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못난이 송편’이 유치하다고?

朱雀 2012. 10.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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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생과 못난이 송편후편을 보면서, 동생이 한마디를 했다. 소정이 아영에게 도둑누명을 씌운 이유는 질투심이었다! 비록 소정은 얼굴도 예쁘고 의사 아버지에 요리연구가 어머니를 둔 말 그대로 빵빵한 집안의 아이였지만 자신은 불행했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는 뚱뚱해서 보기 싫었고, 아빠와 엄마는 너무나 바빠서 전혀 그녀를 돌보지를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비록 못 살지만 아영이의 집은 온통 부러운 것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때까지 몇 년간 아영이를 지능적으로 괴렵혔다. 둘만 있을 때는 잘 해주는 척 했지만, 다른 아이와 있을 때는 아영의 흉을 보고, 결국엔 그녀에게 반친구의 지갑을 주었다. 물론 처음부터 소정은 아영에게 도둑 누명을 씌울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장난이었다. 그러나 그 장난은 도를 지나친 것이었다. 모든 사실을 밝히는 순간 자신이 도둑이 되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던 소정은 끝가지 아영을 도둑으로 몰고 갔다.

 

따라서 아영 아니 순복이 본명인 결국 화가 나서 저도 모르게 커터칼로 소정의 얼굴을 긋는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 후 십년 주희가 담임으로 있는 반에선 반장인 예빈이가 세진이를 왕따로 몰아서 결국 그녀가 자살을 시도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왜 소정과 예빈인 동급생 친구를 괴롭혔을까?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소정인 앞서 밝힌 대로 아영이의 집이 화목한 탓이었고, 세진이의 성적이 자기보다 좋아서 예빈이가 질투한 탓이었다.

 

정말이지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듣기에 따라선 겨우 그 정도 이유로?’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춘기때는 별 것 아닌 이유로 미워지고 좋아할 수 있다. 그만큼 예민한 시기가 아니던가? 그리고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람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 데 큰 이유가 있지 않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잘 생겼거나 예쁜 애인이 있다는 이유로 질투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만큼 인간은 사소한 것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한다. <못난이 송편>은 그런 인간의 밑바닥을 그대로 그려냈다. <못난이 송편>에서 가장 어이없는 장면은 소정이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한밤중에 찾아가서 자신을 감싸기만 하고, 잘못을 지적하고 아영에게 사과하도록 하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시청 내내 헛웃음이 나왔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과연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소정이처럼 상황만 허락한다면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을 것 같다.

 

소정은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곳에서 얼굴의 상처 때문에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다. 유색인종이 미국에서 당하는 따돌림은 이미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사례다. 다니엘 헤니처럼 유명배우도 손가락이 부러질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정말 유명하지 않던가?

 

<못난이 송편>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너무 급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소정은 아영이를 찾아와서 용서를 빌고, 예빈 역시 세진이를 찾아와서 용서를 빌었다.

 

현실에선 과연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못난이 송편>의 한계는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못난이 송편>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다.

 

모든 아이들의 개성과 적성을 무시하고 오로지 성적순으로 메기지 않던가? 무슨 한우도 아니고 등급을 메기는 이 끔찍한 현실. 따라서 한학급에서 누군가를 왕따시키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실 우리는 진실 앞에서 용기를 잃고 도망치기 바쁘다.

 

과연 우리는 주희처럼 자신이 도망친 진실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못난이 송편>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장선생은 학교에서 왕따가 발생한 사실이 밝혀지면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갈까봐 쉬쉬하고, 세진이 엄마는 자신의 딸이 왕따당한 사실만 크게 생각하고, 결국엔 가해자인 예빈이네 엄마가 거액의 합의료를 제시하자 받아들이고 만다.

 

어른들의 이런 모습들은 비겁하지만 현실적이다. ‘내 아이는 소중하다라는 이기심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의 아이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은 끔찍하다.

 

학교에서 줄세우기는 여전하고, 어른들의 이기심은 여전한 상황에서 주희가 선배로서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한 정도로 아이들이 반성을 하고 세진이의 병실을 찾아가서 병문안을 하고 책을 읽어주는 상황전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예빈 역시 병실을 찾아온 상황은 조금 납득하기 어려웠다.

 

물론 <못난이 송편>2부작으로 뭔가 해결책을 내놓기는 어렵다. 게다가 특집극에서 해피엔딩이 아니라 배드엔딩으로 끝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몇 가지 약점을 지녔어도 <못난이 송편>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사춘기 소녀들이 같은 반 친구를 괴롭히면서도 그들 역시 가해자이자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사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그때 인정하고 바로잡기 위해서 노력해야하는 사실을. 우리는 왕따가 학교에서 넘쳐나는데 그 원인을 만화와 게임 같은 것에서 찾는다. 그러나 <못난이 송편>은 학교현실 자체에서 원인을 찾으며,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끔찍한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며 현실고발을 한다!

 

불의 앞에서 우린 용감할 수 있는가? 누군가를 꼭 괴롭히지 않더라도, 못 본 척하고 묵인하는 그 자체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폭력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 <못난이 송편>TV드라마로는 흔치 않게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준 수작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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