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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52

도올, 오늘날의 중국을 비판하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중용’ 9장을 설명하면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결국엔 오늘날의 중국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왜 그렇게 되었느냐고? 이유는 9장의 내용이 천하지대사를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 “천하국가란 평등하게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높은 벼슬이나 후한 봉록도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슬퍼런 칼날조차 밟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은 능(能)하기 어렵다.” 중용 9장 백인가도장(白刃可蹈) 음. 한자 원문을 쓰면 서로 머리가 아플 것 같아, 우리말 해설만 옮겨보았다. -절대 한자를 치기 싫어서가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바로 평등하게 나눠주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그렇다고 자본주의에 대해 맹목적으로 부정적이라고 생..

TV를 말하다 2011.11.07

중국은 왜 100억이나 들여서 ‘공자’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지난 26일부터 중화TV에선 35부작 드라마 가 방송하고 있다. 3회까지 밖에 못 보았지만, ‘상당히 볼만하다’고 평하고 싶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는 최신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이야기 전개에도 현대적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티가 역력하게 난다. 게다가 우연인지 최근 EBS에서 이 방송중인 탓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욱 그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는 이라면 “왜 2천년전 인물인 공자를 최첨단 시대에 사는 내가 알아야하지?”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좋은 질문이다. 대답은 간단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선 반드시 MUST 절대적으로 ‘공자’를 알아야만 한다. 공자의 사상은 지난 2천년간 중국은 물론 한자문화권에 속한 아시아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고,..

TV를 말하다 2011.09.30

도올 김용옥, 중화사상을 설명하다!

중화사상 혹은 중화주의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오늘날 중국이 자신만이 ‘세계의 중심’이라며 시건방을 떠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중화주의는 중국 자국민만을 위한 내셔럴리즘으로 쓰이는 게 사실이다. 중국인들이 얼마 전 센가쿠열도(중국명 댜오위타이)를 놓고 일본과 외교분쟁이 벌어지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펼친 사실이나, 이를 CCTV를 비롯해 중국정부가 지지하는 모양새를 띤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선 ‘중화주의=국수주의’로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중화주의가 단순히 중국의 국수주의에 지나지 않을까? 일전에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중화주의(혹은 중화사상)는 자신이 만든 신문에서 논설위원으로 활약한 양계초가 ‘위대한 우리 중화민족은...’이라면서 만들어낸 용어..

TV를 말하다 2011.09.22

중국은 미국을 2~3년 정도만 앞서게 될 것이다!

최근 읽은 책중에 가 있다. 필자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게 현재상황인데, 감히 10년 후를 논해?’라는 욱하는 마음 때문에 읽게 되었다. 읽고 난 지금은? 대니얼 앨트먼의 통찰력에 그저 감탄사만 보내고 있다. 저자는 에서 12가지에 대해 ‘예언’을 했다. 저자 자신은 자신은 경제학의 노스트라다무스나 닥터 둠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필자가 보기엔 그의 발언은 두 개를 합한 것 만큼 폭발력이 강하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예측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그는 의 첫장을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할애한다. 세계적인 증권회사인 골드만 삭스는 2003년 2041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경제대국이 되고, 2050년까지 미국보다 빠르..

중국 부자들의 엑소더스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제 우연히 한 경제기사를 보았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면 ‘중국 부자들의 60%가 해외이민을 고려하고 있으며, 3년새 미국 등으로 자산을 옮긴 이들이 무려 4배나 늘어났다’고 한다. 관련기사 : "번돈 다 잃을라" 中 부자들의 '엑소더스' 그러면서 기사는 ‘중국 부자들이 중국 경제에 대해 믿음이 없다’라는 식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하나의 단신이지만, 이걸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봤을 때, 관련 기사의 말은 10% 정도만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들을 많이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공산당 간부와 같은 정치 권력자와 그 지방의 실권자등과 ‘일종의 커넥션’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다! 따라서 어떤 일을 공적으로 처리할..

