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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21세기 초강대국?! 71

일본 관동군은 왜 장작림을 암살했는가?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28년 6월 4일 장작림은 북경에서 심천으로 향하던 열차를 타고 가던 중에 차량폭발로 죽고 만다. 이는 당시 일본 관동군이 모의해서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일본군은 장작림을 ‘폭사’라는 끔찍한 형태로 제거했을까? 장작림은 잘 알려진 대로 친일파 인사였다. 그는 일본계 인사들과 친분을 두텁게 함으로써 장개석과 최후까지 ‘중국’을 놓고 다툰 일세의 효웅이 되었다. 그러나 장작림은 비록 친일파 인사였지만, ‘국가와 민족을 팔아먹는 짓’까진 하지 않았다. 장작림은 위태로운 시기에 일본에게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자신이 다스리는 만주지역의 철도권을 넘겨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었다. 우선 이는 중국인으로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문제였다. 또한 당시..

통일 중국을 놓고 장개석과 끝까지 겨룬 장작림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장개석은 분열되어있던 중국을 통일하기 위해 장작림과 마지막까지 싸워야했다. 장작림은 동북왕으로 불리긴 했지만, 그의 야심은 ‘만주의 패자’가 아니었다. 바로 중국을 통일한 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야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적이었던 오패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장개석의 국민혁명군이 승승장구하자 북진해오자, 이를 기회로 삼아 1925년 9월 7일 북경에 입국하고, 11월 30일 안국군 총사령관에 취임한다. 그리고 마침내 1927년 6월 18일 북경에서 대원수로 취임했다. 장작림이 급하게 대원수에 취임한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군의 무력이 너무나 강했다. 장작림과 연합한 군벌 손전방과 장종창이 형편없이 밀려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야 했다. 장개..

손문조차 어려워한 만주군벌 장작림

장작림(장쭤린) -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중국 근대사를 보면,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시대가 있다. 바로 1912-1949년까지의 ‘군벌시대’다. 우린 흔히 1911년 신해혁명이후, 손문의 국민당 정부와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중국을 이끈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는 약 40년에 이르는 혼란기에 대해 관심이 없는 탓이 크다. 당시 중국의 영토는 현재와 엇비슷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중앙의 권력이 공백이 생기면, 각 지역의 권력자들이 실제로 지역의 ‘왕’으로 통치하는 형편이 되었다. 일례로 1911년 신해혁명을 성공한 손문이 중화민국의 임시대총통이 되었다가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총통직을 넘겨준 것은, 그가 막강한 군벌이었기 때문이다. 원세개는 1915년 시대를 잘못 해석하고 자신이 직접 황제가 되..

마침내 황제신화를 역사로 만들어낸 중국

황제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1996년 5월 16일 중국은 ‘하상주 단대공정’이란 국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여기에 모인 인물도 화려하지만 단체는 더욱 화려하다. 중국 과학원, 중국 사회과학원, 국가 과학 위원회, 국가 교육 위원회, 국가 자연과학 기금회 등등. 이들은 역사-고고학-천문학-과학적 연대 측정의 네 가지 분야로 나눠 연구를 진행시켰다. 그렇다면 이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신화를 바로 현실로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자들이 ‘신화는 그저 허구에 불과하다’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다. 그러나 1990년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이후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국력이 신장하던 중국으로선 공자기년, 즉 기원전 841년부터 중국의 ‘공식적인’ 역사가..

황제, 드디어 민족시조로 등극하다!

황제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중국 지식인 사회는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서로 ‘박 터지게’ 논쟁하게 된다. 바로 중국의 시작을 황제로부터 잡는 ‘황제기년’을 쓸 것인지, 아니면 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공자 때부터 잡는 ‘공자기년’을 쓸 것인가? 하고 말이다. 황제기년을 쓸 경우, 중국의 역사는 약 5,000년 정도로 소급된다. 이렇게 될 경우 아편전쟁을 일으킨 이후, 중국 전역을 먹이감으로 삼은 서구 열강들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닌 것이 된다. 지식인들이 신화속의 존재에 불과한 황제를 1900년대에 다시 되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사마천이 모든 중국왕조의 시조로 선택한 ‘황제’는 황실을 제외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거의 이야기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황실을 위한 ..

