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KT '올레' 광고방송 중단사태, 관용과 타협의 정신이 아쉽다.

朱雀 2009. 8.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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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 시리즈로 유명한 KT 광고 방송 중 두 편이 전격 광고가 중단되었다. 한편은 우리에게 익숙한 금도끼 편이다. 나뭇꾼이 연못에 도끼를 빠뜨리자 금도끼를 든 산신령이 나타나자 ‘wow'를, 한번 더 빠뜨리자 이번엔 선녀 세 명이 금도끼를 들고 나오자 ’olleh'를 외친다.

다른 한편은 젊고 예쁜 여성이 젊고 잘 생긴 백만장자를 만났을 땐 'wow'를, 곧 죽을 것 같아 보이는 늙은 백만장자를 만나자 ‘olleh'를 외친다.

지난 10일 여성민우회는 두 편의 광고가 ‘성차별과 성상품화’를 들어 불쾌감과 함께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 KT측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여성민우회는 지난 14일 다시 성명을 발표하고 상품불매운동을 할 것을 예고했다. 결국 KT측은 지난 20일 두 편의 올레 시리즈를 중단하기로 했다.

궁금한 마음에 여성민우회 홈피에 들어가보니 쌍용차 사태에 대해 평화적 해결을 요구하고, 국가위원회 사태에 대해 적극 참여하는 등 깨어있는 진보적 성향이 강해보이는 곳이었다.

홈피의 한 귀퉁이에 보니, ‘백만장자와 섹시녀’편과 ‘금도끼와 선녀’편을 즉각 중단해줄 것을 요청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읽으면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백만장자와 섹시녀’편에 대해선 여성 혐오적 관념 확산과 ‘금도끼와 선녀’편에선 여성의 몸을 남성의 성적 유희 거리로 전락시킨 것을 이유로 즉각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 링크로 들어가서 보세요(해당 홈페이지).

솔직히 ‘백만장자와 섹시녀’편은 보기에 좀 심했고, ‘금도끼’편도 보면서 내심 편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본다면, 그저 한번 웃고 지나갈 수 있었던 광고였지 않았나 싶다. KT가 두 편의 광고외에 다른 광고들을 보면, 우리가 흔히 농담처럼 하거나 우리의 내밀한 속마음을 담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대부분 풍자와 해학을 곁들여서 어떻게 보면 그냥 '허허'거리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런 식의 광고는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선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KT처럼 국내 굴지의 기업이 이런 이미지성 광고를 했다는 점은 여성의 시각에선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즉각 광고를 중단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성의식과 성문화에 대해 좀더 포괄적인 여론 수렴과 환기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기엔 뿌리 깊은 ‘여성 = 피해자’라는 시각 때문이 작용한 듯 싶다. 물론 조선 시대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늘 억압받은 존재였고, 지금도 일자리 문제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또한 사회적 약자라는 부분에도 동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엔 ‘여성부’라는 세계에서 몇 안되는 정부기구가 존재한다. 여성부라는 존재가 있다는 자체가 우리 나라의 여성의 인권이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로 지난 세월동안 여성부가 한 일은 여성의 권익을 되찾기 위해 너무 열심히 하다보니 ‘남성과의 투쟁’으로 점철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여기서는 문제제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갈 것 같아 여기서 접습니다).

이번에 중단 조치된 두 편의 ‘올레’광고는 물론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여성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건 남성상도 마찬가지다(여성단체라 여성의 입장만 생각할 수 있지만). 한마디로 잘 생기고 젊은 백만장자나, 늙고 병들어 곧 죽을 것 같은 백만장자나 우리에겐 농담거리로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남성상들이다. 남성들은 그런 이미지가 방송되었다고 크게 기분 나빠하거나 문제로 삼지 않는다. 왜 남녀의 입장차가 생기는 것일까?

‘풍자’란 어떤 사회나 개인에 대해 익살스러운 모방이나 반어법 등으로 사용되는 방법이다. 따라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 등은 당연히 과장되어 표현될 수 밖에 없다. 백만장자나 섹시녀, 금도끼를 든 신령이나 선녀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면 안 될까?

물론 KT가 잘했다는 말은 아니다. 공기업 출신 기업으로서 좀 더 멋진(?) 광고를 낼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좀 더 문화적인 관용을 가지고 광고를 봐줄 순 없었는지 묻고 싶다. 광고는 광고일 뿐이다. 물론 공중파에서 나오는 만큼 보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일정 부분의 영향은 끼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검증된 바가 없다.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여길 따름 일뿐이다.

단순히 ‘광고 중단’을 요구하기 전에 왜 이런 광고가 불쾌한지 그런 광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리스트를 모으고 어떤 식으로 개선되기를 원하는지 좀더 건설적인 논의와 행동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현재 인터넷에선 이번 사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측면에선 이번 사거이 화제를 모으면서 여성의 인권 등이 나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너무 감정적으로 처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좀 더 여론을 모으고 환기하는 방법이나 시간을 가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소식을 접하는 내내 떨칠 수가 없었다.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광고 한두개를 TV에서 보지 않을 수 있지만, 공중파와 케이블 TV 그리고 각종 언론매체에선 여성의 성을 상품화한 광고들이 여전히 그야말로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해결에 나선 여성민우회의 모습은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한 가지 일에 대해 반발하는 모습으로만 내 눈엔 비친다. 조금 더 냉정한 시각으로 사태를 보고 좀더 넓은 마음과 통찰력으로 사태해결을 위해 나섰으면 어땟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울러 광고 하나를 놓고 용인하지 못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도 아쉽다.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그저 ‘웃기게 표현했네. 조금 도를 지나쳤다. 다음엔 좀 더 건강하게 표현해줬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관용적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안타깝다. 하긴 갈수록 먹고 살기 팍팍해지고, 대결 위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관용의 미덕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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