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사랑을 묻는 시트콤이지만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는 ‘천번째 남자’가 막을 내렸다. 많은 이들이 예상했다시피 구미진(강예원)은 뇌종양을 앓고 있는 김응석(이천희)를 위해 자신의 구슬을 내주었고, 스스로 소멸했다.
진정으로 사랑한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동화속에서나 나올 법한 뻔한 결말이었다. 그러나 <천번째 남자>의 주제가 명쾌하게 드러낸 명장면이기도 했다.
<천번째 남자>는 마지막화에서 구미진의 정체가 서경석에게 들통나면서 시작되었다. 구미진은 사랑하는 김응석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몇 차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려시대부터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녀가 가져온 고문서 등의 물건으로 인해 김응석도 어느 정도 감을 잡긴 했다.
그러나 김응석은 ‘어쩌면 구미진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오히려 평상시 고문서에 관심이 많던 서경석이 미진이 쓴 일기와 각종 문서들을 감정받아서 ‘진품’임을 알고, 그녀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서경석은 구미진의 정체를 목격하게 되었다. 너무나 놀란 그는 경찰서에 가지만 오히려 그가 받는 취급은 정신병자에 가까웠다. 이건 현대에 대한 명쾌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우린 예전처럼 신화와 전설을 믿지 않는다. 그저 ‘미신’으로 터부시한다. 그러나 자연에게도 인격이 있다는 믿음은 ‘존중’으로 발전된다. 인간이외의 생명체는 물론이요, 나무와 바위를 무생물로 간주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자연을 훼손했던가?
또한 우리는 ‘합리성’이니 과학적이니 하는 것으로 꿈과 낭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21세기는 창의력의 시대’니 ‘문화의 시대’라고 하지만 꿈과 낭만을 잊어버린 민족에게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문학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이 말이다.
다시 <천번째 남자>로 돌아와서, 서경석에게 놀란 것은 그는 동생처럼 아끼는 김응석을 위해서 건장한 이들을 섭외해서 구미진 가족의 납치를 시도한다.
구미호가 간을 빼먹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김응석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평상시 재밌고 유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토록 악역으로 돌변할지 몰랐다.
게다가 그의 예상대로 나타난 구미진은 이미 천년이 다가오면서 이성을 상실하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화를 낼 것 같던 구미진은 오히려 경찰을 대동하고 와서, 다시한번 서경석을 정신병자로 만들면서 ‘상황종료’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반전’이었고 <천번째 남자>의 장르가 시트콤이란 사실을 증명한 명장면이었다!
그러나 김응석과 둘만 있게 된 구미진은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너무 놀란 김응석은 뭔 말을 하려다가 쓰러지고 말았다.
그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구미진은 김응석이 뇌종양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김응석이 구미진을 위해 ‘간을 내놓겠다’라고 하자, 구미진은 ‘동정은 싫다’라고 말한다.
김응석의 입장은 어차피 시한부 상황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위해 ‘간을 내놓겠다’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어차피 죽을 목숨, 사랑하는 이를 위해 쓰겠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라도 자신을 내놓는다는 결심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런 참혹함이 뒤따르는 상황에선 말이다. 그동안 구미진은 ‘진정한 사랑’을 찾아서 여러 남자를 만났다.
사실 구미진식 사랑법은 말이 안된다. ‘오직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간을 먹겠다’라는 그녀의 말은 사실 형용모순이다. 그녀를 누군가가 진정으로 사랑해줬다면 그녀 역시 그 남자를 사랑했어야만 옳다.
또한 구미진이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이래도 날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물은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하나둘은 간직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그 모습은 다른 이에게 보여주면 자신의 곁을 떠날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아름답고 멋진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모습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런 모습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완성되니까.
<천번째 남자>는 사랑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졌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오늘날에 보기 어려운 참 사랑의 모습과 가치관을 보여주었다. 인스턴트식 사랑법이 횡횡하는 오늘날 단순히 시트콤으로 치부하기엔 다루는 내용과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러나 한편으론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던 <천번째 남자>의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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