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21세기 초강대국?!

태평천국운동은 성경의 오독에서 시작되었다?

朱雀 2011. 4. 15.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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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옥새 - 이미지출처: 위키백과


태평천국운동은 중국근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일단 가뜩이나 허약한 청나라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부쳤다는 것에서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만약 홍수전이 남경에 수도를 정하지 않고, 그 이전과 마찬가지로 군과 함께 이동하며 북경을 압박했다면 오늘날 중국의 역사는 전혀 다른 식으로 전개되었을지 모른다.

 

아울러 당시 태평천국운동을 소탕하기 위해 청황실은 증국번-좌종당-이홍장 같은 한인관료들에게 병사를 모집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이전까지 청나라는 한족 관리에게 문관직은 수락해도 무관직은 주지 않았다. 반란을 염려한 탓이다- 따라서 태평천국운동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격동기 시절의 중국의 온갖 모순과 영웅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시절의 이야기라 할만하다.

 

태평천국운동은 시대를 완전히 바꿔놓았고, 누구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가지 하고자 한다. 홍수전의 태평천국운동은 철저한 성경오독에서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일단 배경부터 설명해보겠다!

 

태평천국운동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아편전쟁에서 진 청나라가 배상금을 무는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너무나 과징한 세금을 걷은 탓이다. 1839년 아편전쟁 전까지 외국인은 조계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약간의 뇌물을 쓰면 중국의 도시들을 구경할 수 있었지만, 서양오랑캐를 탐탁치 않게 여긴 청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 등등의 서구유럽 상인들을 철저하게 조계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상인들은 이런 청나라의 대접에도 불구하고 차와 비단 그리고 도자기 등의 물건을 가지고 본국에서 커다란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감수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보다 큰 이익을 보기 위해 조계지에서 벗어나 보다 편하게 무역을 하고 싶어했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들중에는 선교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선교사들은 (카톨릭과 개신교를 가리지 않고) 조계지에서 벗어나 조상신을 숭배하는 중국인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청황실은 이미 강희제때부터 선교사가 포교활동을 하는 것을 엄금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신자들을 만드려 애쓰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중 한명인 스코틀랜드 출신인 윌리엄 밀른은 중국인인 량아파를 고용하게 된다. 원래 량아파는 불교인이지만, 밀른과 함께 성경을 중국어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종하고 만다. 그리고 소책자를 만들어 광저우를 비롯한 곳에서 배포하기 시작한다. 이내 선교사들의 책자의 위력에 놀라고 만다. 그들이 말을 걸면 돌아서기 바쁘던 중국인들이 책자는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책자를 받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거나, 책자를 팔아먹을 속셈이기도 하지만, 개중에는 책자로 인해 개종하는 경우가 생겨난다. 기독교인이 된 량아파는 이제 좀 더 대담한 시도를 벌인다. 1932년 그는 자신이 그동안 배운 기독교의 핵심을 정리해서 한권의 책을 만들고 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고 한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400km이상을 이동하며 중국인들에게 책자를 배포한다. 적게는 몇 천권에서 많게는 2만권까지. 여기엔 미국인 목사 스티븐슨과 카를 귀츨라프가 동행한다.

 

홍화수는 1936년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우연히 스티븐슨을 만나고 그에게서 권세양언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읽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에 낙방하고 실망감에 죽음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한 열병을 앓던 그는 환상을 보게 된다.

 

그는 하늘나라로 올라가 태상제를 만나고 자신이 하늘에서 땅으로 보내진 그의 아들임을 안다. 그리고 형을 만나고, 그와 함께 요괴들을 토벌하게 된다. 환상에서 깨어난 그는 권세양언을 읽고, 자신이 본 태상제가 실은 여호와 하나님이며, 자신의 형은 예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이런 오해의 기초는 권세양언의 번역상의 문제 때문이었다. 중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호화를 표기할 때 ()’를 쓰고, 홍수를 표현할 때 ()’자가 쓰여진 탓이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당시 홍화수는 이런 권세양언에 나타난 한자들을 보고 자신의 이름이 반복되자,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과 권세양언을 엮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말도 안되는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만약 홍화수가 중국식 성경인 권세양언을 받지 않았다면 태평천국운동은 시작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니, 책을 받았더라도 그가 환상을 보지 않았다면,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환상에서 깨어난 그는 하나님을 뜻하는 ()’대신에 완전함을 뜻하는 ()’를 쓰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홍수전이 바로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이 되시겠다!

 

참고 :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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