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실종된 우리말을 찾습니다!

朱雀 2010. 12. 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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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의 일이다. 동호회에서 신입회원이 가입해서 우린 뒷풀이를 신나게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4천8백만의 게임인 ‘영단어를 말하면 원샷하기’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벌주는 폭탄주였기에, 나같이 술을 못 마시는 이들은 최대한 피해야할 상황이었다.

 

다들 몇 번 걸리고 나서,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옆에 있는 신입회원에게, “닉네임은 뭘로 정하실 예정이세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친한 누나가

“주작 너 딱 걸렸어. 원샷해!”

“오호. 너 원샷이라고 했어. 너도 한잔해!”

“오빠! 원샷이라고 하면 어떡해요.”

 

이런 식으로 연달아 6명이 영단어를 말하고 말았다. 너무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걸린 탓에 우린 서로 계면쩍어 하다가, 슬그머니 이야기화제를 바꾸고 말았다. 물론 게임과 벌칙은 유야무야되었다.

 

당시 내가 느낀 심정은 ‘정말 우리말 오염이 많이 심각하구나’였다. 찾아보니 믿을만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영단어 명사 사용률은 무려 약 50%정도 된단다.

 

50%라니! 그렇다면 얼마 전 고인이 된 앙드레 김 디자이너의 ‘엘레강스하고 판타스틱해요~’라는 언어습관과 우리 실생활에서 쓰이는 말투나 별반 차이가 없단 말이지 않는가?

 

물론 이 통계치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없겠지만, 우리의 언어생활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당장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아이폰, 스마트폰, 립서비스 등등 우리가 쓰는 모든 일상용어가 모두 영어다! 그뿐인가? 유행가를 들어보자. ‘넌 역시 트러블, 트러블’ 소녀시대의 인기노래인 ‘훗’ 가사의 절반은 거의 영단어다-인기있는 모든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사를 찾아보라. 50%를 넘는 경우도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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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브아걸의 ‘사인’이란 노래를 기억하는가?

 

숨이 가빠 May day dot dot dot dot dot

맘이 아파 May day dot dot dot dot dot

시간은 또 Tic Toc

흘러만가 Tic Toc

 

‘사인’의 가사 중 일부다. 여기서 ‘틱톡’은 우리말로 ‘째깍’ ‘똑딱’이란 말이다. 세상에! 내가 왜 질겁하느냐고? 이건 의성어다! 의성어는 말 그대로 사물의 소리를 흉내내는 말이다. 이전에도 영단어의 사용이 심했지만, 최소한 의성어나 의태어는 쓰이지 않았다. 이건 가장 기본적인 생활언어이자, 그 민족의 언어습관이기 때문에 영단어를 쓰는 데 심리적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이렇게 인기 걸그룹의 가사에 쉽게 나오고, 아무도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을 지경이 이르렀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느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에서 토익점수는 당락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다. 좀 지난 자료긴 하지만 2005년도 토익응시생은 전체 약 450만 명인데, 이중 우리나라 사람은 183만 명이었단다. 즉 세명 중 한명꼴로 한국인이었다.

 

대학 입시와 졸업, 취업과 승진 등등 모두 중요한 고비에는 영어 시험이 떠억 자리를 버티고 있다. 그런 탓에 우린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공부시키고, 심지어 영어 발음을 좋게 하기 위해 혀를 길게 빼는 ‘설소대’수술까지 시키는 부모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영어 잘하는 나라가 잘 산다’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물론 선진국중에선 네덜란드나 핀란드같이 영어를 잘하는 이들이 많은 나라들도도 있다. 허나 반대로 필리핀-미얀마처럼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잘하지만 못사는 나라도 분명히 존재한다.

