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무한도전’에서 길은 어떤 의미인가?

朱雀 2012. 9. 30. 07:00
728x90
반응형



어제 무한도전은 한가위 명절을 맞이해서 무한상사특집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엔 예고된대로 지드래곤이 신입사원으로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최근 슈퍼7콘서트건으로 하차선언을 했다가 다시 철회한 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무한상사에서 길은 평사원도 아니고 인턴이다. 그것도 벌써 3년이 넘도록.

 

이건 길이 <무한도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니겠는가? ‘무한도전에서 활약상으로 따진다면 유느님인 유재석이 당연 최고이니 부장을 맡는게 맞고, 1.5인자인 박명수가 차장인 것이 맞다.

 

따라서 존재감이 제일 없고 웃기지도 않는 길이 인턴사원인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그런데 여기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가 아직까지 인턴이고, 심지어 게스트로 나온 지드래곤에 밀려서 4년째 인턴에 머무르는 상황이다.

 

왜 길은 인턴사원인가? <무한도전>의 팬이라고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는 길의 활약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하차를 요구한 이들이 많았었다. <무한도전>의 인기만큼이나 길에 대한 비난은 마치 커다란 소나무의 그림자가 짙은 것처럼 따라다니는 하나의 굴레이자 족쇄였다.

 

많은 이들이 동감하는 부분이지만 길은 언젠가부터 늘 우축되어있고 움츠러들어있었다. 필자가 길에 대해 다시 본 것은 안타깝게도 <무한도전> 이 아니라 얼마전 종영된 <보이스코리아>라는 오디션 프로에서 였다. 엠넷에서 방송되었던 <보이스코리아>는 참가자의 목소리만 듣고 코치들이 버튼을 눌러서 선택하는 오디션 프로였다.

 

여기서 길은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날카롭게 비평하고, 자신의 팀에 들어온 이들의 포텐을 이끌어내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길이 가수로서 보여준 능력치는 함께 코치진으로 참가한 신승훈을 능가할 지경이어서 깜짝 놀랐다.

 

<보이스코리아>의 길과 <무한도전>의 길은 너무나 달라서 같은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물론 <보이스코리아>에서 길이 다른 것은 그가 힙합 마에스트로로서 리쌍이란 그룹의 가수로서 존재감을 보여줬기 때문이며, <무한도전>에서 길은 그저 예능초보에 불과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길은 분명 예능을 한지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존재감은 분명 <무한도전>에서 많이 미미하다. 그는 분명히 열심히 하지만 별로 웃기지 않고, 얼핏보면 <무한도전>에 왜 출연하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미존개오로 불린 정형돈도 처음 버라이어티에 출연했을 때는 별로 웃기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겠지만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은 한동안 웃기는 거 빼놓고 다 잘하는 아이라는 식으로 놀림을 당했다.

 

오늘날 정형돈은 미존개오를 비롯해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개콘>에서 엄청난 활약을 보여준 그 역시 <무한도전>에서 자리를 잡는 데, 1~2개월이 아니라 연단위의 시간이 필요했다.

 

심지어 유느님조차 10년 가까운 무명생활을 거치고 나서야 국민MC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만큼 오늘날 예능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잡고 활약을 보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해피투게더>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개콘>에선 잘 나가고 있는 G4역시 예능에선 초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쩔쩔 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오늘날 예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역발상으로 만약 빵빵 터지는 인물들만 모아서 <무한도전>을 만들었다고 한번 가정해보자! 모두들 웃기고, 매회 마다 다들 멋진 활약상을 보여줄까? 단언컨대 절대 그렇지 못할 것이다. 그중에서 몇몇은 멋진 활약을 보여주겠지만, 몇몇은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방송프로에서 절대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끼리 모여도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 성격에 따라 튀는 인물은 몇 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활약상이 떨어지는 인물은 갈아치우고, 다른 인물들로 바꾸면 나아질까? 단언컨대 그렇게 바꾸어도 상황이 나아질 일은 별로 없다. <무한도전>같은 프로에서 캐릭터를 잡기 위해선 6개월에서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합을 맞춰봐야지만 활약을 할 수 있게 된다. 대본도 제대로 없는 오늘날의 예능에선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은 별로 웃기지 않더라도 길 역시 나름대로 눈에 띄진 않지만 자신만의 활약상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길은 신입사원 권지용을 위해 선배들의 커피를 타주면서 각자의 취향을 말해준다.

 

유부장은 에스프레소 머신에 물한통, 정과장은 무조컨 커피에 각설탕 5, 박차장은 커피:프림:설탕=2:2:2 비율이란 식으로. 이 장면은 <엽기적인 그녀>에서 견우(차태현)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녀(전지현)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남성에게 그녀의 취향과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 장면이 절절한 것은 그녀의 사소한 특징에 대해 세세하게 알려주는 모습을 통해 견우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길이 커피를 타는 사소한 장면을 통해 얼마나 무한도전의 멤버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장면으로 시간마다 각 멤버들을 챙기는 길의 일과 역시 인상깊다. 오후 2시에 정과장의 영양제를 챙기고, 230분엔 박차장의 민서 우쭈주 타임을 챙기고, 3시엔 하사워의 이모티콘을 챙겨주고, 330분에 노홍철의 미용타임을 챙겨주고. 정말 사소하기 그지 없고, 해도 안해도 표가 안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것중에 하나는 사소한 것이 정말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감동하는 것은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샤넬 핸드백이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챙겨주는 멘트를 쳐주고, 힘들 때 위로의 말 한마디 같은 사소한 것들이다.

 

마찬가지로 <무도>의 멤버들이 오늘날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유재석의 놀라운 진행과 각자의 캐릭터가 잘 잡힌 이유도 있지만, 길처럼 눈에 별로 띠진 않지만 밑에 깔리는 캐릭터가 있기에 상대적으로 비교하면서 더욱 재밌고 웃겨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성과주의에 물들어 있다. 그런 탓에 방송국조차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그램 폐지하는 게 너무나 당연시 되어 있다. 한마디로 조급증이 넘쳐나는 사회다. 만약 이런 시대에 유재석이 신인시절을 겪었다면 그 역시 길처럼 취급당했을 지도 모른다.

 

하차선언을 했던 길은 다행히 녹화를 취소할 정도로 김태호 PD를 비롯한 제작진의 뚝심과 유재석을 비롯한 무도 멤버들의 설득으로 인해 복귀선언을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길이 느꼈을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는 이루다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무한상사편을 보면서 새삼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인턴사원으로 전전긍긍하는 젊은이들도 생각났지만, 동시에 벌써 3년이 넘도록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 길의 신세도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다.

 

게다가 김태호PD를 비롯해서 무도의 멤버들은 모두 그를 아끼는 데, 외부의 시선들이 그를 향해 비판이 아닌 악플을 날렸던 상황에 대해선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사실 오늘날 팬과 악플러를 구분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팬이 되는 데 인증시험을 거치는 게 아니고, 위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공격하는 악플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인기는 분명히 6개월 가까이 방송을 하지 못함에도 폐지를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동시에 길을 향해 집요한 공격을 날릴 정도로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새삼 <무한도전>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에피소드라 아니할 수 없겠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