청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천재, 좌종당

청나라 말기에 유일한 승리를 가져다준 좌종당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증국번과 이홍장의 이름을 들어본 이들 중에도 좌종당의 이름을 들어본 이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좌종당은 1842년 난징조약 이후 ‘굴욕의 100년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이다. 바로 1865년 일리를 제외한 신강 전역을 정복한 야쿱 벡 정권을 2년 만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이는 오직 좌종당의 끊임없는 노력과 의지가 빛난 결정체, 그 자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 중국은 서구열강의 먹이감으로 전락해서 시달림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신강지역의 이슬람인들이 반란을 획책해서 정권을 세웠을 때, 영국-러시아-오스트리아 등과 국교를 가질 정도로 지원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말이 쉽지 쇠퇴기에 접어든 청나라가 머나먼 신강지역까지 원정을..

혼란한 현대중국에 해법을 제시했던 양계초

양계초 - 이미지출처 : 위키백과 광서 33년(1907) 10월 17일 요코하마에서 칩거하던 양계초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서 다시 활발한 강연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나 도중에 수 백명의 중국동맹회 회원들이 난입해서 폭행할 정도로 어려움과 고통이 뒤따르기도 했다. 허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광서 34년(1908)년 상해에 정문사를 만들고 그는 스승 강유위와 함께 국회의 개설을 위한 조속한 청원운동에 들어갔고, 이는 서태후를 비롯한 보수파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서태후는 정문사를 폐쇄시키나, 11월 광서제와 서태후가 하루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부이가 황제에 오르고) 재풍이 섭정왕이 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재풍은 섭정이 되자마자 원세개를 잘라냈고, 강유위는 크게 기뻐하며 원세개의 죄상을 까..

장개석과 모택동이 모두 존경하는 증국번

태평천국운동과 염군의 난을 진압한 증국번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후진타오를 비롯한 중국의 최고위층이 존경하는 인물로는 흔히 강희제를 꼽는다. 그렇다면 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주석이라 할 만한 모택동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바로 태평천국운동을 성공적으로 진압하고 청나라 정계의 거목이 된 증국번이다. 근데 재밌는 점은 국민당을 이끌면서 그와 대결을 펼친 장개석 총통 역시 증국번을 존경한다는 사실이다. 무엇 때문에 가치관도 다르고 첨예하게 이해가 대립되는 두 사람이 근대격변기의 인물인 증국번을 존경하는 것일까? 태평천국운동은 한동안 중국 공산당에선 위대한 농민운동으로 설명했다. 따라서 이를 진압하고 청나라 조정을 대표한 증국번과 이홍장등은 반대급부로 비판을 받는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굴욕과 치욕을 견뎌낸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홍장

이홍장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개인적으로 중국 근대사를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 한명 있다. 바로 이홍장이다. 스승 증국번과 함께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을 진압하고 화려하게 청조정에 등장한 그는 말 그대로 중국근대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일본과 맞서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키운 북양군은 훗날 원세개에게 이어져, 그가 손문을 밀어내고 초대총통이 되는 정치적 밑거름이 된다. 젊은 손문은 북양대신인 이홍장에게 편지를 보냈고, 변법자강운동을 일으킨 강유위와 양계초는 그와 어느 정도 의견대립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호장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서태후를 비롯한 청조정의 뒷수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구열강들과 늘 굴욕적인 조약을 맺었다. 거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조약을 체결한 것이기..

장학량은 왜 장개석 총통을 감금했는가?

청년 시절의 장학량 - 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역사는 때때로 한 사람에 의해 큰 흐름이 바뀔 때가 있다. 중국의 근대사는 여러 인물들로 인해 그 흐름이 크게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도 장개석과 모택동의 명운을 크게 바꾼 사건을 들라면 아마도 1936년 12월 12일 벌어진 ‘서안사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산군 토벌을 격려차 온 장개석을 장학량이 섬서성에서 체포하여 감금한 사건으로 중국 전체를 들었다 논 일이었다. 이는 당시 장학량이 남경정부의 부사령관이며, 장개석의 부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하극상’이란 초유의 사태다. 게다가 당시 장개석이 국민당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정을 고려했을 때, 그야말로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야기는 장학량의 아버지 장작림이 폭사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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