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대한민국엔 레퍼런스 극장이 없다.

朱雀 2009. 8.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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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할리우드 스타들이 VIP시사회에 참여하기 위해 턱시도 등을 차려입고 레드카펫을 걷거나, 핸드 프린팅된 바닥들로 더 유명한 곳. 그러나 차이니즈 극장은 화려한 내부 시설 만큼이나 최고가 음향설비와 영상시설을 갖춘 레퍼런스 극장이다. 이곳에서 영화를 보면 감독의 의도했던 영상과 음향에 최대한 근접하게, 수준 높은 감상을 즐길 수 있다. 이런 레퍼런스 극장은 안타깝게도 국내엔 단 한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2004년 11월까진 우리도 한군데 가지고 있었다. 바로 씨넥스란 이름으로...


<해운대>가 다섯 번째로 천만 관객을 돌파할 기세를 보이며 제법 큰 기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영진위에서 내놓은 2004년 자료를 보면 국내 영화 시장은 세계 9위의 규모로 상당한 큰 시장이다.

얼마 전 개봉한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700만을 돌파하고, <국가대표>도 500만을 돌파하는 등 국내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이며, 이제 할리우드에서도 주목하는 큰 시장 중에 하나가 되었다. 산업규모를 봐도 세계 많은 나라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덩치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성장에 비해 우린 ‘레퍼런스 극장’이 전무할 실정이다. 아니 2004년 11월까지만 해도 한곳 있었다. 바로 삼성영상사업단이 체인점으로 만들기 위해 시험적으로 제작한 씨넥스(CINEX)가 그곳이었다.

정확한 시설비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단관 극장에 들어간 비용은 보통 극장에 5-6배가 정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장시설에 무슨 돈이 많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상과 음향에 민감한 마니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신경써야 한다.

일단 씨넥스가 다른 극장과 가장 큰 차별성을 보인 것은 ‘음향’에 있다. 타자의 경우 씨넥스에서 <반지의 제왕 : 반지원정대>를 보았는데, 그때의 감동은 아직까지 생생한다. 하워드 쇼어의 웅장하고도 서정적인 음악은 그야말로 섬세하게 재생되었고,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마법사 간달프의 분노에 찬 주문의 외침과 악의 절대군주 사우론의 소름끼치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현장에 있는 것처럼 재현되었다.

씨넥스는 물론 최상급의 음향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루카스 감독이 만든 THX인증을 받은 고출력 파워앰프 13대와 JBL의 3웨이 스피커까지. 무엇보다 씨넥스의 감동적인 음향은 ‘공간’ 그 자체에서 쏟아져 나왔다. 음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은 잘 아는 문제지만, 아무리 좋은 스피커와 음향설비를 갖춰도 공간이 엉망이면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씨넥스는 최고의 음향을 들려주기 위해 전문가가 흡음재와 반사판 등을 설치하며 최고의 음향환경을 꾸몄다. 무엇보다 ‘부채꼴’ 모양의 구조가 독특했는데, 이는 최상의 소리를 듣기위한 공간구조라고 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극장은 직사각형 구조로 되어 있는데, 이럴 경우 소리와 난반사와 흡음이 생기고, 멀티플렉스다보니 바로 옆의 소리가 진동에너지로 변해 영화 감상에 방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단관극장의 강점은 말그대로 한관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관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단관이기 때문에 멀티플렉스는 상상할 수 없는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 멀티플렉스의 경우 아무래도 최대한 많은 수의 개봉관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크기가 제약될 수 밖에 없다. 단관의 경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최대한 관객의 편의와 음향 효과를 볼 수 있는 구조로 만들 수 있다.

이를테면 멀티플렉스가 ‘경제성’을 최대의 현안으로 보고 있다면, 단관은 관객위주이며 영화 자체를 최상의 상태에서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레퍼런스 극장은 단관만 덜렁 있다고 성립되지 않는다. 스크린과 음향 설비를 최상급을 써야 하며, 이들은 전문가에 의해 매일 세심하게 관리되어야만 한다. 영화관용 고출력 스피커는 장시간 틀어놓다보면 진동에너지 때문에 아무래도 스피거 자체에 무리가 올 수 있고, 앰프도 세심하게 조정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소리를 들려 주기 쉽다. 극장의 스크린 역시 먼지가 묻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없으면 최상의 영상을 보여줄 수 없다.

다시 씨넥스로 돌아가서, 지금은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여기선 돌비 디지털, DTS, SDDS 음향 포맷이 교차상영되었다. 이들 세가 지는 각각 돌비사, DTS사, 그리고 소니사에거 만들어낸 극장용 음향 포맷인데 아무래도 극장에서 표준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다보니 서로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기 위해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어떤 포맷이 다른 포맷보다 우월한 것은 없지만, 보다 좋은 원본을 입수해 신경을 써서 작업하면 다른 포맷보다 월등하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내 마니아들의 경우는 돌비 디지털보다 약 20-30% 음량이 크게 녹음된 DTS를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는 사운드의 ‘질’보다 ‘양’적인 부분이라 할 것이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극장에서 틀어주는 음향 포맷은 돌비 디지털이다).

