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결국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미실이었다!

朱雀 2009. 11. 1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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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를 본 지금 <선덕여왕>의 주인공은 결국 미실이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먼저 미실이 항복하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자. 그녀는 속함성의 성주가 자신을 돕기 위해 국경수비를 비우고, 오게 되자 이를 만류한다. 특별히 파발을 띄워 속함성 방어를 공고히 할 것을 명령한다. 이에 성주는 어쩔 수 없이 따른다.

덕만공주와 미실이 내전이란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지킨 원칙이 하나 있다면, 바로 국경수비만큼은 공고히 한다는 것이었다. 50화까지 신라의 현 상황은 미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비록 서라벌 주변은 덕만공주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을 지라도, 장기적으로 가면 미실에겐 어느 정도 승산이 있어보였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고맙게도 2만의 강력한 군사를 지닌 군벌이 돕기 위해 나섰다! 백제가 빈틈을 노리고 쳐들어오겠지만, 얼마든지 빨리 덕만일파를 일소하고 다시 회복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실은 자신이 직접 피를 뿌리며 일군 신라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묻어주지 못한 부하들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덕만은 미실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비겁한 수를 썼다. 바로 비담이 들려준 물길을 막고 지류에 독을 푸는 계책이었다. 물론 실제로 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소문을 퍼트려 민심을 흉흉케 했다는 사실자체가 덕만의 여왕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했다. 또한 미실이란 인재를 얻기 위해 연합을 제의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는 자신이 미실을 제어할 수 있다는 망상을 가졌거나, 아니면 이전까지 미실에게 쌓은 원한을 망각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절대자 미실

물론 덕만이 이전까지의 원한을 잊고 미실에게 손을 내민 부분은 어떤 의미에선 상당히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미실이 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고, 미실이 나라를 운영한 경륜을 높이 사서, 이제와 그의 능력을 쓰고자 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모순적이다. 아무래도 작가진이 덕만을 멋지게 포장하기 위해 쓴 기만책이라고 밖에 여겨지질 않는다.

덕만과 미실은 이미 내전상황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갈때까지 간거다. 아무리 공주라해도 그녀의 힘으로 미실을 용서해주고 이전의 지위를 회복해줄수 있을까? 여론이 그것을 납득할까? 이제 막 자신을 따르기 시작한 귀족세력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너무 산적한 문제가 많기 때문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자신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덕만은 아직 궁내부를 장악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실이 돌아온다면, 다시 천하는 미실의 손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의이자, 연합이다.

미실은 그런 달콤한 제안을 거절했다. 아마 첫 번째는 자존심일 것이다. 배수의 진을 치고 덕만과 싸우고자 하는 그녀가 덕만의 손을 잡는다면, 그건 누가봐도 자신이 지고 들어가는 거다. 그걸 그녀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미실은 자신이 세상을 가지거나, 아님 그러지 못하거나 둘중에 하나만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중간은 없다.

셋째, 미실이 마지막에 결심했지만 그녀는 자신이 존재하는 자체가 신국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미실을 흠모하는 세력이 많고 그들은 속함성의 성주가 그러했던 것처럼 신라의 안위는 뒤로 한 채 그녀를 도우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통성은 덕만에게 있고, 이는 길고 오랜 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신라가 망하는 길이다.

미실이 자신이 진흥왕과 더불어 죽을 고생을 하며 만들어낸 오늘날의 신라가 그렇게 붕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 못지 않은 능력을 가진 덕만공주에게 모든 것을 넘겨버리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아들인 비담에게 몇가지 힌트를 줘서 훗날 그가 덕만에 반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아니 비담이 왕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몇 가지 암시를 주고 떠났다.

그녀가 보여준 다양한 모습들은 우리가 <선덕여왕>을 보는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주었다. 이제 그녀가 빠진 이 엄청난 구멍을 누가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진정 드라마의 제목은 <선덕여왕>이지만, 지난 50화동안 극을 이끌어오면서 현재 40%대의 시청율을 만들어낸 주역은 누가 뭐래도 미실역의 고현정이었다.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미실역의 고현정은 이전까지 악역을 해본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 고현정의 연기엔 몇가지 불만이 있으나, 그녀가 만들어낸 ‘미실’의 이미지는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녀가 만들어낸 미실은 신라를 실질적으로 다스린 절대권력자이자, 자신의 자식을 버릴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이다. 동시에 여인의 감성으로 세세한 것까지 신경쓰고, 훗날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직관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분명 잘못한 것도 많고 무서운 인물이지만, 오늘날 만약 살아있다면 어떤 의미에선 대단히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미실은 적인 덕만공주에게 ‘스승’의 역할을 해주는 독특한 관계를 형성했으며,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항상 <선덕여왕>의 중심에 섰다.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어찌보면 극의 중심이 아닌 조금 비껴진 곳에서, 그녀가 만들어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인물에 불과했다. 그만큼 그녀의 카리스마와 행동력과 역할을 대단했다. - 고현정은 만약 생애최초로 악역을 했다가 실패할 경우, 그전까지의 인기와 위치등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과감히 연기변신을 시도해 성공했다. 이는 매우 높이 평가받아 마땅한 대목이라 여겨진다!

이제 미실이란 가장 핵심적인 인물이 사라진 <선덕여왕>이 어떻게 나머지 이야기를 이끌어갈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지경이다. 진정 드라마의 제목은 <선덕여왕>이었지만, 주인공은 미실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신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군주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동안 미실이 유일하게 부족했다고 여겨졌던 면모마저 고현정은 보여줌으로써, 미실의 완벽함에 완벽함을 더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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