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계백’은 왜 ‘선덕여왕’처럼 화제작이 되지 못하는가?

朱雀 2011. 9. 12. 05:55
728x90
반응형



 

필자가 재밌게 보는 인터넷 만화중에 <삼국전투기>라는 작품이 있다. 최훈이 그린 <삼국전투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나관중의 <삼국지>를 토대로 그린 만화다.

 

근데 이 작품 아주 재밌다! 그것도 무지 많이. 게다가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실 대한민국 남자치고 <삼국지>를 최소 한번 이상 읽어보지 않은 이들은 드물 것이다. 게다가 <삼국지> 관련 작품은 영화-애니메이션-소설 등등 너무나 셀 수 없이 많아서 대다수는 식상하기 이를 데 없다.




이거 정말 물건이다! 아직 보지 못한 이들에겐 강추다! ^^

삼국전투기.5
카테고리 만화 > 역사만화
지은이 최훈 (길찾기, 2011년)
상세보기


 

그렇다면 어떻게 <삼국전투기>는 그들과 차별성을 이룰 수 있었을까? 우선 <삼국전투기>의 가장 큰 장점은 성공적인 캐릭터 형성에 있다. 강남의 호랑이인 손견의 경우, 아예 호랑이로 그려버리는 대담성을 보여준다. 유비는 오덕후로 묘사하고, 조조는 <기동전사 건담>에 나오는 샤아처럼 묘사해내는 그의 패러디는 독자들의 웃음과 함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전투묘사를 비롯한 역사적인 고증 역시 <삼국지> 관련 자료는 모조리 섭렵하는 치밀함과 더불어 각종 패러디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의 해석은 수 많은 <삼국지> 관련 작품을 봐왔음에도 엄청난 매력을 느끼게 한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보는 것은 물론이요, 5권까지 나온 지금에도 계속해서 사서 모으게 되는 애장서가 되어버렸다.

 

필자가 <계백>을 이야기 하기 전에 <삼국전투기>를 한 것은 눈치 빠른 이들은 금방 알아챘겠지만, 이런 장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 필자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해피타임>을 통해 <선덕여왕>을 다이제스트로 보게 되었다. 그전에 재밌게 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면서, <계백>이 왜 <선덕여왕>만큼 화제작이 되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 미실역의 고현정 만큼 절대적인 등장인물이 없다!

 

<선덕여왕>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이를 꼽으라면 단연 미실역의 고현정일 것이다. 생애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그녀는, 신라 왕실을 사실상 지배하는 미실이란 매력적인 악역을 멋들어지게 소화해냈다. 미실은 신라시대 때 공식적으로 여러 명의 남편을 둔 여성이다. 게다가 미실은 이전까지 다른 여성 권력자들과 달리, 전면에 나서서 사실상 신라국정을 움직였다.

 

이는 이전까지 사극에서 대다수의 여성 권력자들이 왕을 내세워서, 자신은 뒤에서 조종하는 막후 실력자로 나온 것과는 확실하게 차별화 되었다. 게다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상대방을 잔인하게 처단하면서도, 사랑하거나 아끼는 이들은 여성처럼 보듬어주는 그녀의 양면성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미실이란 인물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사택황후역의 오연수는 과한 화장과 설정 때문에 '짝퉁 미실'이란 비난에 초반에 시달렸다.
물론 '과연 오연수!'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연기력을 선보여 논란에서 벗어났지만, 미실에
비견하기에는 여러모로 매력이 떨어지는 역할이다. <선덕여왕> 1승!


물론 <계백>에는 미실과 비슷한 사택황후가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사극에서 흔히 본 것처럼 황후에 지나지 않는다. 무왕은 실권이 없긴 하지만, 왕으로서 똑똑하기 때문에 그녀의 매력은 미실보다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실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심중을 모두 꿰뚫어보는 무서운 능력을 보여주는 데 반해,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택가문의 양녀로 들어온 은고의 정체를 전혀 의심치 않는 모습등은 능력과 카리스마에서 도저히 비교의 대상이 되질 못하고 있다.

 

 



'일식'을 소재로 해서, 신라 시대의 당시 천문학과 정치의 역학관계 등을 조명한
이야기도 훌륭했지만, 자신의 편인 비담마저 속여서 미실을 이기는 덕만공주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계백>은 안타
깝게도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선덕여왕> 2승!

 

2. <선덕여왕>처럼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재미가 없다!

