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이야기

‘내 사랑 내 곁에’, 이건 신파가 아니다!

朱雀 2009. 9. 24. 12:52
728x90
반응형

-스포일러를 다량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점 미리 밝힙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김명민이 주인공을 맡으면서 너무 많은 조명을 받았다. <베토벤 바이러스>로 우리에게 강마에로 익숙해져 있던 김명민은 차기작을 위해 서둘러 자신에게서 강마에의 흔적을 지우고 실감나는 루게릭병 환자로 분하기 위해 전문서적을 읽고 실제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동영상을 보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렇게 탄생한 김명민표 루게릭병 환자인 백종우는 영락없는 루게릭병 환자 그 자체다. 어느 카피 문구처럼, 그는 카메라와 상관없이 백종우가 되어 거기 있었다. 서서히 근육이 굳어 이젠 움직이지 못하고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뺨을 쓰다듬지도 안을수도 없는 고통을 온몸으로 처절하게 열연했다.

그런 김명민의 연기에 관객들은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내고 있다. 반면, 관객의 감정이입을 최대한 막은 연출에 대해선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근데 정말 <내 사랑 내 곁에>는 연출력이 미비한 작품인 걸까?

나는 거기에 반대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신파가 아니다. 영화는 루게릭병 환자인 백종우(김명민)과 그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이지수(하지원)을 통해 우리에게 눈물을 주려한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목적은 루게릭병 환자의 삶과 우리의 현실에 대한 보고서다!


루게릭병은 매우 잔인한 병이다!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어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가 결국 죽는 병인 루게릭은 발병 후 2-5년 내로 죽는 걸로 알려져 있다.

당연하겠지만 루게릭 병은 병원에 입원한다고 낫는 병이 아니다. 그저 진행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추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서서히 죽는 모습을 보여주는 환자나 가족들에게 잔인한 병이며, 속절없는 입원생활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엄청난 병원비로 경제적 곤궁함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또 한번 잔인하다 할 것이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그런 잔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장례지도사인 하지원은 전날 술을 진탕 마신 탓에 가그린으로 입을 헹구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향한다. 그곳엔 휠체어를 탄 김명민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상복을 보여주는 하지원에게 김명민은 제일 비싼 걸로 해달라고 한다.

김명민의 발이 맨발인 것을 본 하지원은 양말을 한 켤레 사서 주는데, 김명민은 신겨달라고 부탁한다. 몸이 불편한 것을 보고 하지원이 신겨주자, 하지원의 어릴적 신상을 떠들면서 같은 동네 출신임을 밝히고, 두 사람은 이내 친해진다.

자신의 어머니를 곱게 단장하는 하지원을 보면서 김명민은 사랑을 느끼고, 장례식이 끝나자 그녀에게 교제를 신청한다. 국화꽃 한송이를 주면서.

<내 사랑 내 곁에>는 매우 불친절한 영화다. 설명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명민과 하지원은 별 다른 연애과정을 겪지 않는다. 아니 그걸 굳이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원을 향해 일방적인 애정을 고백하는 김명민은 몸이 나아지면 정식으로 사귀자며 중국을 다녀오고, 이내 조금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첫 데이트를 병원에서 한다고 칭얼대는 하지원에게 김명민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안하단 말을 대신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교회로 가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병원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한다.

이때 영화는 다소 불편한 장면을 보여준다. 바로 김명민과 하지원의 배드신이다. 애틋하고 아름답기 보다는 그냥 자연스러운 정사장면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는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있을 지 모를 루게릭병 환자의 성생활에 대해 일깨운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다. 이후 김명민의 상태가 악화되어 6인실을 쓰게 되는데, 환자가족으로 등장하는 임하룡은 화장실에서 아내의 사진을 보며 자위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몇 년 만에 기적적으로 아내가 의식을 되찾는데, 다른 환자 보호자가 불러 갔을 때는 다시 의식을 잃은 상황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또한 어떤 인물의 행동에 대해 최소한의 정보를 주거나 심지어 거의 주지 않아 고민하게끔 만든다. 그런 면에서 <내 사랑 내 곁에>는 관련 다큐물보다 더욱 불친질한 영화다.

다큐물도 최소한 관객의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배경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박진표 감독은 영화를 수동적으로 보기 익숙한 관객을 자꾸만 자극해서 생각하게끔 만든다.

