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논하다!

탈아입구 혹은 어설픈 제국주의

朱雀 2011. 6. 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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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1990년대 중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랑나비이승희가 때아닌 신드롬을 일으킨 때가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으나, <플레이보이>지에서 모델을 한 이승희는 갑작스럽게 국위선양을 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금방 국내에서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플레이보이>지가 국내에서 정식 발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월드모델이란 식의 애매모호한 호칭으로 소개될 수 밖에 없었고, 각종 연예오락프로에 나오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방송카메라는 그녀의 몸매를 훑어서 보여주기 바빴고, 각종 언론은 그녀에 대해 섹시하다라는 식의 찬사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이승희가 미국에서 무엇을 했고, 어떻게 국위선양을 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물론 공공연하게 이야기는 되지 않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녀가 무슨 활동으로 유명해졌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지 못한 내 입장에서도 그런 상황은 거대한 농담처럼 비춰졌다. 거기엔 어떻게든 미국에서 유명해진 그녀를 일종의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만, 그녀의 직업 등은 가리고 싶어하는 우리네 특유의 정서가 발동된, 그야말로 거대한 모순덩어리그 자체인 상황이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한국계 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에 대한 열광이나, 할리우드 배우인 웨슬리 스나입스와 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해 부인이 한국사람이라는 이유로 웨서방’ ‘캐서방으로 부르며 친근함을 표시하는 우리네 정서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그것이 그저 핏줄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거나, 미국이란 나라에 가진 특유의 열등감 정도로 해석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좀 더 나이를 먹고 이런 저런 책을 탐닉하면서 사실은 뿌리 깊은 곳에 이유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제국주의! 우석훈이 쓴 <촌놈들의 제국주의>에 잘 설명되어 있지만, 그것은 약 100년 전 우리가 서구열강의 침탈을 당하고, 일본의 식민지를 겪으면서 얻게 된 뿌리 깊은 열등감과 피해의식 그리고 선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는 식민지 생활을 경험했고, 서구열강들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빛나는 당시 문명과 세계 여러 나라를 거침없이 식민지화 하면서 자신의 힘과 위세를 뽐내는 모습에 대해 속으로 너무나 해보고 싶어하는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욕구는 21세기에 들어온 지금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까지 승승장구하던 우리는 TV에서 공공연하게 우리에게 패배한 나라들의 영토에 깃발을 꽂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치 블루마블’-전 세계를 땅따먹기-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했다. 실제로 옛날처럼 전쟁을 통해 세계정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축구는 훌륭한 대체제 역할을 해주었던 셈이다.

 

올해 초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코피노에 대해 소개된 적이 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1만 명이 가까이 불어난 코피노들은 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코피노들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머니와 힘겨운 삶을 공유하고 있다.

 

당시 TV를 보면서 그냥 척 봐도 한국아이로 느껴지는 아이들이 버려진 채, 살아가는 모습은 필리핀 여성을 단지 우리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성노리개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네 남성들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사실 필리핀 등으로 섹스관광을 나서는 우리네 남성들은 집에선 지극히 가정적이고 모범적인 이들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아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정도로 멋진 아빠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나 그들이 해외로 나가면 골프와 섹스만을 탐닉하는 게 또한 일반적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한때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말하며, 자신들이 아시아가 아닌 서구유럽의 일원이 되길 바랬다. 서구유럽 역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 중에 한명인 일본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길 꺼려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에게 끔찍한 식민지 생활을 하고, 전쟁을 치룬 한국과 중국은 각각 일본을 증오하면서도 짧은 시간 안에 서구유럽을 따라간 그 저력과 식민지를 아시아 곳곳에 두었던 역사를 부러워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일본처럼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땠을까? 장담컨대 최소한 비슷한 수준의 침략과 수탈은 이뤄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731부대나 위안부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라 믿지만, 그 외의 경우는 더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반발할 걸로 예상된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매체들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분명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권후보가 되기도 전에 운운하던 대운하를 그저 재밌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다가, 지금은 악몽이 되버린 ‘4대강 사업을 보거나, 이번에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된 성김이 가수 임재범과 외사촌을 것을 들어 핏줄을 들먹거리는 우리네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 대해 묘한 열등감과 숭배감을 지닌 우리네 모습이 드러난 것이라 여겨진다. -운하 사업 역시 서구유럽의 부자들이 요트를 타고 여가활동을 벌이는 것을 보며 부러워하는 심리에 기반을 두고 있으니 말이다-

 

우석훈 교수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한민국의 식민지가 되어줄 얼빠진 나라는 지구상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린 그런 얼빠진 나라를 만나서 식민지를 세우고, 경영해야 이런 사고방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까? 이 모든 상황이 그저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진다. 꿈이라면 깨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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