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고택음악회

朱雀 2010. 12.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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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1박 2일로 안동으로 여행을 갔었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고 밤이 되어 수곡고택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는데, 어허~이런! 말로만 듣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음악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테이블 위에 예쁘게 장식된 맛있는 음식들이 올려져 있고, 다같이 와인이나 샴페인을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한쪽에선 현악 4중주를 연주하곤 했는데, 내가 실제 상황의 주인공이 될 줄이야.

 

물론 이곳은 고택이라 서양음악보단 우리 전통음악이 어울릴 것 같단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대청마루에 앉는 것까진 좋았는데, 너무 추운 나머지 담요를 가져다가 바닥에 깔고 온몸에 둘둘 감고 말았다. 그런데 사회를 맡은 이승연 님은 그냥 한복만 입고 나왔다. 마음 같아선 두르고 있는 담요라도 건네드리고 싶었으나, 공연 때문에 그러실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귀를 기울였다.

 

인사말을 한 그는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로 퇴계 이황의 이야기였다. 율곡 이이와 더불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그분의 숨겨진 러브스토리였으니...

 

퇴계 이황께서 안동으로 부임해 오셨을 당시, 매향이란 관기가 있었다. 매향은 일찍이 퇴계 이황의 높은 학식과 고매한 인품에 반해 항상 연모하고 있었고, 퇴계께서 부임하시자 그런 마음을 은밀히 내비쳤다. 물론 이황께선 번번히 거절하셨다.

 

근데 아뿔싸!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 퇴계선생은 부인과 아들을 줄줄이 잃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매향에게 마음이 결국 기울고 말았다. 매향은 비록 관기였지만, 시-서-화에 능하고, 당시 19세의 나이로 매우 아름답기까지 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지극해졌으나, 이별은 안타깝게도 빨리 찾아왔다. 이황의 새로운 부임지가 결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눈물의 작별을 하고, 그후 단 한번도 만나질 못했다.

 

퇴계 선생께선 매향이 선물로 준 매화를 무척 아꼈는데, 자신의 모습이 초췌해지자 보여줄 수 없다하여, 그 매화를 다른 방으로 옮겼다고 한다. 결국 선생이 운명하시고, 퇴계 선생이 떠준 정화수를 먹지도 버리지도 않고 늘 새벽마다 지성을 드리던 매향은 물이 핏빛으로 변하자, 그 길로 사흘길을 걸어 퇴계선생이 살았던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천한 신분에 감히 집에 들어가질 못하고 크게 세 번 곡을 하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다 한다. 퇴계 이황과 매향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4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승연님은 대금을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아! 애간장이 절절 녹아드는 사랑이야기를 들은 후의 탓일까? 매향의 님을 향한 일편단심과 그를 가로막는 신분의 벽 때문에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이 눈에 잡힐 듯 선했다.

 

대금연주가 끝나자, 우리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옥중에 갇힌 춘향이 한양에 간 이몽룡을 그리워 하는 내용은 '쑥대머리'였다.  앞서 들은 매향과 퇴계 이황의 이야기 못지않게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었다.

 

너무나 멋진 소리에 절로 박수가 터져 나오고, 당연히 ‘앵콜’을 외쳤다! 허나 너무 추운 날씨 탓이었을까? 야속하게도 공연자는 그대로 퇴장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 당시 내 심정은 정말 퇴계 이황을 내일이면 떠나보내는 매향과 비스무레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아쉬움을 품고 있는 사이, 이번엔 중국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연주자가 나왔다. 고쟁이란 중국 악기를 들고 나온 그녀는 무협 영화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연주했다. 순간 이곳이 조선시대의 고택이란 사실도 잊고, 내가 한국인이란 것도 잊은 채, 마치 <소오강호>에 나오는 영호충이 된 기분이었다.

 

 

푸른 파도에 한바탕 웃는다. 도도한 파도는 해안에 물결을 만들고,

물결 따라 떴다 잠기며 아침을 맞네. 푸른 하늘을 보고 웃으며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잊는다...

 

 

 

고쟁 연주와 전혀 관계는 없었지만, 문득 소오강호의 노래가사가 떠올랐다. 이런 엉뚱한 상상이라니...잠시 현란한 고쟁의 소리를 들으며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연주는 끝마쳤고 이번에도 아쉽게도 그 한곡으로 끝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들은 연미복을 곱게 차려입은 남성중창단 ‘쏘울’이었다. ‘아니 고택음악회에 왠 중창단?’이란 생각을 가진 것도 잠시, 그들의 재기넘치는 공연에 깔깔 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가곡을 멋지게 뽑아 부른 쏘울의 리더는 공연 후 한마디를 했다.

 

“사진 찍어주셔서 감사하긴 한데, 너무 박수가 없네요. 박수도 치시면서 공연을 즐겨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아! 공연에 대해 예의가 없는 내 자신 같으니라고. 블로거의 못된 기질이 발동되어 나는 감상보단 오두막을 들고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재빨리 몇컷만 찍고는 감상모드로 돌입했다.

 


 
남성중창단도 대단했지만, 추운 날씨에 손가락이 얼었을 것 같은데도 멋진 건반 연주를 들려준 연주자도 인상적이었다.


쏘울은 우리 귀에 익숙한 국내외 가곡뿐만 아니라, 가요까지 불렀다. 그리고 거기에 곁들어진 깜찍한 율동과 웃음이 절로 나오는 코믹한 행동 등은 연달아서 박수를 치고, 추임새를 넣으며 호응을 유도했다.

 

조금 추운 것이 아쉬웠지만, 안동 수곡고택에서의 음악회는 너무나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서울에선 구경조차 할 수 없었던 별들이 배경으로 깔리고, 몇 백년을 지난 고택의 은은한 정취가 그 뒤를 받치며, 대금과 소리와 고쟁 연주와 남성 중창단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공연 레퍼토리는 옛 문화와 새 문화의 아름다운 만남이자 조화을 보여주었다.

 

수곡고택의 음악회는 그렇게 꿈결처럼 우리를 아름다운 세상으로 인도해주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이따금씩 그때 광경을 되새기며 미소 짓게 될 만큼 멋진 추억으로 아로새겨졌다.



다음 포토베스트로 선정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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