어찌되었건 <레드 드래건>이 개봉되었을때 하루 다섯 번 상영한다면 1회는 돌비 디지털, 2회는 DTS, 3회는 SDDS식으로 교차상영 되었다. 마니아들은 입맛에 따라 골라 보거나, 같은 영화라도 다른 사운드 포맷으로 비교 분석해보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씨넥스의 사운드는 한마디로 조화와 균형이 잘 이루어진 음향이었다! 우리는 흔히 소리를 저역, 중역, 고역으로 나눈다. 일반적인 선입견은 소리가 크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소리는 크지 않다. 작은 소리라도 섬세하게 들려주는데 있다. 이를테면 영화에서 재생되는 소리 가운데 가장 큰 소리는 폭발음이 될 것이다. 작은 소리를 찾자면 새울음소리가 아마 될 듯 싶다.

영화는 이런 작은 지저귐부터 큰 폭발음까지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저역,중역,고역이 균형을 이뤄야 제대로된 재생이 이뤄진다. 국내에선 흔히 저음을 강조하기 위해 우퍼의 볼륨을 최대한으로 키워 ‘붕붕’소리만 크게 들리거나, 고역만 강조해 귀를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리의 세 부분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씨넥스의 음향은 ‘환상’이었다.

중앙에선 주인공의 목소리가 명료하게 들리고, 오른쪽에선 피아노 연주소리가, 왼쪽에서 이웃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뒤에선 비행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서로 섞이지 않고 하나하나 분리되서 제대로 들리면서 방향성까지 느껴지는 것. 그게 바로 좋은 영화 사운드의 예라 할 것이다.

최근 극장가엔 ‘디지털’ 상영이 대세를 이루면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질의 향상이 이뤄졌다. 그러나 음향만큼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 음향설비도 중요하지만 씨넥스 같은 공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음향’이 좋기로 소문난 극장을 꼽아보자면 씨너스 이수관과 삼성도 메가박스 M관, 왕십리 CGV 아이맥스관이 있다.

세 군데를 다가봤는데 그중 최고는 씨너스 이수 5관이었다. 그러나 결국 상영관 즉 공간의 문제로 소리의 울림이 생기고 말았다. 한마디로 재생음 외에 잡소리가 끼어들고 말았다. 스피커를 비롯한 음향설비는 호쾌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를 재생했지만, 상영관이 일반 멀티플렉스처럼 직사각형 구조다보니 공간자체가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해도 씨너스 이수 5관의 사운드는 일반 극장보다 최소 세 배 이상 사운드가 좋다. <트랜스포머>나 <클로버필드>처럼 음향효과가 많이 사용된 영화를 볼일이 있다면 꼭 한번 가보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추천을 받고 갔지만, 예전 씨넥스의 감동을 느낄 수 없었던 탓에 실망감을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레퍼런스 극장은 감독과 스탭진에게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가 제대로 영상과 음향을 구현하는지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아울러 관객과 언론에서 최상의 환경에서 제대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준다.

물론 경제적 논리에 따라 멀티플렉스를 많이 만들겠지만, 씨넥스 같은 영화관이 서울에도 한두개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04년 11월 문 닫는 씨넥스는 시청역 근처 삼성생명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이곳에서 한달에 한번 정도 상영회가 열리는데, 직원들을 위한 상영회라 한다. 씨넥스의 최상의 음향을 삼성직원들밖에 들을 수 없다니...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100배이상 큰 규모의 영화시장을 갖고 있다. 물론 여기도 멀티플렉스가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역시 레퍼런스 극장이 존재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차이니즈 극장인데 내부시설도 호화롭지만, 최상의 영화감상을 위해 세심하게 제작된 극장은 언론과 영화배우들을 모아놓고 VIP시사회를 여는 축제의 장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영화가 돈이 안된다고 판단되어, 그나마 있던 레퍼런스 극장마저 문을 닫아버린 삼성의 기업논리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화를 ‘산업’이 아닌 ‘문화’로 봤다면 최소한 유지는 시켜주지 않았을까?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도 멀티플렉스만 지을 게 아니라 각자 한군데씩만 ‘레퍼런스급 단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제작진과 언론 그리고 마니아들에게 최상의 감상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1천만 관객 돌파 영화를 다섯 편이나 보유하고, 극장개봉관만 2,100개나 가지고 있지만 레퍼런스 단관 극장은 단 한 개도 없는 나라. 그게 우리나라 영화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우리의 현주소다.

8/23일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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