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터널’

朱雀 2016. 8.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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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자동차 영업대리점의 과장 정수(하정우)가 계약을 하나 마무리 짓고 터널을 지나는 순간 무너지면서 강렬한 시작을 알린다. 이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정수는 119에 전화를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너무나 태평하고 ‘안전한 곳에서 피해계세요’라는 식이다.


‘터널’은 블랙 유머로 가득하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무너진 터널안에 갇힌 정수의 모습은 관객에게 폐쇄공포증에 빠질 수 밖에 없게끔 만든다. 언제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죽을 지 알 수 없는데, 설상가상 언제 구조대가 도착할 지 알 수 없는 영화속 상황이 그러하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터널’은 단순히 영화속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은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성수대교 붕괴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침몰사고까지. 천재가 아닌 인재들의 얼룩진 대한민국의 단면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답답하고 화나고 분통 터질 수 밖에 없는데, 유머마저 없다면? 관객에게 ‘터널’을 감상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심각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유머와 위트를 잊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터널’을 감상하는 것은 관객에게 분노를 자아낸다. 사람이 갇혀 있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제대로 사과하는 이가 없다. 정부 관계자들은 처음에는 ‘반드시 구해내겠다’라고 장담하지만, 기실 제일 중요하게 하는 행동은 정수의 아내 세현과 사진을 찍으며 어떻게든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자 하는 것 뿐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정수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특종보도를 위해서 일단 전화를 하고 본다. 이후 기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정수의 ‘생존’보다 어떻게 하면 선정적인 보도를 할 수 있을까 뿐이다. 거기엔 예의나 생명존중 따윈 찾아볼 수 없다.



‘터널’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역시 정우역의 하정우, 세현역의 배두나, 구조본부 대장 대경역의 오달수다. 하정우는 평범한 가장이 극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모습을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배두나는 ‘정말 사고자의 아내라면 저러지 않았을까?’라는 현실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처음 마트에서 뉴스를 듣고 어쩔 줄 몰라하고, 이윽고 사고현장에 내려와 식당에서 일하면서 어떻게든 현장에서 돕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대경역의 오달수는 따뜻한 구조대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패닉에 빠진 정우를 어떻게든 기운을 돋구기 위해 노력하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오로지 생존자의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터널’이 돋보이는 것은 터널이 무너지는 광경을 보여주거나, 극한 상황에 몰린 주인공의 사투를 보여주거나, 구조과정을 보여줘서가 아니다. 이런 엄청난 사고가 벌어졌음에도 벌어지는 일련의 어이없는 상황들이 ‘너무나 한국적’이라는 데 있다.


구조를 위해 굴을 뚫는데, 알고 보니 설계도와 실제 현장이 달라서 헛수고가 되었다거나, 예상외로 구조가 되지 못하고 시일이 지나가자 제 2 터널 공사를 계속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되고, 처음엔 관심을 가지던 대중들이 시간이 지나자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결국엔 세현에게 ‘공사재개 동의서’에 사인받고자 나온 관계자의 모습은 분통을 터트리기에 충분하다. 국가란 왜 존재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구성원인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국민을 구하지 않는 국가라면? 과연 그 국가를 위해 국민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을까? 


‘터널’을 보면서 짜증나는 점은 이게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보다 더한 시궁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지난 엄청난 사고를 통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보았고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터널’은 그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너무나 반영했기에 그냥 영화로만 치부하기엔 뭔가가 찝찝하게 다가온다.


영화를 보고나서 대한민국의 현실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지 고민하게끔 만드는 작품. ‘터널’은 왜 영화가 상품이 아니라 작품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안전불감증과 성장지상주의, 황금만능주의 등등.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었던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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