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사이야기

어느 살세라의 죽음

朱雀 2010. 10. 4. 11:06
728x90
반응형



지난 주 토요일 나에겐 충격적인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바로 내가 처음 손을 잡은 여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늘 그렇지만 아는 이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우리가 아는 이가 죽을 거라곤 차마 생각하질 못한다.

 

나는 죽은 이를 욕되게 하거나 오해받을 일을 하고 싶지 않다. 하여 그녀의 닉네임을 가명 처리 한다. 또한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하고 자신 멋대로 기억한다는 사실을 미리 밝히고 싶다. 아마 누나에 대한 내 기억은 내 멋대로 윤색되고 각색되었을 것이기에.

 

핑크 누나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일이다. 당시 나는 막연히 댄스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가, 큰 결심을 하고 다음 검색을 통해 한 살사까페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내가 ‘살사’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다. 원래 내가 배우고 싶은 춤은 댄스스포츠였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를 보고 춤을 배우고 싶다는 욕망이 한참 강해질 때였으니까. 아마 살사와 댄스스포츠의 차이를 알았다면 다른 까페에 가입했을 것이다. 그땐 전혀 몰랐기에 무작정 배웠다. 아마 차이를 알았다면 내 댄스인생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인원이 많은 까페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불과 20여명도 회원이 안 되는 소모임 까페에 가입을 했다. 아마도 인원수가 많은 데보다는 적은 곳이 좀 더 신입회원에게 잘 신경써주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처음 살사 댄스 모임에 간 나는 무척 쑥스러웠다. 사람들은 서로 친했고, 잘 아는 듯 했다. 동호회 선배들이 웃으면서 반가워해줬지만, 처음 보는 이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내 성격에 한쪽 구석에 멀뚱히 있을 뿐이었다.

 

첫 살사 초급 수업이 곧 시작되었고, 베이직 스텝을 밟다가 남녀끼리 홀딩을 하게 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 여성의 왼쪽 견갑골에 오른손을 대는 순간 무척 민망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남녀칠세부동석을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천해온 탓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특히 손끝으로 느껴지는 브라끈의 느낌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잠시, 이내 좌절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모든 회원들이 강습실에서 모여 그날 배운 걸 복습하거나 프리댄스를 추곤 했는데, 선배들의 우월한 춤솜씨에 비해 베이직 스텝도 제대로 못 밟는 나로선 ‘언제 저렇게 되냐?’라고 속으로 되뇌이며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당시 핑크누나는 나처럼 초보자였다. 우린 의도하지 않게 서로 손을 맞잡고 연습할 기회가 많았다. 당시 우리 모임은 일요일이 정기모임였는데, 나랑 손잡고 가장 많이 연습을 한 인물은 핑크누나였다. 사실 핑크누나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마 누나에겐 나 역시 그랬으리라-

 

다른 걸 떠나서 누나의 목소리는 금속성이었고, 어딘가 짜증나는 이야기 스타일에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러나 동호회 선배들이 예쁘거나 춤 잘추는 여성회원들을 데리고 추는 상태에서(게다가 다른 데 회원들까지 가세해서 여성회원들을 독점하는 탓에 우리는 모두 기분이 썩 좋질 않았다) 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종종 남자회원들끼리 춤추긴 했지만, 난 개인적으로 남자랑 추는 것을 (연습이라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랑 춤을 시작한 다른 이들이 여성 스텝을 어느 정도 하는 것에 비해, 내가 여자 스텝을 전혀 못하는 것엔 그런 사정이 있었다.

 

-사실 춤을 더 잘 추긴 위해선, 살세라의 스텝이나 입장과 상황 등을 더 알 필요가 있는데, 나는 남자랑 추기 싫은 탓에 그런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핑크누나나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우린 둘 다 연습벌레였다. 그날 배운 건 그날 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런 연습은 나중에 나에게 다른 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찾아왔다. 그 이야긴 나중에- 그러다보니 우린 초급 발표회까지 같이 하게 되었다.

 

핑크누나는 춤 출 때 무척 열정적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누나는 세상 모든 일을 잊어버릴 것처럼 춤에 몰두했다. 나는 그런 누나를 보면서 ‘뭔가 맺힌 게 많나 보다’라고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다.

 

나중에 누나네 집에 놀러갈 기회가 있었는데, 누나에겐 열 살이 넘은 딸이 있었다. 당시 나는 몹시 놀랐다. 누나는 20대 초반에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고, 그만 원치 않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누나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졌다. 자신이 아이를 맡이 키운 것이다! 누나는 당시 기능직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이 무척 힘들고 고되었다. 사춘기로 접어든 아이는 엄마에게 반항적이었고, 고된 업무와 육아로 누나는 일상은 무척 힘든 상황임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누나에게 살사는 ‘삶의 윤활유이자 청량제’였다. 누나가 넉넉지 않은 살림과 바쁜 일상에서도 굳이 업무 스케줄을 바꾸면서까지 살사 댄스에 매진한 것은 아마도 ‘꿈’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나의 부음을 듣고 난 한참동안 누나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누나랑 나눈 이야기 중에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진: 영화 <쉘 위 댄스> 중에서...

핑크누나는 예쁘지 않았다. 따라서 많은 살세로들의 홀딩신청이 이어지질 않았다. 누나는 춤을 잘 추는 편도 아니었다. 아니, 뭔가 어색하고 힘도 세고 잘 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누나의 살사에 대한 열정은 진짜 였고,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 그건 옆에서 본 내가 보증할 수 있다.

 

나는 처음 살사를 배운 까페를 나온 이후, 자연스럽게 누나와 연락이 멀어졌다. 그 이후 누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사는 계속 했는지 나로선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핑크 누나가 하늘나라에선 수십 아니 수백 명의 남자들이 줄지어서 춤을 신청하고, 너무나 멋지게 춤을 추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영화에선 보통 평범하거나 루저인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결과를 이루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허나 실제 삶에선 아무리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도 좋은 결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린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이의 조연이나 엑스트리가 되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나 삶의 주인공은 누나였다. 누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춤으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나는 그녀가 정말 하늘나라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최고의 살세라로 플로어위를 누볐으면 한다. 미모로도 춤으로도. 나 같은 범인은 감히 그런 상상을 하고 싶다. 내 멋대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