사마천이 선택한 중국의 시조, 황제

중국의 시조로 추앙받는 황제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예전에 중국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우연히 역사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자신을 한족으로 소개하면서 몽골이 세운 원나라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스스럼없이 ‘우리의 역사’라고 말했다. 청나라야 그렇다 치더라도, 몽고족의 후손들이 버젓이 살아서 초원에서 나라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그들을 싸악 무시하고 말하니 씁쓸한 미소만이 감돌았다. 특히 그는 힘주어서 자신을 ‘황제의 후손’이라고 했는데, 당시만 해도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고 하는 ‘황제’에 대해 그렇게 자부심이 높은지 잘 몰랐다. 이후 최근에 중국에 대해 이런저런 서적과 정보를 찾아보면서 ‘황제’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마치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으로 꼽는 ‘아브라함’처럼, 그들이 황제..

후진타오도 존경하는 강희제, 그는 누구인가?

강희제 초상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얼마 전 대히트한 을 보면 김주원은 ‘사회지도층’을 운운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랑에 눈이 멀었어도 능력 있게 회사를 운영하며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중국 역대 황제중에서 현대판으로 각색한다면 김주원보다 더 멋진 인물이 바로 강희제가 아닐까 싶다. 강희제는 8살이란 어린 나위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소유한 청제국의 황제가 된 인물이다. 그리고 무려 61년이란 기간 동안 통치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통치된 군주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행복했을까? 정답은 ‘땡’이다! 강희제가 남긴 기록을 찾아보면 정사를 돌보느라 시력은 떨어지고, 이는 빠져 제대로 음식도 씹지 못하고, 기력은 쇠해 불평을 털어놓는 인간적인 그를 만..

희토류는 생각만큼 희귀하지 않다!

얼마 전 우리는 일본이 중국과의 외교전에서 무릎을 꿇는 현장을 목격했다. 바로 중국과 일본의 첨예한 대립이 되었던 센카쿠 갈등이 벌어지자, 희토류 수출 중단했고, 결국 3일 만에 중국 선장을 석방하면서 일본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덕분에 우리는 잘 몰랐던 ‘희토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희토류는 명칭에서 오는 느낌과 달리 중국에서 지어진 말이다.-처음에 필자는 일본어인줄 알았다- 덩샤오핑의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희토류’는 현재 중국이 세계생산량의 97%을 생산하며, 미국-일본을 비롯하여 우리나라까지 모두 수입해서 쓰고 있는 실정이다. 희토류는 소형모터와 리튬이온전지를 비롯한 현재 최첨단 기기에 들어가는 원자재이며, 희토류 공급이 중단된다면 일본의 첨단산업은 거의 올스톱 되는 최악의 사태..

2010년은 대한민국의 전성기로 기억될 것이다?!

요새 재밌게 읽은 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고르라면, 제목처럼 ‘...우리의 후대는 지금을 한국의 전성기로 기억할 것이다’를 꼽겠다! 는 한국인들이 쓴 21세기 중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예측한 책이다. 최근에 깊은 인상을 남긴 이후 ‘다른 책이 눈에 찰까?’싶었는데, 여지없이 는 제목처럼 필자를 ‘쾅’하고 거침없이 내리쳤다. 현재 21세기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나온 책들은 많다. 그러나 그중 대다수는 중국인이나 서구 전문가들이 대부분 쓴 것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보고자 하는 바를 보는 경향이 많다. 나쁜 의미로 말하는 게 아니다. 각자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부분에 대해서 열과 성을 다해 깊이 분석하고 고찰할 수 밖에 없다. 에서 가장 관심 있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아니다!?

오늘은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세계의 공장 중국’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세계의 공장’.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가 붙어있지 않은 물건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메이드 인 차이나’ 없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소박한 열망을 가지고, 상점을 뒤진다면 당신은 곧 좌절할 것이다. 예전에는 흔히 말하는 싸구려 짝퉁이나 기껏해야 중저가의 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가 붙었지만, 오늘날에는 아이폰 같은 최첨단-최고급 제품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가 붙기 때문이다. 당신이 ‘메이드 인 차이나’를 거부한 다는 것은 ‘원시인’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별반 다름 없을 것이다! 애플-HP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오늘날 중국 노동자들의 값싼 임금과 제법 숙련된 기술에 힘입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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