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주작 朱雀 2020. 2. 14. 08:00

제목은 거창하게 지었지만, 사실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에 이어 지난 9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국제장편영화, 각본상의 4개 부문을 수상하며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연히 국내 커뮤니티에선 이에 따라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게 몇 가지 있다. ‘기생충은 한국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생충'의 수상 목록을 적은 패러디 포스터. 새삼 대단하다!

오늘날 한국 영화계에선 이른바 흥행 공식에 맞춰 영화를 양산하며, 그 과정에서 감독들의 편집권은 보장되지 않는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등 몇몇 감독을 제외하면 자기 뚝심 대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만약 봉준호 감독이 아니었다면 기생충100억이 넘는 돈이 투자되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CJ는 오늘날 방송과 극장 사업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고, 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을 위해 5백여 차례가 넘는 모임에 참석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카데미 투표에 참여하는 인원이 8천여명이 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조합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만남을 가져야 한다.

 

CJ가 이를 위해 쓴 돈은 ‘100억원+알파로 알려져 있다. ‘로마300억원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돈이지만, 국내 그룹의 규모를 생각하면? 절대 작은 예산집행이 아니다.

 

게다가 아카데미 수상을 변방의 작은 나라가 할 거라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는 매우 공격적인 투자였다. 사실 이런 CJ의 투자는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설국열차의 경우 제작비는 약 400억원이었다.

 

처음엔 외국제작사와 합작하는 형태였지만, 결국 제작하는 과정에서 CJ가 전부 투자하는 걸로 바뀌었다. 우리에겐 캡틴 아메리카로 익숙한 크리스 에반스는 저예산 영화라고 말했지만(‘어벤져스같은 대규모 영화에 출연한 그로선 충분히 그럴 만 했다), 국내 영화기업에겐 엄청난 규모의 집행이었다.

 

게다가 봉준호 감독은 이전까지 이 정도 규모의 블록버스터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CJ의 그런 적극적인 투자와 CGV를 통한 국내 배급, 해외진출에 대한 노력이 결국 오늘날 결실을 맺은 것이다.

 

영화는 예술인가? 산업인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몇 억 규모의 저예산 영화를 제외한 일반적인 극장 상영을 위한 장편영화들은 상업영화가 지배적이다. 그건 CJ같은 대기업의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수익을 얻고 싶어한다. 손해보고 싶은 이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규모 예산이 집행되는 영화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 과정에서 감독의 권한이 줄어들고, 제작사와 제작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그렇다고 감독에게 전적으로 권한이 주어지면 좋은 영화가 나올까? ‘넷플릭스는 감독에게 거의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덕분에 로마’ ‘옥자’ ‘아이리시맨같은 명작들이 탄생했다.

 

그러나 셀 수 없는 망작들도 엄청나게 많이 제작되었다. ‘완성도 높은 영화가 제작되기 위해서 감독과 제작자 가운데 누구의 권한이 더 강해야 하는가?’는 사실 바보같은 질문이다.

 

봉준호 감독 같은 이에겐 전적으로 모든 권한을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적절하게 제작자가 관여해야 더 나은 결과물을 나올 수도 있다. 이른바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오늘날 상업영화는 제작비 규모가 더욱 커져가고, 한국 같이 작은 시장에선 CJ같은 기업이 절대 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CJ를 악당으로 분류하면 안된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더욱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미경 CJ부회장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발언을 한 것으로도 논란이 있는데, 이 역시 동의하지 못하겠다. 앞서 논한대로 CJ는 그 동안 봉준호 감독이 최고의 환경에서 제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했다.

 

게다가 잘 알려진 대로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봉준호 감독이 별 다른 영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방어막 역할도 했다. 덕분에 정권에 밉보인 이미경 CJ부회장이 2014년 미국행을 택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가 아니던가?

 

기생충의 이번 아카데미 4관왕 수상은 분명히 감독 본인의 능력이지만, 이미경 CJ부회장의 뒷받침이 상당 부분 도움이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카데미 수상은 봉준호에게도, 영화 스탭진과 출연 배우에게도, 마찬가지로 제작과 투자와 배급에 애써온 CJ에도 큰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떤 사안에 대해 단순화해서 이해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결론이나 주장을 해선 곤란하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요인들이 존재한다. 좀 더 깊은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