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번째 남자’의 한계는 어디일까? 필자는 매주 금요일밤 <천번째 남자>를 보면서 그저 감탄사와 찬사만이 나올 뿐이다. 몇 장면을 우선 열거해보겠다.
구미선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후 10년 동안 구미진이 마지막 남은 한 개의 간을 먹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 한다. 게다가 딸이 김응석에게 빠져서 거품이 되려고 하는 낌새를 눈치채고는 일부러 라스트 레스트랑으로 짐을 빼서 쫓아낸다.
그러자 오해한 김응석은 구미진과 함께 구미선을 만나서 설득하려고 하는데, 구미선은 말끝마다 ‘인간이 되지 못한’을 운운한다. 그러자 김응석은 ‘자신이 만난 사람중에 가장 인간답다’라고 말하면서 답답해한다.
사실 이건 정말 ‘말장난’에 불과하다. 구미선이 속상한 것은 구미호인 딸 구미진이 마지막 남은 한 개인 인간의 간을 먹으려고 하는 열성을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그래서 아직 여우인 딸의 상태를 그대로 말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김응석은 ‘인간이 덜 되었다’라는 우리 식의 표현법으로 오해하고 만다. 사실 이런 말장난은 너무나 식상한 것이기 때문에 웃기기는커녕 유치해지 마련이다. 그러나 너무나 뛰어난 세 배우의 연기와 적절한 대사와 연출은 그런 상황을 설득력 있게 바꾸었다.
특히 부모가 반대하는 관계인 두 사람의 처지에 빗댄 대사처리는 그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 충분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이 된 구미서-구미모 모녀의 모습은 오늘날 결과지상주의에 빠진 우리사회의 단면과 닿아있어서 여러모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두 번째 장면은 답답한 구미선이 딸인 구미모와 함께 점을 보러간 장면이었다.
‘힙신’이라고 해서 무언가 했더니, ‘힙합신’의 줄임말 이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극중 인물이 점집을 찾아가는 장면은 정말 너무나 흔한 장면 아닌가?
게다가 다양한 종류의 무당이 나온 것 역시 일반적이다. 그런데 <천번째 남자>에선 힙합하는 무당을 내보내서 ‘너무 오버하는 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힙합무당(?)이 리듬을 타면서 현재 사랑에 빠진 구미진과 김응석의 처지를 말할 때는 감탄사가 나왔다! 너무나 적절한 영상편집과 힙합선율이 멋진 조화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식상할 줄 알았던 점보는 장면을 이렇게 바꿔내다니. 제작진의 능력에 그저 감탄사만 연발되었다.
게다가 정말로 김응석을 사랑하게 된 구미진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말해보지만, 그 말을 그저 과대망상증으로 여기면서 장난이나 허풍 정도로 여기는 김응석의 태도에서 웃음과 함께 미묘함을 느꼈다.
<천번째 남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말은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물질만능주의와 성적지상주의 등에 빠져서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로지 사랑하는 이가 자발적으로 내놓은 간만을 먹겠다는 로맨티스트 구미진은 오히려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는 역설을 보여준다.
또한 사랑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오늘날의 사랑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아울러 공민왕때와 대장금까지 등장시켜서 적절한 패러디를 하는 장면들은 <천번째 남자>가 시트콤이란 사실을 잊지 않게끔 만드는 위력을 보여준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식상했을 장면들을 오히려 웃음으로 승화시켜 내고, 뻔한 사랑이야기를 다른 식의 접근법으로 만들어내는 <천번째 남자>의 저력에 그저 박수만 나올 뿐이다. 그래서 더욱 이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은가? 구미진은 과연 사람이 될지? 김응석은 이대로 죽을까? 과연 그는 구미진의 정체를 알고 그녀에게 간을 내어줄까? 등의 의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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