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이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수라’는 매력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의 김성수 감독이라니. 이 조합은 너무나 오래전부터 기대되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개봉하자마자 극장에 가서 봤다.
보고 난 소감은? 충분히 극장에서 볼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다. 허나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이 이런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을 철저하게(?) 배신한다고 할까? 가장 신선한 인물은 주지훈이었다. 아마도 영화를 본 분들은 많이들 동감하지 않을까 싶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한도경은 몹시 피곤한 인물이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점 미리 밝힙니다-
그는 원래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도맡아하는 생계형(?) 비리 형사다. 우리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말기암 환자인 아내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도경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에선 별로 양심의 가책이나 망설임이 보이질 않는다.
그는 철저한 악인이다. 그러나 그의 뒤를 봐주는 박성배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이다. 안남시 시장인 그는 뉴타운을 조성해서 모든 이권을 한입에 털어넣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는 납치, 폭행, 협박, 살인교사까지 가리지 않고 해서 어떻게든 제거한다.
당연히 그런 박성배는 검찰의 타겟이 될 수 밖에 없다. 영화상에서 보여지는 검찰의 모습은 그다지 정의롭지 않다. 물론 ‘공공의 선’을 위해서지만, 영화상 느낌은 그저 자신의 대적자를 처리하려는 모양새로만 비춰진달까? 따라서 김차인 검사의 모습 역시 악당으로 다가온다.
그는 한도경을 협박해서 어떻게든 박성배를 잡을 결정적인 증거를 잡으려고만 한다. 한도경을 길들이기 위해 폭력과 협박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도경의 친한 후배형사인 문선모는 박성배 시장 밑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고, 점점 악에 물든다.
그가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이다가 이내 점점 악당이 되어가고, 점점 한도경과 각을 세우는 모습은 관객에게 위태위태하게 다가온다. 황정민과 곽도원이 내뿜는 포스는 그저 무시무시하다. 그러나 박성배와 김차인은 캐릭터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어찌보면 정형적이며 인간적인 느낌이 좀 떨어진다.
이에 반해 서서히 악에 물들어가는 문선모의 모습은 상당히 인간적으로 다가오며 그가 한도경과 마지막 대결에서 머뭇거리는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아수라’에서 아쉬운 점은 우리가 ‘신세계’에서 봤던 짜릿한 반전은 없다는 것이다.
‘아수라’는 처음부터 ‘남자라면 직진!’을 외치는 것 같고, 그 길로 망설임없이 달려나간다. 정우성은 서두에 밝혔지만 박성배 시장과 김차인 검사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 몹시 피곤한 모습으로 보인다. 박성배 시장에게 충성을 다해도, 김차인 검사가 그를 감옥에 보낼 것이고, 김차인 검사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는 결국 감옥에 가야 하는 상황이다.
한도경의 입장에서 그려진 '아수라'도 매력적이었지만, 문선모의 입장에서 '아수라'가 진행되었어도 매우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그만큼 문선모라는 캐릭터와 주지훈의 연기력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따라서 그에겐 애초에 ‘길이 없다’. 아니 어쩌면 그가 영화 초반에 실수로 형사를 옥상에서 밀어서 사망에 이르게 한 순간부터 그에겐 지옥이 펼쳐질 수 밖에 없었는지도. ‘아수라’에선 인상 깊은 장면이 몇 개 있는 데, 그중 최고는 자동차추격신이 아닐까 싶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총까지 뺐기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한도경이 자신의 차로 깡패들의 차량을 끝까지 추격하며 도로위에서 펼쳐지는 자동차추격신은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엄청났다.
자동차추격신은 정말이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광끼 넘치는 자동차추격신이라니.
피를 흘리면서 미친 듯이 돌진하는 정우성의 모습은 흡사 악마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수라’는 잔인하다. 또한 다섯 명의 남자배우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끼가 넘친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면, 너무나 끔찍해서 눈길을 돌리고 싶을 정도다.
‘아수라’는 거친 남자들이 출연하고 그들이 아수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쉬어가는 대목이 별로 없다. 그런 탓일까?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거나 어설픈 행동을 하는 깡패들의 등장이 어이없는 웃음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주의를 환기시킨다.
또한 ‘아수라’에선 멋진 액션신은 없다. 개싸움에 가까운 격투신은 매우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아수라’의 결말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다. 만약 한도경의 아내가 죽고, 여기에 화난 한도경이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서로 물고 뜯다가 망하게 하면 어땠을까?
마침내 박성배 시장과 김차인 검사가 만나는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할만큼 긴장감이 넘쳐흐른다. 그만큼 황정민과 곽도원의 무게감은 정말이지 철철 넘쳐흘렀다. '아수라'는 이런 배우들의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표값은 충분한 듯 싶다.
김차인측에서 준 도청장비를 착용한 한도경이 이를 박성배에게 보여줄 때만 해도 뭔가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양쪽 사이에서 지친 한도경이 거의 ‘둘이서 해결보세요’라는 심정으로 둘이서 서로 얼굴보고 이야기하게끔 기회를 만든 것 이상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은 있지만, 필자의 의견대로 반전을 주었다면? 어쩌면 전형적인 느와르 영화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끝까지 밀고 나갔기에 ‘아수라’는 정말 악당들이 서로를 물고 뜯는 지옥도를 제대로 관객의 눈앞에서 보여줬는지 모르겠다.
‘아수라’는 아무래도 개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그러나 정우성, 황정민, 곽도원, 주지훈, 정만식 등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며, 그들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표값은 충분히 해낸다고 여겨진다. 또한 자동차추격신을 비롯한 몇몇 장면은 워낙 그 자체로 멋져서 선 굵은 남성영화를 보고 싶다면 극장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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