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1화밖에 남지 않은 ‘골든타임’은 어제 한화로 왜 제목을 ‘골든타임’이라 지었는지 그 의미를 명징하게 드러냈다. 지난주에 황세헌 과장의 후배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서 응급환자로 세중대병원에 이송되었다.
무려 세명의 과장이 몰려있음에도 우왕좌왕하던 꼴을 보다못한 이민우는 인턴임에도 불구하고 ‘최인혁 교수님 콜할까요?’라는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언사를 했다.
이는 그가 환자외에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지 않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필자의 예상대로 레지던트를 비롯한 선배들이 끌어내서 그에게 한바탕 훈시와 귀가 따가운 충고를 했다.
그리고 환자는 수술장으로 올라가면서도 누가 주치의를 할 것인가? 어떤 수술을 먼저 할 것인지? 정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였다. 게다가 고관절 탈구가 된 사실도 수술장에 올라간 다음에야 확인했다. 5분이면 맞출 수 있는 것을 너무 늦게 발견해서 수술후에야 맞추게 되었다. 늦게 맞춘 탓에 다리마비가 올 확률은 무려 20%나 되었다.
수술장에서 일단 메스를 집은 이는 일반외과였지만, 결국 다른 과들이 수술을 했고, 김민준 과장이 손이 다친 관계로 그저 지켜보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이 수술하면서 시야확보가 안되자, 응급실에서 가장 많이 수술장에 들어간 이민우를 부르고 정작 제일 중요한 최인혁 교수를 부르지 않은 것이다!
황세헌 과장의 후배는 시간만 놓고 따진다면 그야말로 ‘골든타임’에 병원에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중증외상환자를 많이 본 최인혁 교수가 아니라 일반외과를 비롯한 다른 과들이 먼저 보는 바람에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를 못했다.
물론 각과들이 총출동된 탓에 목숨엔 지장이 없을 것 같지만,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은 분명히 ‘비극’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이 희극이자 비극인 것은 이 환자처럼 각 과의 모든 과장이 총출동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이는 정말 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절한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가?'에 대해선 몹시 회의적이다-
물론 각과들의 과장이 모인 만큼 그들의 입장에선 뚜렷한 전공이 없는 최인혁 교수를 인정하긴 힘들 것이다. -그가 모든 수술을 컨트롤 하기 때문에, 정작 전문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증외상환자를 가장 많이 보고 치료한 그가 경험이 제일 많아서 가장 적절한 순간에 적절할 치료를 지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일례로 이민우가 환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는 일명 ‘탑투토’에 대해 지적했을 때, 각 과의 과장들은 수술장 올리기 바빠서 고관절 탈구를 뒤늦게 발견하는 오류를 범했다. 병원에서 실수와 오류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 때문에 자칫 불구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지식과 경험을 맹신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따라서 환자가 ‘골든타임’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선 중증외상환자를 주로 맡아온 응급실에서 적절한 치료와 적절한 콜을 통해서 각 과의 도움을 받아 긴밀하게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어제 <골든타임>에선 감동적이게도 최인혁 교수가 그렇게 원하던 헬기수송이 이루어졌다! 물론 그 헬기수송도 원활하진 못했다. 신분증을 요구했고, 자재에 깔린 환자가 있는 공장에는 헬기가 착륙할 곳이 없어서 4킬로미터나 떨어진 초등학교에 착륙하고, 그곳으로 다시 앰뷸런스가 환자를 실어오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엔 헬기착륙장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보여줬기 때문이다. 헬기가 수직이착륙이 가능하지만, 그래도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정작 환자가 생긴 곳에 착륙할 수 없는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골든타임>은 1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중증외상환자를 눈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각과의 과장들을 보여주면서, 중증외상센터가 왜 필요한지, 왜 중증외상환자의 경험이 많은 전문의가 필요한지, 중증외상환자의 헬기수송을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상황설정을 통해 생생하게 안방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골든타임>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중 누구라도 교통사고를 비롯한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응급실로 실려갈 수 있는데, 전문의들로 넘쳐나는 병원에서조차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제일 인기가 높은 곳은 사람의 목숨과 거의 상관없는 성형외과이고, 응급의학과는 지원자가 없어서 레지던트가 인턴을 꼬시는(?) 상황은 우리의 현실에서 더욱 암담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더욱 답답한 것은 생명과 직결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이 이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다. <골든타임>을 보면서 각성한 시민들이 정부에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의료현실이 나아질 수 있도록 공부하고 목소리를 높이고 적극적인 의견개진을 하는 것 밖에 말이다. 원래 현실은 녹녹하지 않고 때때론 절망적이다. 그러나 절망만 해선 희망이 생기질 않는다.
어려운 상황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갈 길을 지켜온 최인혁 교수처럼 끊임없이 노력과 요구만이 조금이나마 우리의 숨통을 트이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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