 

<해피타임>에선 미실궁주의 세력을 꺾기 위해 덕만공주가 쓴 최고의 계책이 등장한다. 바로 자신의 편들에게까지 일식은 없다라고 말하고, 사실은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김유신은 잘 넘어갔지만, 일종의 예언자 역할을 한 비담은 감옥에 갇혔다가 탈출하려 한 덕분에 미실은 일식은 없다라고 속게 되고, 자신의 이름으로 일식은 없다고 공표해버린다. 그러나 사실 덕만공주는 일식을 계산했고, 주변 사람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미실의 통찰력을 속이기 위해, 자신의 측근까지 속이는 책략을 구사한다.

 

이 계책 덕분에 한낱 야인의 신분이었던 덕만은 공주로 신분을 회복할 수 있었다. <선덕여왕>은 때론 반전을 위한 반전이 나와서 식상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62부작 동안 예상을 뒤엎는 이야기전개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반면 <계백>은 어떤가?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계백>역시 이야기 전개는 꽤 괜찮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선덕여왕>의 제작진이 만들었다고 보기엔 이야기 전재가 그전처럼 충격적이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일례로, 무진장군의 아들인 계백이 역모로 몰려서 백제 변경으로 귀양을 갔다가 신라군에서 잡혀 생구(포로)가 되어, 검투사(?)처럼 지내면서 어렵게 어렵게 백제에 돌아오는 이야기는 <선덕여왕>의 덕만공주와 너무나 출생적 스토리가 겹치는 데다, <글래디에이터>의 느낌까지 너무나서 식상하다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미실의 고현정을 정점으로 <선덕여왕>에는 비밀병기니 최종병기니 하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해 이야기 전개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현재 <계백>엔
이런 원동력이 되어줄 인물이 거의 전무한 상태다. <선덕여왕>의 완승이다!


3. 매력적인 등장인물이 없다!

 

<선덕여왕>의 중심축은 분명 미실이었지만, 그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이 많았다. 최고의 무술시력을 자랑한 문노, 덕만을 죽이기 위해 평생을 바친 칠숙, 덕만을 자신의 아이로 키운 소화, 남성미를 물씬 풍긴 알천랑, 선과 악의 경계선의 인물이었던 비담, 싸이코패스적인 느낌이 스물스물 난 염종 등등.

 

이들은 무려 62부작의 <선덕여왕>이 재미와 흥미의 동력을 잃을 때쯤이면, 항상 멋진 활약을 보여줘서 극의 흥미와 몰입도를 높였다. 아울러 그런 등장인물들에 시청자들은 열광했고, 이 작품을 통해 조명을 받은 인물만 해도, 비담역의 김남길, 김춘추역의 유승호, 알천랑역의 이승효, 문노역의 정호빈, 월야역의 주상욱 등등. 한두명이 아니다. -심지어 유이조차 어린 미실역으로 나와 커다란 화제를 이끌었으니 그 위력을 새삼 알 수 있을 정도다-

 

근데 <계백>은 어떤가? <계백>하면 떠오르는 매력적인 인물이 있는가? 물론 <계백>을 보면 나름대로 매력적인 인물들은 많다. 극 초반을 장식했던 무진역의 차인표는 <선덕여왕>의 문노 못 잖은 존재감을 나름 주었다. 그러나 그 외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선덕여왕>에 이어 재차 등장한 안길강은 위제단의 수령으로서 나름 카리스마는 있지만, 그때처럼 뭔가 한칼있으마!는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은고역의 송지효나 의자왕자역의 조재현 역시 나름 연기 잘하는 인물들 이지만 아직까지 그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그렇게까지 어필하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필자는 감히 그 이유가 <계백>의 대본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싶다.

 


주인공 계백역의 이서진은 이 표정외엔 다른 표정이 없다. 정말 이렇게 매력없는 주인공은
정말 백만년만인 것 같다. -_-;;;



<계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디서 본 듯한기시감을 자꾸만 시청자들에게 느끼게 한다는 것은 초반 보여줬던 황산벌 전투는 <글래디에이터>의 게르마니아 전투신과 너무 흡사한 느낌을 준다.

 

이후 선화공주와 어린 의자왕자를 충심으로 모신 무진 장군이 사택황후의 계략에 의해 역모자가 되어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고, 어린 계백이 신라의 전쟁포로가 되어 검투사 비스무리하게 되는 내용등은 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전개였다.

