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1Q84'는 팬시 제품이다!

朱雀 2010. 1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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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이리 재미없는 소설책을 추천해줬냐?” 얼마 전 나는 친한 니자드 형에게 <1Q84>를 추천해줬다가 바로 당일 저녁 이런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왜 <1Q84>의 리뷰를 블로그에 쓰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009년 발표되어 국내에서만 불과 8개월 만에 100만부를 판매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본고장인 일본에선 무려 300만부 이상 팔아치운 소설. 책을 잃지 않는 10-20대까지 불러모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필력은 그저 ‘놀랍다’라고 할 수 밖에 없다.

 

<1Q84>를 처음 접한 나 역시 수려한 하루키의 문체, 킬러인 아오마메가 꽉 막힌 도시정체를 벗어나고자 비상계단을 통해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설정. 그리고 글솜씨는 가지고 있지만 영감이 부족한 덴고와 천재소녀 후카에리가 만나 벌어지는 일들에 급속히 빠져들고 말았다.

 

하늘을 봐야지만 알 수 있는 두 개의 달은 아오마메와 덴고가 페러럴 월드에 갔음을 의미하고, 후카에리의 소설에 등장하는 ‘공기번데기’와 ‘리틀 피플’들의 설정은 요새 유행하는 판타지의 냄새를 짙게 풍겼다.

 

무엇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하루키의 흡인력 있는 문체는 별다른 사건이 진행되지 않음에도 정신없이 소설을 읽어내려 가도록 했다. 그러나 1, 2권을 읽어놓고 정작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름 책을 좀 읽었다는 자부하던 나로선 당혹스런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잡으려고 할수록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는 안개처럼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미지의 무엇’이었다.

 

그런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재밌는 소설, 멋진 소설’로만 말하고 넘어갔다. 내 자존심은 모두가 읽는 베스트셀러를 제대로 이해 못했다는 사실을 차마 용납하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전에야 니자드형의 전화를 받고서야 수수께끼는 풀렸다. 마치 탐정 김전일이 외치는 것처럼.

 

1Q84.14월-6월
카테고리 소설 > 일본소설 > 일본소설일반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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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1Q84>에 아무런 내용이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1Q84>는 ‘선구’라는 비밀종교집단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옴진리교’를 떠올리게 한다. 짙은 도시인의 허무한 고독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는 데서 책을 읽는 현대인의 감성을 지극히 자극한다.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풍성한 문명을 누리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큰 고독을 느끼고 있다. 거기에 더해 초등학교 때 한번 서로 손을 잡을 뿐인데도 20여년이 넘도록 서로를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느끼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는 ‘이룰 수 없는 순백의 사랑’이란 점에서 역설적으로 다시금 우리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1Q84>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실체’를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물론 책이란 읽는 사람의 지적수준이나 감성 등에 의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1Q84>는 그저 잘 팔리기 위해 내놓은 ‘베스트셀러’, 즉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엔 치열한 시대에 대한 치열한 작가정신이나 문학작품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가 없다. 그저 현대인의 입맛에 적당히 맞춰주고, 클리셰를 적당히 배열해 독자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하루키는 자신의 다식함을 적당히 수준으로 펼쳐놓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극의 내용을 장중하게 해주고, 안톤 체호프의 <사할린 섬>은 왠지 읽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공기번데기’와 ‘리틀 피플’이란 설정은 오늘날 사회에 대한 뭔가 풍자적이고 독자적인 암시인 듯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이것은 일본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포장’이라 생각한다. 작품의 가치는 작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독자와 평론가들이 서로 해석을 내놓고 때론 서로 난상토론을 벌이면서, 더욱 풍성한 가치를 획득해나간다. 일부 문학가나 영화감독 중에는 이러한 과정을 일부러 획득하고자 다른 방법을 취한다.

 


오시이 마무로 감독의 1995년작, 일본에선 외면받았지만 미국의 할리우드를
비롯한 전세계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이후 두번째 극장판
과 TV판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일부러 등장인물에 대사를 현학적으로 구사하고, 작품의 설정과 내용 여기저기를 비비꼬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안노 감독의 <에반게리온>과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등을 들 수 있겠다.

 

<에반게리온>에는 ‘인류보완계획’이니 ‘사해문서’니 등 성서를 비롯한 신화에서 다양한 상징을 따왔고, <공각기동대>는 갖가지 철학서의 대사를 따와 관람객을 시험에 빠지게 만들었다.

 


안노감독의 1995년 발표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애니메이션. 총 26화로 이루
어진 TV애니메이션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고, 이후 극장판으로 재탄생시키는 등 기염을 토하게 된다. 2007년엔 10년만에 극장판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물론 이런 ‘포장’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 겉멋이란 남이 인정해줄 때에만 가치를 획득할 수 있고, 어렵고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현대인이 그것에 열광하게 만드는 상술이란 그 나름대로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석의 여지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 속엔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추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바로 ‘시대정신’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제 결론부로 넘어가겠다! 우리가 <1Q84>를 사는 목적은 일단 내 문학적 허영심을 채워준다. 무라카리 하루키는 굳이 노벨상 후보자라는 것을 들먹이지 않아도 현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어도 최소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다.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뭔가 지적매력을 풍기는 것으로 스스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뿐인가? 대중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이니 유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안도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어려운 것은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은 현대인들에게 싫증나지 않을 만큼 하루키의 문체는 쉽고 간결하다. 책은 두꺼워 보이지만 막상 읽어보면 누구나 하루에 1권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수월하다.

 

게다가 사이사이 등장하는 각종 인용구와 철학적인 대사 등은 뭔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안겨주기에 딱 좋다. 그렇다! <1Q84>는 당신에게 허영심을 적당히 만족시켜주고, 도무지 종을 잡을 수 없는 내용전개로 많은 것을 상상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다. -거기다 잡지나 신문등지에선 <1Q84>에 대해 칭찬을 늘어놓고 있다- 그뭔가 되게 많이 생각한 것 같지만, 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읽게 만드는 베스트 셀러다.

 

이런 <1Q84>를 나는 팬시 용품에 비교하고 싶다. 길가를 가다가 문구점에 들어가서 예쁜 팬시 용품을 고른다. 아무리 비싸도 팬시용품은 학생이 살 수 있는 수준이다. 그건 우리에게 적당한 품질과 기쁨을 선사한다. 그러나 우린 팬시용품을 가지고 ‘예술품’이라고 하진 않는다. <1Q84>는 딱 그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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