가령 영화 중반에 이르면, 김명민은 자신의 곁에서 힘들어 하는 하지원을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 일부러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굴고 화를 내며 심지어 모욕까지 준다. 결국 하지원이 떠나자 혀를 깨물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근육무기력증과 삶에 대한 의지 때문에 자살미수에 그치고 만다. 이런 상황설정은 그 자체로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박진표 감독은 자꾸만 화면을 끊고 다른 장면으로 전환시켜 감정이입을 차단한다. 또한 김명민이 혼자 방줌에 입에서 피를 흘린 것이, 자살시도 였음을 나중에 담당 의사의 입을 통해 알려준다.

단절된 영상과 정보를 통해 현재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관객이 스스로 고민케 한 것이리라.

영화를 위해 20킬로그램이 넘게 감량한 김명민의 연기는 그야말로 루게릭병 환자 그 자체다! 처음에도 다소 야위였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말라가는 그는 결국 마지막에 이르면 정말 곧 숨이 넘어갈 듯 앙상한 뼈만 남긴다.

그뿐인가? 실제 루게릭병 환자를 방불케 하는 몸짓 연기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방송에도 자주 보였지만 세차하다가 넘어지거나, 병원에서 쓰러지는 장면 등은 정말 루게릭병 환자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또한 이젠 말조차 할 수 없어 눈깜박임만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시기엔 컴퓨터로 ‘죽여줘’를 치는 그의 눈빛은 정말 최후를 앞둔 환자처럼 처절했다.

<해운대>로 천만배우로 불리는 하지원은 또 어떤가? 장례지도사로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한 사랑임에도 자꾸만 상태가 나빠져가는 남편을 보며 눈물 짓고 울부짖고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가 눈물겹도록 짠했다. 그야말로 명불허전에 용호상박인 두 사람의 연기였다.

박진표 감독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을 최대한 배제한다. 덕분에 우린 두 남녀 배우의 눈물겨운 신파나 멜로 드라마로 영화가 남지 않고 ‘루게릭 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 알게 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우리가 모르고 있는 어쩌며 외면하고 있는 루게릭 병에 대해 그 어떤 교과서보다 더욱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때문에 퇴원을 고집하지만, ‘자살 방조죄’라며 이를 거부하는 의사에게 삿대질하는 환자보호자. 9년째 깨어나지 않는 남편을 돌보며 끝내 남편의 뺨을 때리며 울부짖는 할머니. 깨어나지 않는 아내를 무작정 기다리며 사랑을 속삭이는 남편 등. 각각의 사연을 지닌 다른 병실식구들의 이야기는 영화의 디테일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상업영화다. 그런 탓인 결국 막바지에 이르면 관객에게 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젠 말조차 할 수 없는 백종우가 핑클의 노래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하지원의 쇼를 보고 눈물 짓고, 답례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하지원이 가슴에 귀를 대고 듣는 장면은 눈물겹다.

또한 뇌사판정을 받아 누워있는 남편을 향해 혼인증명서를 가져와 찍게 하려는 순간, 숨이 멎어 하지원이 울부짖는 장면 등은 분명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허나 그 정도는 약하며 시간도 짧다. 모두가 시체닦는 손이라 무섭고 더러워하는 손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이라며 좋아한 남자를, 하지원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염해 저 세상으로 보내준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결코 신파가 아니다. 멜로가 아니다. 최루성 영화를 원한다면 당신에게 차라리 <애자>를 권한다. 아마 눈이 탱탱 부을 정도로 펑펑 울 수 있을 것이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루게릭 병’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서서히 근육이 굳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못해 죽고 싶어하는 환자들에게 ‘안락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하는 것인지, 무제한적인 병원비용은 언제까지 가족들의 희생에만 맡겨야 하는 것인지, 환자의 성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루게릭병이 유전되지 않는 병임에도 아이 갖기를 원치않는 김명민을 통해 2세 문제까지. 두루두루 넓게 영화는 묻고 있고 당신에게 대답을 청한다.

그저 2시간 동안 편하게 앉아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원했다면 당신은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것이다. 분명 이 시대의 명연기자인 김명민과 하지원은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열연을 펼치지만, 그건 당신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당신앞에 재현하기 위해서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결코 신파가 아니다! 이건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영화다. 김명민과 하지원의 명연기를 보고 싶다면, 다소 불편한 루게릭 병 환자에 대해 알고 싶다면 권한다. 그러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루성 멜로를 원한다면 다른 영화를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