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김소연의 이야기에 웃을 수 없었던 이유

朱雀 2010. 10. 1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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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연히 재방송으로 <강심장>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배우인 김소연이 <닥터 챔프>를 홍보하기 위해 나와있었다. 김소연은 연기파 배우로 통하는데, 그녀가 대본을 미처 다 외우지 못해, 포스트잇을 이용해 소품도 부족해 상대배우의 이마까지 붙인 다는 이야기엔 그저 폭소가 나왔다.

 

그러다가 문득 한 대목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현장에서 쪽대본으로 원래 대본과 내용이 바뀌어서, 급한 나머지 출연 배우의 다리쪽에 포스트잇을 붙였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오지명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았다고 할때만 해도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방송계의 현실은 아직까지 사전제작은 거의 없고, 대다수는 그때그때 촬영하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동이>의 경우는 얼마전 파업 문제로 불과 방송을 10시간 정도 앞두고 촬영과 편집을 끝내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진기록을 남겼다.

 

어떤 기자도 논평했지만, 이런 진기록은 안 나오는 것이 좋은 일일 것이다. 김소연이 현장의 소품을 이용해 커닝을 했다는 <아이리스>의 경우 후반부에는 정말 생방송에 가깝게 촬영하고 편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대다수의 국내 드라마가 그렇다는 현실이다.

 

이럴 경우 문제는 일단 대본이 너무나 늦게 나와 배우가 충분히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대사를 외우기도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배우가 자신의 대사마저 외우기 급급한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 방송계는 ‘한류’를 운운하며, 우리 드라마가 우수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건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촉박한 제작시간 때문에 방송작가는 팩스로 1회 분량도 아닌 말 그대로 ‘몇쪽’에 불과한 쪽대본을 팩스로 보내고, 현장에선 그걸 받아서 배우는 대사를 외우고, 담당PD는 촬영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관행에서 오늘날 꽤 완성도 높은 드라마들이 매분기마다 나온 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문제는 이런 관행이 단순히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사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쪽대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위에서 지적했지만 충분한 제작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기드라마들을 보면, 흔히 시간에 쫓겨 배우와 스탭들이 현장에서 밤샘하고 무리해 사고가 나거나 쓰러져서 병원에 가는 이야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더 이상 무용이 되어선 안된다고 본다. 아직 어렵기는 하지만 ‘100% 사전제작’을 도입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 ‘사전제작’을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배우가 현장에서 컨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현재 방송계 이야기는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들에게 그저 박수를 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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