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하는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朱雀 2016. 4.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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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꿈 많고 상상하기 좋아하는 나루세 준이 어린 시절 겪은 혹독한 경험에서 시작된다. 산 위에 있는 성 모양의 러브호텔을 준은 왕자님이 살고, 사람들이 모여서 무도회를 여는 곳으로 상상한다.



그곳에서 준은 아버지가 차를 타고 다른 여자와 나온 것을 목격한다. 그러나 어린 준은 그 사실을 엄마에게 별 생각없이 말하고, 그것은 가족이 헤어지는 결과로 다가오게 된다. 어린 준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때마침 나타난 달걀요정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입을 봉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흘러 준은 고등학생이 되고 선생님의 강권에 따라 지역 교류회의 준비위원이 된다. 여기서 그녀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생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그녀 주위엔 친구가 없다. 준의 엄마는 말하지 않는 딸을 오해하고 부끄러워 하기에 이른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준비위원을 관두려고 했던 준은 우연히 타쿠미의 아코디언 연주를 듣게 되고,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타쿠미 역시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준에게 호감을 갖고 최대한 도움을 주기에 이른다. 어떤 의미에서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전형적인 패턴물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고, 처음엔 모든 반친구들이 반대했던 뮤지컬 공연은 결국엔 모두가 힘을 합쳐서 성대하게 열게 되기에 이른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등장인물이 모두 '선하다’라는 점이다.



네 명의 준비위원중에 야구선수인 다이키는 고시엔을 앞두고 팔이 다치는 바람에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 탓에 그는 틱틱거리고 누구보다 가장 비협조적인 인물로 처음엔 그려진다. 그러나 이내 중반부를 넘어서면 그는 누구보다 상냥하고 성공적인 뮤지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말로 인해 상처를 입은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준은 자신이 생각없이 내뱉은 말로 인해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건 언젠가 알 수 밖에 없는 사실이었고, 어른으로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은 준의 아빠의 모습은 어른으로서 적절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그가 자신의 치부를 말한 딸을 책망하는 듯한 모습은 위선적이란 생각 밖에 할 수 밖에 없었다. 팔이 다친 다이키는 그 상황에서도 야구부에 가서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팀원들을 다그친다. 겉으론 보기엔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건 에이스로서 활약하지 못한 미안함과 야구부원들이 더욱 노력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야구부원들 가운덴 그의 진심을 모르고 그가 없는 자리에서 험담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우린 학교에서 직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거나, 혹은 아무런 죄없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단체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중에 하나는 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근거없는 이야기로 인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던가? 말은 칼보다 더 무섭게 사람을 공격하고 다치게 만든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에선 말 때문에 상처 입는 인물들의 모습을 잘 그려낸다.






그로인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서 역할을 한다. 물론 작품에선 달걀요정이 등장해서 판타지적인 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달걀요정은 오직 준의 눈에만 보일 뿐이고, 그건 어찌보면 준의 ‘내면의 목소리’일수도 있다.



우린 말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건 고스란히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또한 어중간한 태도와 말은 오히려 오해를 증폭시키고 다른 이와의 관계를 망쳐버린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에선 진심을 똑바로 제대로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 작품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줄 수 밖에 없다. 우리 역시 살면서 말실수를 한번 이상은 해보았으니까.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얻은 상처는 관계에서 다시 회복될 수 밖에 없다. 말을 봉인한 준은 타쿠미를 보면서, 생각없이 상처 줄 수 있는 말을 내뱉는 반친구들을 보면서 말을 하게 되고, 급기야는 스스로의 봉인을 깨기에 이른다.



그러나 봉인을 깬 것은 그만큼 고스란히 고통으로 다가오고, 타쿠미와의 관계도 준의 마음대론 되지 않는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분명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관객에게 100% 만족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준과 타쿠미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녀주인공이 반드시 연결되란 법은 없지 않는가? 꼭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분명히 친구 관계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은 말의 소중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말하는 작품이며,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극중 극인 뮤지컬은 스스로의 상처를 회복해가는 준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말미에 관객에게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왠만한 영화보다 더 낫다. 그 메시지와 작품이 주는 울림은 오랫동안 관객에게 기억될 만한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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