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살사댄스를 추는 커플, 로맨틱할까?

朱雀 2010. 12. 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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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사를 춥니다’라고 말하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중에 하나가 “연인끼리 추면 너무 멋질 것 같아요”라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일리 있어 보인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연인끼리 춤을 같이 추면서 로맨틱한 장면이 많이 연출되는 것은 그런 탓일 게다. 남녀가 서로 지그시 바라보고, 스킨십을 할 수 밖에 없는 파트너 댄스는 로맨틱 영화의 단골 소재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와 많이 동떨어져 있다.

 

동호회 운영진을 한 이들은 동감하겠지만, 커플끼리 살사를 배우러 오면 우린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망했다!’

 

첫 번째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배우는 속도 차이 때문이다. 이전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통상 남자는 여자보다 3배 어렵다. 남자는 리더로서 박자를 맞춰야 하고, 다음에 할 동작을 미리 생각해야 하고, 여자가 다치지 않도록 항상 배려해야 한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늘 한번에 하나밖에 안하던 남자로선 한꺼번에 세 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하는 멀티 작업이 되질 않는다. 반면 여자는 팔로우로서, 자신의 동작만 할 줄 알고, 남자의 신호만 잘 읽으면 수월하게 금방 춤을 어느 정도까지는 출 수 있게 된다.

 

자! 이제 상상해보자. 여기 한 커플이 와서 같이 살사댄스를 배운다고 치자. 여자는 다른 남자들과 손을 잡아보면서 재밌게 추다보니, 별로 늘지 않고 버벅대는 남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구박하게 된다(자긴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아니, 왜 이렇게 못해?”라고 핀잔까지 주면서 말이다.

 

남자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데, 여자 친구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짜증이 난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 화가 나서 결국 말다툼에 이르게 된다. 그럼 좋은 이유로 시작한 살사 댄스가 오히려 커플에게 불화를 조장하는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둘 사이만 나빠지면 괜찮은데, 아무래도 둘의 그런 분위기는 신입회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도 단체생활의 연장이니까.

 

두 번째 이유는 커플은 아무래도 다른 이성과의 스킨십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우리사회에선 남녀가 스킨십을 할 일이 별로 없다. 애인관계나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남녀가 손을 잡는 등의 행위를 거의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살사 댄스는 기본적으로 남녀가 한쌍으로 같이 추는 춤이다. 즉, 커플끼리만 추는 게 아니라,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다른 여러 명의 이성과 춤을 춰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아무리 이해심 많은 이라도 눈에 불통 튀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예를 들어볼까?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춤을 추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고 상상해보라. 아직 춤을 배우지 얼마 안 되어서 나랑 추면 뭐라고 짜증만 내던 그녀가-설마 뭐라고 하지 않아도 어딘가 만족스러워 하지 않는 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다른 남자 앞에선 웃으면서 지긋이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리 부처님 가운테 토막 같은 남자라도 뚜껑이 열릴 수 밖에 없다.

 

물론 이성적으론, 웃는 게 형식적인 거고, 눈을 바라보는 것도 ‘자세’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은 ‘소유욕과 독점욕’이 전제되어 있기에 질투가 불 같이 일어나게 될 수 밖에 없다.

 

사진제공: 맥팬

그래서 춤추고 난 애인에게 다가가 “그 녀석이랑 춤추니 그렇게 좋디? 실실 웃음이 나올 정도로 끝내주디?”라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툭탁툭탁 싸우게 되기 쉽다. 물론 여자의 입장에서 자기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랑 손을 맞잡고 웃으면서 춤을 춰도 마찬가지 상황이 연출되기 쉽다.

 

세 번째는 커플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이 (당연히) 춤신청을 꺼리게 된다. 당연하지만 살사판에 있는 사람들도 엄연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살사를 추다가 만난 커플이 생겨나도 춤신청을 조금 기피하는 경향이 생기는데, 이제 춤을 배우기 시작한 커플에겐 아무래도 쓸데없는 오해(위와 같은 상황전개)를 피하기 위해 춤신청을 적게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어떤 커플을 아예 춤신청을 받지도 하지도 않는다. 살사댄스를 비롯한 커플댄스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추기 위해 고안된 춤이다. 그 한 커플이서 따로 수업을 듣거나 춤을 춘다면 모르겠지만, 여러 명이 함께 배우는 수업이나 살사바에서 둘이서만 추는 것은 몹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일단 두 사람이 커플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는데, 무조건적인 홀딩거부는 신청한 이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고, 춤의 정신에도 어긋난다. 그런 탓에 살사 동호회에선 커플이 춤을 배우러 오면 별로 좋아하질 않는다.

 

그럼 커플이 살사를 배우러 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할까? 서로 관대한 마음으로 다른 이와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 남자가 여자보다 배우는 속도가 세 배이상 느리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근데 이게 말이 쉽지, 나도 사실 어렵다.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추는 것을 보면 살사를 4년 이상 춘 나도 때때로 울컥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일부러 여자친구가 다른 이와 춤출 때는 아예 쳐다보지 않으려 한다. 또한 여자친구와는 처음 한곡과 맨 마지막 곡만 추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왜냐하면 여자친구의 입장에서도 나 말고 다른 남자들과 춤추면서 즐기길 바라기 때문이다(물론 내 입장에서도 그렇고).

 

결론적으로 춤을 처음 배우는 커플이 살사댄스를 배우러오면(모든 커플댄스가 그렇지만) 싸우거나 다툴 일이 많아진다. 그러나 살사댄스를 이해하고, 서로를 관대한 마음으로 바라봐주면 서로 즐기면서 재밌게 출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매우 어렵지만 말이다.

 

하여 나는 주변에서 커플이 살사댄스를 같이 배우고 싶다고 하면, 말리는 편이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둘이 서로 다른 동호회나 살사바를 가는 것을 차라리 권한다. 어느 정도 추게 되면 가끔 둘이 같이 가는 것을 권유한다. 그편이 서로 속편하고 웃으면서 즐길 수 있다.

 

서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른 상태에서 만나고, 둘이 함께 살사바에 놀러가서 춤을 추는 것은 매우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다. 즐기면서 출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하는 거라면 차라리 그냥 둘이서 재밌게 할 수 있는 다른 취미를 권하고 싶다. 그게 두 사람의 정신건강과 시간 대비 노력과 돈 등을 모두 따졌을 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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