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공포영화보다 잔인했던 ‘아랑사또전’

朱雀 2012. 10.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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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랑사또전에서 잔인한 대사와 장면들이 많이 등장했다!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자신이 이서림을 죽인 사실을 홍련에게 전해들을 때 였다. 보름마다 홍련이 취할 여성을 죽여서 바친 후에 죄책감에 시달릴 때마다, 홍련에게 부탁해서 기억을 지웠다. 홍련은 그것이 너를 위해서였다라고 말했다.

 

주왈은 끝도 없이 밀려오는 죄책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몹시나 안타까웠다. 두 번째는 이서림일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폐가에 온 아랑 앞에 주왈이 있자, 아랑이 한 대사였다.

 

이서림이 죽을 때 거기 있었소?’라는 말을 정말 요샛말로 돌직구로 날리는 아랑의 모습은 그 어떤 호러영화의 잔인한 장면들보다도 더 끔찍했다.

 

설마 아랑이 주왈에게 그런 말을 직접 물어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에 반전이었고, 자신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순진한 얼굴로 직접 물어보는 것이기에 더욱 끔찍했다. 게다가 주왈은 그녀를 만나고 나서 죄책감을 비롯한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마지막은 자신의 아버지 김응부 대감에게 어머니가 왜 그토록 최대감을 증오하고 죽이려고 밀양에 왔는지 알게 된 은오의 사연이었다. 김응부 대감은 최대감에 의해 외조부가 역적으로 몰려서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면서, 더욱 어머니를 불쌍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랑사또전>을 보면서 필자가 깜짝깜짝 놀라는 장면은 이런 장치들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기억이다! 우리가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이 없다면 슬픔도 기쁨도 미움도 증오도 없을지 모른다. 주왈이 자신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기억을 지운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서씨부인이 만약 가족이 최대감에 의해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면, 평생을 증오에 휩싸여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고, 은오 역시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랑은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주왈이 자신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지금 좋아하는 은오의 어머니가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더욱 괴롭게 하고 있다.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은 역사이기도 하다! 집단의 기억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대대로 전해지며, 개인의 기억은 추억등의 다른 이름으로 전승된다.

 

우리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만 있다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겠지만, 현실의 우리에겐 불행하고 끔찍하고 때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기억해야만 할 때가 있다.

 

우린 그때 도망가거나 회피하려고 하고, 당당하게 맞서기를 두려워한다. 그건 소위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억에 맞서고자 노력하고 극복하고자 애쓰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은오는 밀양에 와서 우연히 고을사또가 되면서 최대감의 횡포 때문에 아픈 기억을 가진 백성들을 위해 일어서고자 한다. 최대감 때문에 어린 딸을 팔고, 자식이 죽도록 맞아서 정신병자가 된 이들의 기억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원한을 들어주고 풀어주고자 애쓰는 것이 위정자가 해야될 일이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 개개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때 비록 딴 사람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린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게 아닐까? <아랑사또전>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시청자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참으로 대단한 드라마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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