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도민준의 딜레마! ‘별에서 온 그대’

朱雀 2013. 12. 2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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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준은 왜 사람들을 돕지 않는가? 그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이다. 이미 2회에서 한번 드러난 적이 있지만, 도민준은 자신의 초능력으로 사람을 도와준 적이 있다.

 

그것도 400년전에 시장에서 한쪽 구석에서 벌어진 도박판에서 번번이 돈을 잃고 있는 한 사람이 돈을 딸 수 있도록 도와줬다. 도민준은 아마 그 한번의 도움으로 그가 도박을 그만둘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는 한 번의 행운을 믿고 집안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결국엔 병든 딸마저 노름빚으로 쓰려고 했다. 도민준의 선행은 오히려 그 사람에겐 불행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도민준은 시간을 멈추는 엄청난 초능력이 있는데도, 주변 사람을 돕기는 커녕 오히려 그냥 내버려 둔다. 자신이 돕는 행위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칠까봐 두려워하는 탓이다.

 

그러나 400년전 유일하게 마음에 둔 여성과 똑같이 생긴 천송이가 나타나자 도민준은 고민한다. 하필이면 그녀가 물가에서 떨어지는 듯한 미래를 본 것이다. 그래서 도민준은 신문을 보면서 있지도 않은 운세를 봐주면서 물가를 조심하라고 하고, 결국엔 자신의 초능력을 써서 천송이가 있는 크루즈로 순간이동을 해서 그녀가 한강에 떨어질 뻔한 순간에 구해 침실에 고이 넣어주고 자신은 가려고 한다.

 

결과는? 천송이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도민준과 키스를 하고, 담당 사건의 검사는 도민준을 주목하게 되고, 이재경은 한유라의 클러치를 가져간 인물이 천송이임을 알게 된다.

 

도민준의 선한 행동과 달리 결과는 최악이라고 할 만하다. <별에서 온 그대>4화에서 물에 빠지는 인물이 한유라임이 드러났다. 어떤 의미에서 도민준은 헛수고를 한 셈이다.

 

그러나 도민준이 만약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면? 천송이 역시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다. 도민준이 미래를 엿본 짧은 영상에선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고 신발의 주인이 물에 빠지는 것만 보여주었다.

 

혹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사실 천송이는 한강에 빠질 운명이었다. 그런데 도민준이 구해주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예정된 길을 가고자 하는 운명은 천송이를 중심으로 꼬여가는 것이다.

 

이재경은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자들은 모조리 해치우는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비밀을 쥐고 있던 한유라를 처리하고, 그녀의 클러치백을 갖고 있는 천송이가 그 다음 타겟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4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천송이의 목숨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도민준 역시 위험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최대한 은밀하게 살아온 그는 현재 검사에게 주목당하면서 위태위태하게 되었다. 도민준은 어떤 의미에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상황보다 오히려 매우 나빠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도민준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래를 알게 된 주인공들이 미래를 바꾸기 위해 행동하면 할수록 상황이 꼬여가는 설정의 영화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민준도 그런 영화들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도민준은 사랑을 믿지 않고 어떤 의미에선 냉소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운명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것은 정말 멋지지 않은가? <별에서 온 그대>는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다. 주인공 입장에선 난감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선 상황이 꼬여가면 꼬여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하게 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인간의 노력은 운명에 대항할 때 더욱 빛이 나는 법이 아니던가? 정해진 운명을 향해 그래. 내가 어쩔 수 있겠어?’라고 단념하고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아! 덤벼라!’라고 하면서 아무런 겁 없이 몇 번이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대항한다면 때때로 운명이 바뀔 수도 있지 않겠는가? 도민준처럼 400년을 넘게 산다면 인간사에 무심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인간들은 잘 바뀌질 않고, 탐욕과 시기와 질투로 짧은 생을 허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00년도 안된 짧은 삶이라도 최선을 다해 불꽃처럼 살아가는 이를 만난다면 어떨까? 사랑을 믿지 않던 도민준이 사랑에 빠지고, 운명에 순응하던 그가 운명에 맞서는 것만으로도 사랑은 스스로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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