연재는 서울로 돌아와서 탱고강습소(밀롱가)를 찾아가고, 거기서 윤봉길(임광규)를 만나게 된다. 회사에선 맨날 동전만 찾던 찌질남이 탱고강습소에서 람세스로 불리며 모든 여인이 손 한번 잡아주기를 꿈꾸는 상대라는 사실은 묘한 쾌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대머리인 그가 가발을 쓴다는 설정은 어쩐지 수오 마사유키의 영화 <쉘 위 댄스>속 캐릭터 토미오 아오키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뭐 설령 영향 받았어도 어쩌랴? 김광규는 이집트의 전설적 제왕인 람세스 대왕에서 따온 듯한 닉네임으로 춤판에선 화끈하게 바뀌었으니 그걸로 된 것이지.

 

-현실에선 별 볼일 없던 사내가 게임 세계에선 지존이 되는 것처럼 <여인의 향기>에서 그의 캐릭터는 묘한 쾌감을 주는 것 같다-

 

이연재에게 탱고는 삶에 대해 열정을 다시 불어넣은 춤이자, 사랑하는 강지욱과 더욱 가깝게 해준 춤이다. 관심이 가지만 멀리 할 수 밖에 없는 이연재를 쫓아가 우연히 들어간 밀롱가에서 탱고를 배우면서, 강지욱에게 탱고는 이연재를 향한 사랑이 되어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탱고는 혼자 추는 춤이 아니라 남녀가 짝을 이뤄 추는 춤이다. 따라서 다른 여인과 손을 마주잡을 때는 별 반응이 없던 강지욱의 심장이 연재의 손을 잡고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두근두근쿵쾅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탱고는 강지욱에게 이연재와 자신을 가르는 신분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레슨을 받는 데는 경제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탱고는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취미로 배우는 것이다.

 

따라서 일대일 레슨은 여러명이 함께 듣는 레슨에 비해 비쌀 수 밖에 없다. 초창기에 실력이 빨리 느는 것은 알지만, 돈이 없어서 단체강습을 고집할 수 밖에 없는 연재와 달리 강지욱은 재벌 2세인 만큼 개인선생을 두고 배울 수 있다.

 

밀롱가에 나오지 말고, 진짜 탱고가 배우고 싶으면 개인강습을 들으세요라는 연재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강지욱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강지욱은 우연히 영화 <여인의 향기>를 보고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는 장면을 보며, 연재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세를 잡고 이연재를 생각하며 탱고를 추는 그의 모습과 표정은 영락없이 탱고에 중독된 한 남자의 모습 그 자체이다.

 

25년 전 연재를 보고 쭈욱 짝사랑에 빠진 의사 채은석은 또 어떤가? 그는 이연재를 만나기 전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의사로 보였다. 하루에도 몇 명이 죽어나가는 병동에서 그가 자신을 다잡기 위해 진료에 한치의 실수도 허용치 않기 위해 그런 식으로 담장을 쌓은 것이리라.

 

그는 연재를 만나면서 그런 담장이 허물어졌고, 급기야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이제 연재만 보면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애잔한 눈빛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병원장에게 구박을 받고 개원 50주년을 맞이해서 의사들이 장기자랑하는 무대에서 탱고를 추겠다라고 공개 선언한 그는 탱고를 배우기 위해 연재가 다니는 밀롱가에 가게 된다.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늘 마음을 갖춰왔던 그는 연재의 손과 몸에 손을 올리면서 더할 수 없는 설레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렇듯 <여인의 향기> 속의 탱고는 단순히 드라마를 재밌게 해주기 위하거나 돋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이야기 전개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로 집어넣어졌다.

 

심지어 탱고를 다들 급작스럽게 잘 추는 것이 아니라, 현재 초보자의 수준에서 이제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단계로 설정한 점도 사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본다. 아울러 밀롱가에서 닭살 커플과 남자를 만나기 위해 온 듯한 여인과 느끼한 남자 수강생들의 조합은 나름대로 춤판에 대한 묘사와 코믹한 설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여인의 향기>를 본다면, 시청자들은 탱고를 배우고 싶다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될 것이라 여겨진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무의미한 생을 견디지 못한 맹인 퇴역장교 프랭크(알 파치노)가 여인의 대한 사랑을, 삶에 대한 열정을 탱고로 표현한 것처럼, 드라마 <여인의 향기> 역시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연재에게, 무의미한 삶을 살았던 강지욱에게, 일부러 냉혈한의 삶을 살았던 채은석에게 삶의 의미와 열정을 깨우쳐 주는 멋진 춤이라고 여겨진다.

 

심지어 이연재와 강지욱을 맺어준 큐피트까지 다양한 역할을 한 매개체이자 촉매제이자 극의 중심소재라고 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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