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찬란한 유산'의 상대는 '대장금'이다!

朱雀 2009. 6. 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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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방영 이후로, 많은 이들이 <대장금>의 신화를 다시금 살려낼 작품으로 갑론을박을 벌였다. 일단 나는 <선덕여왕>이 <대장금>의 신화를 다시 살려내기란 어렵다고 보는 측이다. 가장 큰 문제는 <선덕여왕>은 <대장금>의 가장 큰 장점인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꺼리가 부족하다는 거다. 물론 아직 40부가 넘게 남았기 때문에 그 사이 풀어낼 수 있겠지만(그렇게 돼서 나의 예측이 틀리길 바란다), 현재까지 진행으론 그다지 희망적이지 못하다.

<대장금>은 일단 수랏간 나인인 장금이가 수랏간에서 매번 ‘임무수행’와 ‘대결’을 통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또한 생각하게 하는 학습법과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려주는 소위 ‘엘리트 주입식’ 교육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 쉽지 않은 고민을 시청자에게 선사했다. 무엇보다 천한 신분의 여성이 그것도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모든 난관과 시련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조선 유일의 여성 주치의가 된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게 하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비록 우리나라의 사극이었으되, 그 안에 담겨진 메시지는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라 전 세계인의 공감을 샀고, 더불어 한식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사를 불러오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일으켰다. <허준>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의술이 인술’임을 탁월하게 이야기로 엮어낸 이병훈 PD의 연출력이 실로 빛난 작품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방송되는 <선덕여왕>의 이야기는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기에 충분한 작품일까?



단순한 드라마로 치부하기엔 <찬란한 유산>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그속에서 등장인물들이 겪고 하는 행동들은 현실의 우리와 너무 닮아있다.

오히려 나는 <찬란한 유산>이 전 세계인의 공감을 사기에 더욱 쉽다고 판단된다. 물론 <찬란한 유산>은 일단 사극도 아니고, <대장금>처럼 매회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내용을 보면 울림은 <대장금> 못지 않다. 본디 젖먹이 아들과 굶어죽을 위기에 놓였던 장숙자(반효정)은 어떤 국밥집 주인의 도움으로 그곳에 기거하면서 살게 된다. 국밥집 주인은 죽을 때 놀랍게도 그녀에게 가게를 물려주었고, 장숙자는 그것을 기반으로 오늘날 중견기업에 이르는 진진식품을 경영하게 된다. 그녀 역시 생판 남인 고은성(한효주)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물론 사고를 당한 그녀를 고은성이 정성스럽게 보살펴 주긴 했지만,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심하다. 그러나 그녀에겐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녀는 죽은 아들의 처와 자식과 함께 산다. 불쌍하게 여겨 오냐오냐 키웠더니 두 모녀는 그녀가 벌어들인 돈을 온갖 사치로 쓰기 바쁘고, 선우환은 전형적인 부잣집 망나니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들은 만약 기업을 물려주면 다 팔아치우고 폼나는 ‘골프업’이나 ‘호텔업’을 할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이대로 자신의 기업을 물려주면 기업에 딸린 몇 천명의 사원들의 삶이 불행해질 것을 염려해 마음이 착해 보이는 고은성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가능한 설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보기 힘든 광경이다.

기업인 출신의 현 대통령은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외치며 기업을 위한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있다. 종부세를 비롯한 대표적인 부자감세를 밀어붙이면서, 노약자와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약자를 위한 안전망은 걷어치우고 있다 그뿐인가? 대운하 사업으로 의심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충분한 검토기간도 갖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다. 대학생들은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견디다 못해 ‘반값 등록금’ 공약을 실천하라 시위했지만, 정부는 이들을 잡아들이고 ‘학생은 공부나해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전 대통령은 국세청과 검찰이 총동원되어 사돈의 팔촌까지 샅샅이 조사해서 결국 자살하게 만들었고,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든 'PD수첩‘ 제작진은 7개월 치 이메일을 샅샅이 뒤져 자신들의 입맛대로 편한 부분만 골라 언론에 공개해 ’사상재판‘부터 치루고 있다.

사람들은 현 정부를 욕하지만, 내가 보기엔 우리도 그들과 별 다를 바 없다. 겨우 몇해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별다른 정책없이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잘 살게 해주겠다’며 뉴타운 공약과 심지어 미국까지 유학다녀온 모 의원은 과외까지 해주겠다며 선거운동을 펼쳤고, 사람들은 그들을 뽑아 오늘날 국정을 운영케 했다.

동네 가게를 잡아먹기 위해 대기업들의 중소 슈퍼마켓이 동네마다 100미터 안짝으로 들어오고, 빵가게 옆에 파리바게트를 비롯한 체인점이 들어와 망하게 만드는 현 사회는 ‘정글’보다 더한 행동으로 없는 자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있는 자들은 말한다. ‘억울하면 너도 돈 벌어’. 오직 돈만이 세상의 절대적인 잣대인 사회. 그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결국 금융위기 이후 소위 선진국들은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욱 걷어들이고, 사회 약자들을 돕는 정책과 거꾸로 가는 우리의 실정은 우리 스스로 만든 셈이다.

