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런닝맨’을 보면서 이상하게 별 다른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버릇이 되어 본 것이지, 다른 때와 달리 유독 재미가 떨어져서 채널을 돌리고 싶은 유혹을 몇 번이나 느꼈다. 보는 내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배신 광수가 활약할 기회가 이상하게 없었다.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현재 가장 큰 활약을 보여주며 분량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아무리 배신해도 밉지 않은 광수는 안타깝게도 이번 ‘007 내부의 적’에선 미션을 한 번도 제대로 수행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안타깝기는 개리도 마찬가지였다.
다소 엉성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추리력이 좋은 개리는 이승기의 오해로 인해 이름표가 제거되면서 막판에 제대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런닝맨>의 흥미유발이 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전 회차들과 비슷비슷한 포맷 때문이었다!
<런닝맨>은 어제 지난주에 이어 영화 <007> 시리즈에서 따와서 ‘007 내부의 적’이란 제목으로 방송되었다. 출연자 아홉명은 모두 요원이 되어서 지령을 수행하고, 마지막에 금고폭파를 막기 위한 힌트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이전에 했던 게임들과 비슷했다. 이를테면 홍대 골목끝에서 정보제공자와 접선하기 위해 먼저 온 김종국과 유재석은 아무생각없이 갔다가 때아닌 아주머니들의 공격으로 당황스러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런 아주머니의 등장은 이미 248회에서 써먹은 아이템이었다!
시장에 잡입한 송지효가 암호인 ‘밤바라밤밤 밤바밤’을 부르면서 상인들과 접선(?)하는 장면 역시 몇 번 써먹은 수법(?)이었다. 처음 보는 이들에겐 나름 신선할 수 있지만, <런닝맨>을 거의 빼먹지 않고 보는 열혈시청자에겐 흥미를 반감할 수 밖에 없는 요소였다.
물론 런닝맨을 당혹시키는 아주머니 부대와 운동부 그리고 소녀떼(?)까지 3차 관문으로 업그레이드 시키거나, 요즘 골목상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일부러 시장에 가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았다. 그러나 <런닝맨>은 액션 버라이어티 예능이지, <1박 2일>이 아니다!
필자는 줄곧 <런닝맨>의 완성도가 <무한도전>급이라고 칭찬해왔다. 물론 <무한도전>은 독보적이다! 매주 전혀 다른 아이템을 가지고 매주 재밌는 방송을 만들어낸 <무한도전>을 다른 국내 예능이 따라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다만 필자는 <런닝맨> 역시 도시에서 끊임없이 뛰면서 복잡한 미션을 수행해나가는데, 매주 다른 아이템과 설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송을 만들어나갔기에 칭찬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 <런닝맨>은 지쳤는지 일부 아이템과 설정을 재탕함으로써 흥미와 재미를 반감시켰다. 물론 <런닝맨> 제작진 역시 사람이기에 매번 재밌고 신선한 방송을 만들 수는 없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번 <런닝맨>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워낙 복잡한 설정과 빠른 전개가 생명인 <런닝맨>에서 이전 아이템을 가져오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 <런닝맨>을 구원한 것은 이승기와 박신혜였다. 이승기는 <1박 2일>에서 활약할 당시 ‘허당 승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승기는 최고요원인 007이란 코드네임을 받고도, 허당의 모습을 보여줘서 시청자를 웃게 만들었다.
특히 마지막 미션인 금고 폭파를 막기 위해 건물에 투입된 이후, 지석진과 하하가 ‘내부의 적은 여러명 일 수 있다’라고 말하자, 깜짝 놀라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너무나 웃겼다.
하하와 지석진은 그동안 <런닝맨>을 해오면서 이런 상황을 수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내부의 적이 두명 이상일 경우를 상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 <런닝맨>을 경험한 이승기는 차마 생각도 하지 못해 놀라워 하는 모습은 정말 웃겼다.
게다가 유재석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상황에서 유재석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김종국 사이에서 우왕좌왕하자 자신의 등을 내보이며 ‘그럼 떼세요’라고 말하고, 그것도 부족해서 ‘통장이고 집이고 다 드릴테니 믿으시라고요’라고 말할 때는 정말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지경이었다.
그렇다면 이승기가 허당의 모습만 보여줬는가? 아니다. 이승기는 유재석을 앞세워서 능력자 김종국을 아웃시키는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황제돌’이란 별명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했다. 물론 그 뒤에 박신혜에게 이름표를 뜯기면서 다시 허당임을 입증했지만. ^^
박신혜는 이번 ‘007 내부의 적’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홍대거리에서 개목걸이에서 힌트를 찾았으나, 함께 있던 개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전화를 거는 척 하면서 ‘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의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운데다 <런닝맨>에선 흔한 상황이라 시청자들마저 속아넘어갈 정도였다.
자신의 하수인인 김종국에게 슬쩍 정보를 넘기는 박신혜의 모습은 정말 노련했다. 새삼 연기자임을 입증해냈다.
특히 마지막에 박신혜가 김종국을 포섭한 악의 배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어느 정도 의심을 했음에도 새삼 놀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실로 놀라웠다!
물론 <런닝맨>에서 활약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허당 이승기였다! 이승기는 애초에 금고문을 열 수 있는 키인 USB가 <런닝맨>에서 지급한 운동화 바닥에 깔려있었는데 한번도 의심하질 않았다. 그냥 ‘런닝맨이 세심한 배려해주는 구나’라고 알았다는 그의 말은 모두를 폭소케 하기에 충분했다.
어제 <런닝맨>은 허당 이승기와 박신혜의 반전 매력으로 마무리가 되면서 꽤 괜찮게 되었다. 그러나 ‘007 내부의 적’편은 <런닝맨>이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서 쉽게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임을 동시에 드러내고 말았다. 다음주 예고편을 보니 강수지, 박남정, 김완선, 소방차가 출연하면서 복고특집을 알려주었다. 때론 이렇게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런닝맨> 제작진은 이번 회차에 드러나 자신들의 약점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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