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마침내 일드를 넘어서다! ‘제빵왕 김탁구’

朱雀 2010. 8. 1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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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덩.어.리’란 말을 기억하는가? MBC에서 방영되어 명본좌의 이름을 더욱 높인 <베토벤 바이러스>는 한 고집스런 마에스트로와 음악가가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들 사이의 이야기를 너무나 멋지게 소화해냈었다.

 

당시 내가 받은 느낌은 ‘이런 드라마가 또 나올 수 있을까?’였다. 매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가 있고, 주인공들의 명연기는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었다. 그뿐인가? 그 속에 살짝 얹은 음악이야기는 그야말로 완벽한 조화였다!

 

그런데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무도 말은 안 하지만 분명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어릴 적 사고로 비행기를 타지 못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는 치아키와 오직 피아노 치는 것외엔 다른 것에 관심 없는 노다메가 엮어가는 이야기 <노다메 칸타빌레>는 학원을 배경으로 일드 답게, 음악가와 음악에 대해 세세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스토리라인은 분명 <베토벤 바이러스>의 작가라면 한번쯤 참고했을 법할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스토리라인을 따온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노다메 칸타빌레>의 영향을 받았다면, 그것을 한국적으로 더욱 재해석하고 발전시켜 나은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음악을 통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오직 음악 밖에 모르는 예술가들의 단면을 통해 인간의 여러 모습들을 그려냈다. 한 편의 드라마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2010년 우리 곁에 그런 드라마가 한편 더 왔다! 바로 <제빵왕 김탁구>다! <제빵왕 김탁구>는 얼핏 보기엔 촌스럽기 그지 없다!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그 시절의 복장과 그 시절의 순수한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제빵왕 김탁구>는 한국판 막장드라마의 설정을 총동원한다. 김탁구의 어머니 김미선은, 거성가의 식모로 일하다가 구일중과 눈이 맞아 하룻밤을 보내고 아들 김탁구는 임신하게 된다.

 

서인숙은 딸만 둘을 내리낳자, 아들을 낳을 욕심에 자신의 옛 애인인 한승재 비서실장을 꼬드겨 동침하고 구마준을 낳는다. 그리고 김탁구 모자의 존재를 알게 되자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된다.

 

<제빵왕 김탁구>를 처음 볼 때는 ‘시청률 40%대의 국민드라마’가 될 거라곤 전혀 생각질 못했다. 그저 요새 유행하는 ‘막장드라마의 코드를 따라 시청률만 노린 저질 드라마’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결국 바뀌게 되었다. <제빵왕 김탁구>는 분명 막장드라마의 장치들을 가져다 쓰긴 한다. 그러나 그것은 갈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

 

<제빵왕 김탁구>란 제목은 얼핏 들으면 유치하기 그지 없다. 허나 작품을 보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제빵왕 김탁구>의 진짜 내용은 김탁구가 팔봉빵집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어머니를 납치한 바람개비 문신을 찾아 온 김탁구는 진구를 결국 용서한다. 그뿐인가? 자신의 눈을 멀게할 뻔한 오븐가스 폭발 사건과 1차 경합때의 밀가루를 망치고 누명을 씌운 재복을 용서한다.

 

진구와 재복을 용서하는 김탁구의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그의 분노와 한을 생각했을 때, 다소 심한 복수를 해도 충분한 상황에서 그가 아름다운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일본 드라마처럼 ‘빵’이란 한 가지 소재를 통해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일드는 어떤 소재 하나를 가지고 마치 장인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거기에서 모든 인간관계를 논한다.

 

<제빵왕 김탁구>는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 비록 빵을 먹으면서 뒤에서 갑자기 용이 나와서 춤추고 바람이 불고, 너무나 훌륭한 맛에 눈물을 흘리는 인물은 없다. 대신 그저 제빵점에서 돈 몇 푼 주고 살 수 있는 빵이 아니라,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최선을 다한 장인기술만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이란 소박하지만 당연한 진실을 웅변적으로 그려낸다.

 

그리하여 기술적으론 거의 장인경지에 오른 구마준의 빵이 그의 모자란 마음으로 인해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고, 비록 실력은 아직 부족하되 먹는 이를 행복하는 만드는 김탁구의 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현재 흥미진진하게 벌어지는 경합의 구도는 일드에서 흔히 취하는 구도다. 대결구도를 통해 흥미도를 높이고 이야기를 빠르게 전개시키는 것은 일본 만화와 일드에서 흔히 쓰는 전개방식이다.

 

그리고 1차 경합에서 ‘세상에서 제일 배부른 빵’이나 2차 경합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등의 문제는 또한 일본만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상천외한 문제와 비슷한 면이 있다.

 

사실 빵도 일본을 통해 국내에 들어왔지만 <제빵왕 김탁구>에선 ‘일본’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제빵왕 김탁구>은 빵을 통해 70-80년대 사회를 거의 완벽하게(적어도 이미지상으로) 우리 머릿속에 구현해내고, 좀 사는 집에선 어머니가 둘이 있어서 흔히 일어났던 씨앗싸움 등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빵’을 통해 인생을 논하고,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청률 40% 이상의 드라마라는 것은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모든 이들이 공감하고 재밌게 봐야지만 가능한 시청률이다.

 

<제빵왕 김탁구>는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해서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밖에 따뜻한 이야기들을 통해 보는 이가 반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여기에 비극적인 출생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항상 괴로워하는 구마준과 가진 것은 없지만 모두의 사랑을 받는 김탁구의 대비, 항상 주인공을 도와주는 착한 아가씨 양미순, 탁구의 첫사랑이지만 그녀의 폭력으로 얼룩진 어린시절에 대한 트라우마로 가득한 신유경이 점점 잘못된 선택으로 치닫는 부분들은 우릴 긴장케 하고 몰입해서 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여기에 구마준과 김탁구의 아버지인 구일중과 서인숙-한승재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온 복수의 여신 김미순의 인과관계가 서로 뱀의 꼬리를 물고 도는 것처럼 빙빙 돌아 우리의 호기심을 끝없이 자극한다.

 

마지막을 일드는 보통 11화정도에서 끝낸다. 그리고 매주 한편씩 밖에 방영하지 않는다. 이런 방송 시스템을 통해 ‘완성도’를 어느 정도 보장받는다. 그러나 우린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방송해야 하고, 최소 16부작 이상이어야 인기를 끌 수 있는 시스템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가 일드보다 작품성 있거나 재밌는 작품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 덕분에 오히려 우린 <제빵왕 김탁구>같은 작품을 만나지 않을까 싶다. 바로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서 모두가 그야말로 용광로 같은 열정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실시간으로 반응해서, 게시판등을 통해 의견을 접수하고 이는 다시 작품에 반영되어 나은 완성도를 향해 간다(물론 그렇다고 현재 시스템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제빵왕 김탁구>는 어떤 식으로든 일드를 참고했을 것이다. 바로 옆나라에 있고, 빵처럼 한가지 소재에 집착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있는데 참고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러나 <제빵왕 김탁구>는 ‘빵’이란 소재를 가지고 우리 실정에 맞게 취사선택해서 고치고 그 안에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채워냈다. 말하자면 ‘창조적 재탄생’을 시킨 셈이다! 그래서 나는 <제빵왕 김탁구>를 일드를 넘어선 작품이라고 감치 칭하고 싶다.


8/12 네이트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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