설렁탕 집을 찾는 손님들을 우습게 보는 선우환에게 고은성은 말한다. “우리 손님들 우습게 보지 말아요. 회장님은 그분들에게 국밥 팔아서 먹고 입고 당신을 키웠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이런 기업을 세우셨어요. 고마워해야 되요!”

별거 아닌 말이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그냥 흘려 들을 수 없는 말이다. 선거때엔 간이라도 내줄 듯 굽신거리지만, 선거만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 마음대로 해쳐먹는 국회의원과 이윤추구에 눈이 벌겋게 멀어 최소한의 기업윤리도 지키지 않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판치는 세상에선 더더욱 말이다.

그뿐인가? 선우환을 비롯한 가족들이 자신을 미워함에도 장숙자 회장은 말한다. “나는 저 녀석 사랑해. 비록 나를 미워한다고 해도 나는 쟤를 미워할 수 없어. 저 녀석한테 뭐가 아깝겠어. 저한테 유산을 주지 않겠다고 유서를 작성한 내 맘을 저 녀석은 알까? 죽어도 저 녀석 사랑해. 아니 죽어서도 사랑해.”

그러면서 하루 종일 전단지를 나르느라 퉁퉁 부르튼 손자의 발을 뜨거운 수건으로 손수 찜찔 해준다. 손님 알기를 하늘처럼 알고, 자신이 번 돈이 혼자 잘 나서 번게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독거노인을 비롯한 어려운 이웃을 돕고, 자신의 가족 뿐만 아니라 전 사원을 생각해 기업을 고은성에게 물려주겠다고(물론 몇 가지 조건을 달았지만) 폭탄 선언한 그녀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자신의 뜻을 오해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사랑으로 보듬는 그녀의 모습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왠지 겹친다.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라고 말했던 우리 시대의 바보 대통령 노무현. 우리 나라에 그와 같은 대통령이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그를 불행한 죽음으로 몰고 간 데는 언론과 검찰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게 '원죄'가 있다.

당연히 옳은 것인지 알지만 누구도 손해 보는 길이라 가지 않으려 하지 않았던 그곳을 홀로 당당히 간 사람. 그를 탄핵에서 건져낸 국민들마저 모든 나쁜 일을 그의 탓이라 하며 욕할 때 묵묵히 자신의 할 일만 한 사람.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생각하는 장숙자의 모습에서 난 그 분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희대의 악녀로 출연하는 김미숙은 어떤가? 그녀는 자신과 딸을 위해 고은성의 아버지에게 일부러 파산하게 만들고 죽은 것으로 위장했다. 그것도 부족해 자신의 차를 본 자폐아 은우를 손수 데려다 버리면서 심지어 협박까지 했다. 자신과 딸의 영달을 위해 주변에게 갖은 가증스런 거짓말을 늘어놓고 차마 인간으로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청기와집의 누군가와 측근들 그리고 현재 다수 국회의원과 기업인들의 떠올리게 한다. 김미숙이 연기하는 백성미는 그래서 더더욱 비현실적인 인물이 될 수 없다.


김미숙이 연기하는 백성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외모와 지성은 물론 모든 주변의 상황을 이용하며 부단하게 변신하는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다. 광복이후 친일파의 행적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특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태연하고 임기웅변을 보여주는 그녀의 탁월한 능력은 광복이후 친일파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어 씁쓸하다.

그녀의 딸인 유승미는 어떤가? 본래 착한 그녀는 고은성과 은우를 내쫓을 때 반대하고 도와주기 위해 애쓰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사랑인 선우환과 맺어지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엄마의 행동을 돕고 있다. 소극적인 그녀의 악행과 고민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부잣집 철부지 딸에서 자살 직전까지 간 고은성의 처지는 어떤가? 지난 IMF와 얼마 전 금융위기로 대한민국엔 고은성과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넘쳐난다. 우리가 신문과 방송 뉴스에서 한동안 가슴 아프게 들었던 동반자살들의 이야기는 그녀와 다를 바 없다.

아버지는 사고로 죽고 동생마저 잃은 상황에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진진식품의 사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욱 응원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전 세계인들은 지금 금융위기 이후 모두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찬란한 유산>의 이야기는 우리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하고 여겨진다. 머리색과 피부 색깔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잘살겠다고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사회. 기업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판치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찬란한 유산>은 그래서 단순히 드라마로서 볼 수가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적지 않은 의미를 준 <대장금>이후, 사람 사는 사회에 대해 이토록 풍자적이고 현실적으로 파고든 작품엔 <찬란한 유산>만한 게 있을까 싶다. 하여 나는 <찬란한 유산>이 <대장금>의 상대가 되었으면 한다. <찬란한 유산>은 분명 그만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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