 

그리고 적의 심장의 비수를 꼽기 위해 호색한의 역할을 하는 의자왕자나 대상인 은고 역시 그동안 사극에서 너무 많이 봐온 터라 딱히 매력적인 느낌이 오질 않는다. 심지어 드라마 제목인 계백인 이서진 역시 아직까진 <선덕여왕>의 덕만역의 이요원 만큼의 존재감도 보여주질 못하고 있다. 뭐 그 밖의 등장인물들은 따로 언급할 가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계백>에서 거의 유일하게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무진장군. 차인표의 멋진 열연이 돋보여서
그가 사라지는 게 너무나 안타까울 지경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의 퇴장이후, 그의 공백
을 메꿔준 매력적인 인물이 전무하다는 사실.




<선덕여왕>도 그랬지만 <계백>은 실제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인물을 내세운 판타지로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물론 <선덕여왕>의 경우 공주가 신분을 속이고 야인생활을 하다가 공주의 신분을 회복한다는 스토리는 식상했지만, 참신한 설정이 많이 첨가된 탓에 매우 희석될 수 있었다.

 

반면 <계백><선덕여왕>을 본 기대치를 가지고 본 상태에선 ‘<선덕여왕>과 뭐가 다른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탕-삼탕인 설정들이 보여졌다. 국내 사극을 보면서 답답한 것은 작가들의 공부가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 뿐이다.

 

비록 <삼국사기><삼국유사>밖에 남아있는 자료가 없지만, 중국과 일본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삼국시대 자료는 꽤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많은 역사학자들의 논문을 비롯한 자료들이 나와있기 때문에, 조금만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가설과 이론들을 가지고 얼마든지 신선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는 소재들이 널려 있다.

 

그런데 <계백><선덕여왕>처럼 주인공을 굳이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이 야인생활을 하고, 멀쩡한 의자왕자를 반쪽짜리 백제인으로 만들며, 있지도 않았던 위제단이란 순혈주의 비밀결사대를 만들고 말았다. 물론 어느 정도 시대적 현실을 사극에 그리고 싶다거나, 왕권과 신권의 대립을 그리고 싶었다는 욕심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면, 뭔가 다른 방식으로 해야만 했다. -최소한 흥미를 끌고 재미를 느끼게 말이다- 게다가 <선덕여왕>때도 그랬지만, 가잠성 전투처럼 일회성 이벤트로 바로 옆나라인 신라와 고구려를 보여주는 모습은 기가 찰 지경이다. 지금의 이야기전개를 보고 있자면, 마치 한반도에는 백제만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직 한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의자왕자역의 조재현, 그리고 매력을 못
뿜어내고 있는 송지효. 둘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들이라 안타깝기 그지 없다. 대본의
문제일까? 아직 작품에 두 연기자가 완벽하게 몰입하지 못한 탓일까?



차라리 지금처럼 신권과 왕권의 다툼이 아니라 고구려-신라-백제--당의 오국의 상황을 그려내려 했다면 훨씬 밀도 있고 재밌는 이야기를 그려내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당시 상황은 삼한의 상황도 급박하게 진행되었지만, 당나라와 왜 역시 정치적-경제적인 이유로 우리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상황을 겪고 있었으니 말이다.

 

일례로 백제를 실제적으로 멸망시킨 것은 당이며, 고구려 역시 멸망시킨 나라가 당이다. 또한 잘 알려진대로 백제는 왜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졌고, 백제가 멸망하자 왜에선 백제부흥군을 위해 수백척의 배와 3만이 넘는 군사를 파견할 정도였다.

 

663년 백제의 수복을 위해 백제부흥군-왜군 연합군과 나당연합군의 백강에서 전투가 이루어졌다. 이는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한--일의 전쟁이었다! 이렇듯 살짝 역사를 들춰봐도 당시 역사적 상황은 숨가쁘고 정신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조금만,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삼국의 이야기를 조금만 묘사해도 더욱 드라마가 재밌어 질 텐데 왜 전혀 이용하지 않는(혹은 못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선덕여왕>이 만들어 놓은 틀 안데 <계백>은 갇혀서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끊임없이 굴리는 것인지, 아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한 반복을 하고 있는지 <계백>의 제작진에게 그저 묻고 싶을 따름이다.


전쟁과역사
카테고리 정치/사회 > 국방/군사
지은이 임용한 (혜안, 2001년)
상세보기


참고: <전쟁과 역사> 임용한 지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