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의’에선 너무나 당연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쉽게 넘길 수 없는 물음을 던졌다! 바로 ‘생명의 귀천’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듣는 다면 ‘에이’라고 할 것이다. 답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의>가 던진 상황을 한번 곰씹어 보자! 죽어가는 소년 백광현을 보고 삶의 의지를 불태운 말 영달이는 몸이 좋지 않아서 그만 뛰쳐나가다가 실수로 이명환의 아들 이성하를 치고 만다.
당연히 어린 이성하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이때 백광현을 찾아 헤매던 장인주가 우연히 그 현장을 보고 최고의 응급조치를 취해준다. 그야말로 ‘골든타임’에 이루어진 조치라 아니할 수 없다!
이에 반해 백광현이 아끼는 말 영달이는 이명환의 수하에 의해 칼로 치명상을 당하고 만다. 왜? 감히 미천한 말 따위가 귀한 도련님을 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명환은 어의로서 자신의 아들을 전의감으로 데려가서 그야말로 최상의 치료를 받게 한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삼성의료원에 가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은 것과 비교할 만 할 것이다.
이에 반해 백광현의 말 영달이는 칼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모두들 지켜만 본다. 왜? 사람이 아니라 말이기 때문이다. 목장주인은 꼴보기 싫다고 파묻으라고만 할 뿐, 살릴 방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이에 답답한 백광현은 직접 말을 이끌고 자신을 살려준 사암도인을 찾아가서 고쳐줄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사암도인이 저어하자 백광현은 화를 내면서 ‘생명에도 귀천이 있느냐?’라는 식으로 따진다. 이에 사암도인은 ‘목숨에 귀천이 어디있느냐?’면서 ‘자신이 말의 몸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설프게 치료를 하다가 오히려 상하게 할까봐’ 염려되어 그러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그러자 백광현은 ‘뭐라도 좋으니까 해달라’라고 매달린다. 백광현은 이미 자신의 아버지로 여기던 백석구가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가 그냥 병들어 죽어도 안타까울 텐데, 화살에 맞아서 피를 흘리면서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지켜만 봐야했다.
백광현이 느꼈을 고통과 안타까움을 이루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말에게 그런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게다가 백광현이 말과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귀천을 논하는 것은 오늘날의 우리로선 새겨들을만한 대목이다. 어린 백광현이 자라서도 병든 개를 그저 잡아먹을려고 하는 이들과 달리 낫게 하는 그 어진 마음을 실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백광현은 만약 눈앞에 히틀러가 죽어갔다면, 그의 죄를 떠나서 무조건 살리고 볼 인물이다. 왜? 생명은 누구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의원의 본분은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설사 그 대상이 하찮은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오늘날 병원은 이른바 VIP 환자들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돈 없는 환자들은 길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하지만, 부자들은 자신들이 편할 때 진료받고,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으면 바로 즉시 치료를 받는다.
이에 반에 돈 없는 이들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암 같은 중병에 걸리면 치료비로 가족이 파산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의사 몇몇이 나선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의술이 인술’이 아니라 서비스가 되면서, 오늘날 현실은 몹시 끔찍해졌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의원들은 돈 많은 이들에게 많은 진료비를 받고, 가난한 이들에겐 거의 치료비를 받지 않으면서 똑같은 의술을 펼쳤다. 유의태 같은 이들은 아무리 부자나 권력자라고 해도 똑같이 순서를 기다리게 하고 치료를 해주었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그런 의원은 흔치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의술을 단순히 돈벌이가 아니라 인술로 여기는 분위기는 있었고, 90년대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숭고한 직업의식과 윤리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저 병원은 돈 벌기에 앞장서고 있고, 의사들도 환자들을 그저 고객으로만 보고 있다. ‘의술이 곧 인술’이란 말은 정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마의>에서 죽어가는 말과 이성하의 극과 극 치료장면은 그야말로 많은 것을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명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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