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슈퍼히어로는 왜 범죄자가 되었는가?

朱雀 2011. 1. 1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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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크 나이트>를 기억하는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놀라운 작품은 미치광이 악당 조커와 고담시의 흑기사인 배트맨의 대결을 통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다. 모든 장면이 인상적이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배트맨은 자신의 약혼자가 눈앞에 죽은 후 악당이 되어버린 고담시의 백기사 하비 덴트를 영웅으로 기억시키기 위해, 기꺼이 경찰에 쫓기는 범죄자의 역할을 자임한다. 하여 그는 종결부에선 하비 덴트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쫓기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사실 이 부분은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동시에 슈퍼히어로의 비극적인 삶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슈퍼히어로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찾아보면 그들의 비극적인 삶이 잘 드러난다. <인크레더블 헐크>의 브루스 배너 박사는 그 통제될 수 없는 막강한 힘 때문에 군대에게 쫓기고 있다.

 

<왓치맨>의 히어로들은 ‘국가의 승인 없이는 활동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되는 바람에 대부분이 은퇴를 선언하고 일상의 삶을 살게 된다.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는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후, 파시즘 정부가 다스리는 영국에서 테러를 자행하며 혁명을 꿈꾼다.

 

자! 그렇다면 왜 슈퍼히어로는 국가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을 찍힐까? 그 이유는 일단 너무나 자명하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엄청난 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입장에선 ‘법’이란 이름하에 다스려지지 않는 존재들은 용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슈퍼히어로들이 판치는 세상이 비록 악당들이 활개를 치고,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이 득실댄다고 해도 그들을 엄중히 다스릴 일은 정부와 국가에서 할 일이지 아무런 법적권한이 없는 이들이 할 일이 아니다. 슈퍼히어로는 능력만 강할 뿐, 그들에게 권한을 준 이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헐크처럼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은 엄청난 공포심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헐크가 출연하는 작품들을 보면, 흥분하면 그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힘 때문에 도시가 초토화되는 일이 너무나 많이 벌어진다. 이에 질린 슈퍼히어로들은 그를 외딴 행성에 강제추방하게 될 정도다. -<헐크 : 플래닛 헐크>는 헐크가 외딴 행성에 떨어져서 노예로 시작해 왕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빨간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슈퍼맨’을 외치게 만든 장본인인 슈퍼맨의 가장 큰 적은 그와 동등한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나 괴물이 아니라, 놀랍게도 지구인인 렉스 루터다. 렉스 루터가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그가 신과 같은 능력으로 인간에게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의지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슈퍼맨의 패러럴 월드를 그린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렉스 루터가 대통령이 되어 슈퍼맨과 전쟁을 벌이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루터는 슈퍼맨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재밌는 것은 마크 밀러가 그린 <슈퍼맨 :레드 선>의 가정이다. ‘슈퍼맨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하에 그려진 작품은 스탈린의 휘하에서 자란 그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의 후계자가 되어 세상을 다스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브래니악의 도움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된 슈퍼맨(렉스 루터가 다스리는 미국만 빼고)은 너무나 완벽하게 다스리지만 동시에 완벽히 통제하게 된다. 이에 배트맨은 그런 세상을 인간이 스스로 자유롭게 살도록 바꾸기 위해 슈퍼맨의 제거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슈퍼맨 :레드 선>의 가정을 통해 우린 ‘순수한 아기’와 같은 슈퍼맨이 ‘정의’만을 놓고 행동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알게 된다.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처음에 지적했지만 슈퍼 히어로들은 통제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악당과 구분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고 애매모해진다. 배트맨을 생각해 보자! 그는 강도에게 부모를 잃은 후, 고담시를 구하기 위해 배트맨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그가 악당에게 하는 짓은 어떤 면에서 악당과 똑같다. 그는 악당과 똑같이 분노하고 부수고 싸운다. 배트맨과 악당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만약 배트맨이 악당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해한다면 그와 악당을 가르는 마지막 얇은 장벽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그가 힘들게 잡은 악당들을 범의 심판대에 세우면 부패하고 무능한 관료들에 의해 정신병원이나 교도소에 갇히는 정도로 끝나고, 그마저도 너무나 쉽게 탈옥이 이뤄지는 바람에 그를 수많은 회의에 빠뜨린다. ‘그들을 죽이지 않는 것이 옳은가?’하고 말이다.

 

이번엔 일반 시민의 눈에서 생각해보자!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등 을 보면 정의로운 슈퍼히어로의 행위를 보고 열광하던 시민들은, 악당들이 슈퍼히어로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가짜를 내세워 행동할 경우, 자주 속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마지막에 그것이 가짜임을 알게 되지만, 그들은 왜 쉽게 속는 것일까?

 

이건 현실에 대한 중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우린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좀 더 미국이 정의로워지길 빌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받은 노벨 평화상은 그가 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제발 정의롭게 행동하라’는 전 세계인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그는 부시 행정부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전장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이전과 큰 차이를 찾기 어렵다.

 

슈퍼히어로가 판치는 세상은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현실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미국은 ‘슈퍼맨’의 고향이자, 모든 슈퍼히어로가 활동하는 곳이다. 그러나 미국은 과연 정의로운가? 언젠가 이라크 전쟁을 수행하던 부시 대통령을 그린 만평을 보고 소름이 끼친 적이 있었다. 전화기에서 ‘슈퍼맨 도와 주세요’라고 누군가 간절히 요청하는데, 그 전화를 받는 이는 슈퍼맨의 의상을 입고 있는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미국에서 슈퍼히어로물이 인기가 있는 것은, 어렵고 고단한 현실 때문이다. 아무리 경찰력을 증강시켜도 늘어나는 범죄를 막을 길이 없고, 시민은 범죄에 노출된 환경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을 해결하고자 존재하지도 않는 ‘슈퍼 히어로’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마치 <양산박>의 108두령들이 판치는 세상처럼 혼란하고 어지러운 현실 때문에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전설이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지만 길가던 나그네는 마을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괴물이나 악당과 싸운다. 때때로 그들은 목숨을 잃고 마을을 구한다. 근데 과연 이런 세상이 올바른 것일까? 슈퍼 히어로가 시민에게 외면을 받고 악당 취급을 받는 것은 결국 그들이 활동하는 세상이 도래해선 안된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다크 나이트>의 이미지는 인용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와 권한은 
워너브라더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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