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각자도생은 없다! ‘부산행’

朱雀 2016. 7. 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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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사자성어는 무엇일까? 고진감래? 일확천금? 아마도 각자도생이 아닐까? 제각기 살 방도를 찾아서 움직인다니. 이건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말이다. 왜? 우린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따라서 내가 쓰는 모든 것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노력과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다. 누군가가 하수도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나는 물을 버릴 수가 없다. 내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모든 물품이 그러하다. 그런데 어떻게 혼자 살아간단 말인가? 수렵사회가 아닌 다음에야 각자도생은 말도 되지 않는 말이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은 몹시나 각박하다.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실에서부터 줄세우기를 강용하고, 등수놀이는 대학교도 부족해서 직장을 가도 계속해서 따라온다. 따라서 우린 저도 모르게 나와 내 가족 정도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부산행’은 부산행KTX에 한 좀비감염자가 올라타면서 시작된다. 아비규환의 상황이 연출되고, 석우(공유)는 눈앞에서 임산부인 성경(정유미)과 그의 남편 상화(마동석)를 외면하고 문을 닫아버린다. 나중에 다시 열어주긴 하지만, 석우의 그런 모습은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펀드매니저인 석우는 아내와 별거하고 딸 수안과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탓에 딸의 학교행사도 못 찾아가고, 딸의 생일선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오늘날 대표적인 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딸을 사랑하지만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고, ‘나와 내 가족’밖에 모르는 대한민국 평균(?) 가장이다.



그는 끊임없이 다른 이를 배려하는 딸에게 ‘이기적인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부산행KTX에서 극한 상황을 상화, 성경, 영국, 진희와 함께 겪으면서 점차 변화한다. 왜냐하면 각자도생으로선 도저히 이 지옥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인맥을 동원해서 중간에 딸과 함께 빠져나가 특별대우를 받고자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펀드매니저인 탓에 누구보다 정보에 빠른 그는 정부가 현상황에 대해 ‘안심하라. 곧 해결된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낼 때, 좀비떼가 전국을 휩쓸고 있으며 부산만이 안전한 곳이란 사실을 알아낸다.



가장 얄미운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오늘날 한국인의 전형적인 모습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특히 ‘부산행’에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와 달리 여기저기서 좀비떼가 날뛰면서 시민들이 희생되는 모습이 대비되면서 오늘날 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부산행’에서 악역은 ‘천리마’란 고속버스 상무라는 용석(김의성)이다.



그는 KTX에서 노숙자가 발견되자 수안에게 “꼬마야, 너 공부 안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대사를 한다. 자기 딴엔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자 한 이야기겠지만, 이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여기엔 자기가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란 과시와 더불어 노숙자는 노오력도 안하고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이란 무시와 천대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용석의 말이 더욱 끔찍한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노숙자가 되는 덴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뜻하지 않게 사업이 망하거나 사기를 당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의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맘대로 단정짓고 말하는 것은 하면 안되는 일이다. 



용석은 ‘부산행’에서 괴물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석우일행이 간신히 좀비떼를 뚫고 안전한 칸으로 오자, 혹시라도 감염되었을까봐 막으려고 한다. 그리고 결국 들어오자 ‘감염자다’라는 식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그들을 외면하게끔 유도한다.



그뿐인가?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기꺼이 옆에 있는 사람을 좀비떼에게 먹이로 던져준다. 이건 얼핏 보면 당장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몹시 잘못된 선택이다. 왜냐하면 한번만 물리면 좀비가 되는 상황에서 좀비를 늘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산행'을 하드캐리하는 배우는 역시 마동석이다! 극의 분위기를 이완시켜주는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면서 중요한 순간에는 무쌍을 찍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재미와 분위기를 한층 높인다. 가장 완벽한 캐스팅이다!



당장 눈앞의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방법은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끔찍한 결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부산행’은 통제불능의 위기에 빠진 오늘날 대한민국에 대한 메타포다. 좀비영화는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은 제 역활을 톡톡히 해낸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정말 한국적이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살 방법을 찾아야 하는 열차 안의 상황에서 각자 살아갈 방법을 찾는 등장인물들의 이기적인 모습이 특히 그러하다.



각자도생을 외치며 끝까지 살아남으려 했던 용석이 결국 좀비가 되는 모습은 오늘날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되어가는 우리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부산행’은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한국적인 신파를 제대로 건드렸다.



임산부와 그의 남편, 아빠와 딸, 10대 연인을 한팀으로 묶고, 아버지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를 끝없이 챙기는 모습을 통해서 한국적인 정서를 건드리고 있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이라면 눈물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최고의 ‘최루성’ 장면이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비교화면 분명히 특수효과와 좀비들의 모습이 너무 인간스럽긴 했다. 게다가 좀 어설픈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적 재미도 충분하고, 신파적인 요소도 넘쳐나는 탓에 흥행은 따논 당상이고 문제는 어디까지 관객동원에 성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좀비물은 한국에서 인기없다’는 기존 인식을 깨는 첫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끔찍할 정도로 그려낸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하는 실사영화 감독으로 기록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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