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난 유쾌한 당신의 공주를 꿈꾼다!

朱雀 2010. 12. 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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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좋아하게 된 모던 록 그룹 ‘아일랜드시티’의 단독공연이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 있어서 찾아가게 되었다. 때는 지난 11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돌이켜 보면 가수 공연을 직접 가본 것이 정말 손에 꼽힌다. 일단 나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고함을 치며 소리치는 것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탓에 어느 특정 가수나 그룹을 좋아해도 공연엔 별로 찾아가지 않는 일명 ‘차가운 팬’ 되시겠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아일랜드시티의 정규 1집은 체리필터 이후 너무나 나의 영혼을 건드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일랜드 시티는 다행히(?)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비교적 적은 관객수가 모인 가운데 쾌적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잔머리 계산이 저절로 튀어나온 탓이었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진 않았다. 원래 스탠딩 공연으로 알고 갔는데, 의자가 깔려 있었다. 밖에서 시간에 맞춰 들어간다는 것이 오히려,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굴러보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상황은 그렇게 되버린 것을.

 

안타까운 마음을 접고, 기다리고 있자니 게스트로 초청된 ‘루버더키’라는 걸밴드가 나와 연주를 시작했다. 잘 모르는 그룹인 탓에 심드렁하게 앉아있었다. 허나 그런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여성 록 밴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묵직하고 빠른 연주와 거기에 맞춘 강렬한 사운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 보컬 특유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없었다면, 아마 보이밴드라고 해도 믿길 지경이었다.

 

게스트였지만, 자신들의 음악적 색깔과 개성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그녀들의 공연을 보면서, 새삼 인지도와 관계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돋보였다. 그녀들이 공연하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 보였다.

 

루버더키의 인상적인 공연이 끝나자, 내가 좋아하는 아일랜드 시티 멤버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언제봐도 귀여운 베이스 기타의 서아름, 항상 웃는 얼굴의 드럼 엄상민, 지난번 인터뷰때 쓴 표범무늬 모자를 또 쓰고 나온 보컬 이지희, 어딘가 과묵한 듯한 느낌이면서도 할말을 다하는 가수 유희열을 닮은 리더 정연수까지.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면서도 괜시리 손을 흔들면서 친한 척을 해보였다. 물론 무대위에 선 그들에겐 나 역시 손을 흔드는 많은 팬중에 하나였을 뿐이지만. 그런 망상을 혼자 즐기는 중, ‘난 당신의 유쾌한 공주를 꿈꾼다’라는 첫 번째 싱글앨범의 타이틀곡이 불리워졌다.

 
 
난 유쾌한 당신의 공주를 꿈꾼다 - 아일랜드 시티


뭐랄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처음 노래를 발표할 때의 곡들은 뭔가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 ‘...순간이 아닌 영원함을 너와 함께 느끼고, 우후~언제까지나 이 사랑 끝까지 지킬래’로 이어지는 노래는 아일랜드 시티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체리필터 이후 명맥이 끊긴, 대중성 있는 가사와 듣는 순간 꽂히는 멜로디는 벌써 발표된 지 4년이 넘었음에도 전혀 전혀 식상함이 느껴지질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감동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나만의 마돈나 - 아일랜드 시티

'나만의 마돈나'는 또 어떤가? 보컬 이지희가 평소 존경하던 가수 마돈나를 생각하며 작곡한 곡은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발을 구르며 춤을 추게 만들 것처럼 원초적인 느낌이 강렬하다. 앉아서 듣는 것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마구 뛰었다. 마침 내가 맨 뒷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일랜드 시티의 노래는 그렇게 계속 불리웠고, 공연장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잠시 즐거운 시간이 흐른 뒤, 무대는 2부를 준비해야할 아일랜드 시티를 위해 ‘디어 클라우드’가 나와 멋진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룹명이 알려주는 것처럼, 디어 클라우드는 슬프고도 몽환적인 느낌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중성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보컬 나인의 목소리는 TV에서 흔히 듣던 가수들과는 확연하게 차이나는 개성이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자신 때문에 ‘공연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 같다’라는 농담을 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편안하고 정감있게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아일랜드 시티가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에 이지희는 줄들(?)이 주렁주렁 달린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1부 무대에선 모자를 써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날릴 작정인지, 이번엔 모자를 쓰지 않았다.

 

새빨간 거짓말 - 아일랜드 시티


덕분에 관객 입장에선 그녀의 표정을 통해 더욱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빨간 거짓말’ ‘다시 돌아갈 수 없어’의 정규1집 수록곡 외에도 팝송과 최신인기가요를 아일랜드 시티만의 개성을 꾹꾹 담아 노래를 불렀다.

 

다시 돌아갈 수 없어 - 아일랜드 시티


그리고 결국 견딜 수 없는 열기를 품어내는 그들의 무대에 관객들은 의자에서 모두 일어서서 발을 구르며 자유를 만끽했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록(Rock)'의 정신은 자유와 저항으로 알고 있다. 시대의 권위와 모순에 저항하고, 항상 답답한 상황에 처해있는 젊은이들에게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록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일랜드 시티의 음악은 충분히 제 값어치를 한다. 표값 2만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흥겹다. 오버를 지향하는 그룹답게 음악도 듣기 쉽고 따라부르기도 편했다. 그렇다고 마냥 대중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기 보단, 자신들의 색깔을 고집하는 음악인들의 고뇌가 엿보이는 음악. 그게 아일랜드 시티의 음악이 아닐까 싶었다.

 

2시간에 가까운 공연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공연을 끝마치며 더없이 행복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마음에 가슴에서 일어났다. 한 가지는 이대로 아일랜드 시티가 유명해지지 않아서, 내가 공연이 있을 때마다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많이 알려지면 왠지 가치가 하락하고, 너무 많은 팬들 사이에서 나란 존재는 초라해질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아일랜드 시티가 많이 유명해지길 바란다.

 

아이돌이 지상파를 점령해서 천편일률적인 노래들만 듣고 즐길 수 밖에 없는 세상에서 듣는 순간 누구나 편하게, 그러나 발을 구르며 머리를 흔들면서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음악은 새로운 즐거움을 줄거라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나온 홍대거리에는 수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각자 개성이 넘치는 복장과 다양한 표정을 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홍대가 예전보다 전세값이 올라 예술을 하는 이들이 많이 떠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괜히 나도 예술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무술영화를 보고 나선, 괜시리 말도 안되는 폼을 잡으면서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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