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2화까지 보고 난 지금 소감은 일단 ‘끝내준다’! 대다수 시청자들이 동의하겠지만 <청담동 앨리스>는 한 캔디형 여주인공이 겪는 끔찍한 현실을 우리 앞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코믹함은 거의 제거되고, 거의 ‘날 것’ 직전까지 선사한다. 문근영이 연기하는 한세경은 1류대를 나왔고 다수의 공모전을 수상했다. 심지어 불어까지 잘한다. 만약 그녀가 한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쯤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성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로 그녀는 3년째 백수로 지내다가 지앤의류에 꼴찌로 합격했다. 그것도 철천지 원수(?)인 서윤주가 우연히 면접현장을 보고 사장인 남편에게 부탁해서 말이다. 이른바 낙하산이라 할 수 있지만, 한세경의 처지는 다르다! 왜? 그녀는 서윤주가 복수를 하기 위해 선택한 제물이기 때문이다!
서윤주가 한세경에게 하는 복수는 유치찬란하다! 디자이너로 입사한 그녀를 자신의 개인비서로 부린다. 그것도 온갖 사치품을 대신 구입해서 집으로 가져오는 아주 간단한 일. <청담동 앨리스>의 영리한 지점은 여주인공이 쇼핑을 하는 상황을 살짝 비틀어서, 시청자의 대리만족과 작품의 메시지를 한꺼번에 보낸다는 점이다!
한세경은 1억 5천만원이나 하는 럭셔리 보석을 산다. 이는 대다수 시청자들이 평생 구경조차 하지 못할 물건이다. 따라서 ‘이야~’거리면서 보게 된다. 그러나 한세경 역시 자신이 평생 만질 수도 살 수도 없는 물건을 그저 구경해야 하는 처지도 부족해서, 안전하게(?) 전달해야 되기 때문에 그 불편함과 짜증은 이만저만 아니다.
이런 미묘한 이중성은 <청담동 앨리스>의 자랑이다! 잘 나가는 서윤주를 보자!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적절히 활용한 유혹을 사용해서 지앤의류 사장의 와이프가 되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이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왜? ‘그들만의 리그’인 상류층에 가진 거라곤 정말 몸뚱아리밖에 없는 평민(?)이 입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상류층에선 그녀를 손가락질 하며 수군거리고, 일반인들 역시 수군수군거리겠지만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운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남녀가 사랑 하나만 가지고 살아가기엔 현실이 너무나 고달프기 때문이다.
한세경이 대학시절부터 사귀어온 소인찬이 1억이 넘는 빚을 졌다. 학자금 대출에 희귀암에 걸린 어머니 병원비 때문이다. 결국 빚을 견디다 못한 그는 회사의 불량 명품백을 몇 개 빼돌려서 일단 급한 3천만원의 병원비를 마련했다. 고작 명품백 몇 개로 병원비가 해결되는 현 상황은 기가 막히지만 그게 현실이다!
<청담동 앨리스>의 한세경은 나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여성이다. 그녀는 남자를 볼 때 배경이나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 자체를 보고,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간직하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직장 상사인 팀장이 안목을 운운하면서 모욕을 주고, 예고동창(이라 쓰고 철천지원수라 읽는) 서윤주가 말도 안되는 심부름을 시키는데도 시원하게 사표를 쓸 수 없다! 왜?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3년이나 백수로 지냈기에 비록 계약직이지만 이번에도 관둔다면 당장 생계가 막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표를 써놓고도 가방에 넣고 다니는 그녀의 신세는 대한민국 모두가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자친구는 억대의 빚을 지고, 부모님은 무리를 해서 마련한 아파트 대출금을 갚을 길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연인지라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다.
지지리궁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오로지 찌질한 복수를 위해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으로 온 차승조를 통해 유쾌하게 반전된다! 그는 1화에선 로열백화점을 운영하는 친아버지에게 ‘아르테미스가 입점하지 않겠다’라고 해서 부자간의 인연을 끊은 복수를 한다.
2화에선 프랑스에서 자신을 버리고 간 서윤주 앞에서 지앤의류가 반드시 잡아야할 아르테미스 코리아 회장으로 등장함으로써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나오는 에드몽 단테스처럼 반전을 이룬다! 아르테미스 코리아의 회장이 전 남편인 차승조라는 사실을 몰랐던 서윤주의 표정은 그 자체로 볼만한 반전이었다!
그러나 반전은 그 이후 한세경의 삶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아르테미스에서 명품백을 빼돌렸던 남자친구 소인찬은 결국 돌아오지만, 잠시 한세경과 추억에 잠기는 것 같더니 삶에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의 말대로 억대의 빚과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어머니의 희귀암은 그를 끝없는 절망속으로 밀어넣을 뿐이다.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해도 언제 돈을 벌어서 그 빚을 모두 갚고 인간답게 산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한세경의 아버지는 딸에게 부동산대출금을 ‘다 갚겠다’라고 말하지만, ‘아빠가 늘 말한대로 노력하는대로 되는 거라면 왜 우린 이 정도밖에 못살아?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안나와’라는 딸의 말에 ‘그걸 누가 모르냐?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 없다. 나아질 것 없다. 그거 인정하면 못 사니까. 하면 된다. 나아질거다. 그 희망으로라도 사는 거지. 세상 사람 다 그러고 살어. 그것 밖에 방법이 없으니까’라는 대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잔인한 현실을 그대로 시청자에게 내밀어 보인다. 맞다. 가난한 소시민이 노력하는 것외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기위로와 거짓희망마저 포기한다면 그는 삶 자체를 포기하는 수 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희망이란 잔인하게도 찾아볼 수 없다.
무엇보다 안그래도 차승조를 만나서 심기불편한 서윤주를 찾아가서, 협박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현 남편인 지앤의류 사장에게 프랑스에서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그런데 협박이유가 그녀를 파멸시키는게 아니라, ‘비법전수’라고 해서 놀라웠다. 하긴 서윤주를 파멸시켜봐야 잠깐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 여전히 끔찍한 현실에서 한발자국도 나갈수가 없다. 서윤주처럼 부자남편 아니 재벌남편을 만나야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세경 친구의 말처럼 대한민국에서 ‘가난은 죄이기 때문이다’. <청담동 앨리스>는 주말드라마다! 문근영과 박시후 같이 잘 나가는 배우들을 모아놓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반전 그리고 메시지까지 담아내는 완성도에 그저 박수가 나올 뿐이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이 아니라 재벌남편을 만나기 위해 비법전수에 골돌하게 만들다니. 하긴 삼포세대에겐 그게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일지 모르겠다. 20대 여성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보다 더한 풍자와 돌직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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