 

즉, 영어 하나로 그 나라가 ‘국력’이나 ‘국격’을 논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영어광풍에 휩싸이게 된 것일까? 먼저 그 이유는 많은 이들이 말하듯이 ‘사대주의’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부터 중국을 짝사랑하며 ‘소중화’를 꿈꿨다. 이들은 한자어로 말하고, 한시로 서로의 학식을 뽐냈다. 덕분에 같은 나라 사람이건만, 하인들은 우리말만 써서, 양반들이 쓰는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오늘날엔 한자에서 영어로 바뀌었다는 것외에 뭐가 다르겠는가? 우리에게 미국은 1950년대 6.25 이후 무조건 배워야 하고, 따라야 하는 선망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를 사회지도층이 조장한다는 데 있다. 물론 오늘날엔 미디어와 인터넷 등이 가세하고 있지만, 우리의 뿌리 깊은 미국사대주의는 6.25 전쟁 뒤 미국에 유학을 보내고, 무조건적으로 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했다.

 

그뿐인가? 영어는 계층을 나누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오늘날 압구정동에 가면 대여섯살 먹은 초등학생조차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아이들이 영어구사를 위해 한달에 쓰는 과외비는 무려 1년에 1천만원-2천만원 선이란다. 영어 한과목만 이정도니, 다른 과목까지 합친다면 그 비용은 무려 7천만원-8천만원 이른다니.

 

 

링크기사: 헉! 영어유치원비가 1년 2000만원?

 

 

당연하지만 일반 가정에선 이런 비용은 꿈도 꿀 수 없다. 월 10만원짜리 일대일 과외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고액과는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즉, 사교육을 통해 계층을 구분하고, 밑의 계층이 위로 올라서려는 ‘교육’의 사다리를 치워버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오늘날 강조되는 것은 단순히 본토 발음에 가깝기 위한 학구적 열의가 아니라, 영어인구가 많아지자 외국으로 자녀를 보낼 수 있는 여유 있는 계층의 차별화전략이라고 생각이 들 지경이다. 여기엔 아마 ‘나는 너희와 다르다’라는 우월감과 자존심이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소모하는 돈과 노력은 매우 아까운 부분이 많다. 대다수의 시민은 외국에 나가서 영어를 쓸 기회가 별로 없다. 회사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 영어를 제대로 구사해야될 필요가 있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영어’에 몰입하는 현 상황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446년 세종대왕께선 ‘훈민정음’을 반포하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모든 언어학자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해마지 않았다. 일례로 옥스퍼드의 언어학 대학에선 합리성-과학성-독창성을 기준으로 심사했는데 한글이 1위로 뽑았고, 일본 레이타쿠대학의 우메다 히로유키 교수도 “세계에서 제일 발달한 음소문자”라고 했다.

 

한글에 대한 우수성을 널리 선전하는 과정에서 ‘한글이 표현하지 못하는 발음이 없다’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었다-이는 사실은 아니다. 허나 한글은 현재 세계에 있는 문자 가운데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인 것은 사실이다-

 

자-모음 24개로 이루어진 한글은 누구나 며칠이면 배우면 쓸 수 있으며, 국내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이웃나라인 중국에선 한때 정보화 사회를 맞은 데다,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공용어로 한글표기를 고민하다가 ‘자존심’문제로 철회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심지어 소수민족인 짜이짜이족은 그들의 사라져가는 언어와 풍습을 기록하기 위해 한글을 수입해서 현재 쓰고 있는 지경이다.

 

물론 필자는 한글의 우수성을 내세워, 영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말과 글이 열등하다는 주장을 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이렇듯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천대시하는 우리의 언어문화를 고치자고 주장하고자 인용했을 뿐이다.

 

단순히 한국인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만약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만 쓰고, 미국사회에서 살았다면 그는 ‘미국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말과 글은 그 사람의 인격수양과 의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영어에 대한 지나친 사대주의와 무분별한 사용은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들고 있진 않을까? 다른 나라의 말과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의 문화를 주체적으로 승화-발전시키고 나라의 내일을 생각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찾아내서 쓰고, 최대한 알맞게 외래어를 표기하고,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갔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사대주의와 계층주의를 위해 영어를 사용하는 현 상황에서 희망은 별로 보이질 않는다. 이제 중국이 G2로 우뚝 섰으며, 약 2025년후엔 미국을 대신할 초강대국이 된다고 하니, 20년후 쯤엔 압구정동에서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초등학생을 만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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