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朱雀 2009. 10. 16.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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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박성래 (베가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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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는 순간 끌렸다. 이 문제는 2009년 나를 가장 괴롭혀온 화두였다.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삶을 내려놓았다. 그가 바위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우리 사회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2년차를 맞이한 현 시점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혹자는 그를 욕하고, 혹자를 그를 ‘경제대통령’이라 부르며 강력한 지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촛불시위때 보여준 그의 소통부재와 미국산 쇠고기 사태와 관련해 보여준 행동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또한 “대운하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4대강’사업은 대운하사업의 이름만 변형시킨 국책사업으로 많은 의혹을 사고 있다.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한채 자신의 의지대로 밀어붙이려는 현 대통령을 보면서 좌절을 느꼈다.

비록 국민과 충분하게 소통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로 돌아가 자신을 찾는 국민을 진심으로 편하게 맞아준 대통령이 결국 ‘자살’이란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 나라는 ‘무엇이 도대체 잘못된 것인가?’는 노전대통령의 서거 이래 나를 괴롭힌 질문이었다.

이 책은 그런 질문에 상당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현재 KBS기자로 재직중인 저자 박성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하늘의 이상’을 가리킨 이로, 이명박 대통령은 ‘땅의 현실’을 인식한 인물로 지목한다. 그리고 오바마는 그 중간에 시선을 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표지그림을 통해 저자는 세 대통령이 지향점이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를 깨워 그의 시선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교한다. 저자가 보기에 노전대통령은 ‘사랑’을 쓴 지도자 였으나, 경멸을 피하지 못했다. 올해초 검찰수사가 그 대표적인 사례리라. 이명박 대통령은 ‘두려움’을 사용하고 있으나 ‘미움’을 피하고 있지 못하다.

반면, 미국의 현대통령 오바마는 ‘사랑’을 쓰고 있으되 ‘경멸’받지 않는다. 또한 그는 ‘두려움’을 마지막 카드로 지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전대통령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모든 난관을 이겨냈으나,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자 했으며, 그 길을 충실히 가면 언젠가는 믿어줄 거라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한나라당과 기존 보수언론은 모든 정치상황을 그에게 불리하게 만들었고, 대통령 재직당시 국민과 소통이 부족했던 노전대통령의 행동은 국민마저 그의 심중을 이해하도록 배려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선거 때만해도 자신의 치적만을 내세우며, 저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몇 년 뒤 대선후보로 나선 그를 보면서 저자는 깊은 인상을 받는다. 발음이 명확하고 주장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변하기 어려워지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것을 해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나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사업을 이끌고 나가고자 한다. 촛불시위가 벌어졌으나, 단지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하고 ‘미움’을 받을 만한 일들은 주변에게 떠넘기고, 생색을 낼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챙기고 있다.

각각 이상과 현실에 너무 몰입한 대한민국의 두 대통령의 대척점으로 오바마가 등장한다. 오바마는 잘 알려있다시피 케냐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인권운동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를 다니며 큰 경험을 지니고 있다. 그의 그런 성장과정은 세상을 보는 그의 눈을 키웠다.

또한 그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오고서도 곧장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 아니라 인권문제를 다루는 시카고의 조그만 법률사무소로 갔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풀뿌리 운동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오바마는 거기서 많은 실수를 경험했다. 그러나 그런 실수를 통해 하나씩 배워나갔다. 2000년 일리노이주의 하원의원 선거에 나선 오바마는 자신을 만나러온 기자에게 잘난 척하고 거들먹 거렸다. 그리곤 선거에 낙선했다. 보통 사람들은 낙선하면 정치일선에서 떠나는 사람도 많지만, 오바마는 실패를 통해 배웠다. 그리고 2004년 상원의원에 당선했다.

2008년 오바마가 대선에 도전했을 때 주변에선 그의 성공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을 이기고 민주당 후보가 되고, 매케인 후보와 경합해 마침내 당선된 것을 보고 전 세계가 놀랐다.

그러나 그의 캠프 인사들과 당시 기자들은 ‘당연한 결과’로 여겼다. 오바마 진영은 ‘존중하라, 힘을 실어주라, 끌어들이라’라는 모토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오바마 진영의 선거원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를 나누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보고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이라고 여겨지면 오바마가 직접 전화를 걸어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오바마 진영에선 선거원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들을 훈련시켜 리더로 만들고, 그들이 다시 조직을 이끌게 했다. 오바마가 우리 나라 대통령들과 가장 비교되는 점은 바로 국민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뜻과 국민의 바람이 맞지 않으면 기다린다. 아무리 그것이 옳다고해도 말이다. 그런데 노전대통령은 어땠는가? 밀고 나갔다. 노사마 회원조차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투덜댈 정도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불도저’라는 별명처럼 자신의 계획대로 끌고 나간다. 아무리 국민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고, 반대편에서 아우성을 쳐도 전혀 듣지 않는다.

오바마가 모범으로 삼는 링컨 대통령은 자신을 ‘얼간이’로 보는 이들을 내각에 참여시켰다. 자신을 아무리 우습게 봐도 일을 잘한다면 기꺼이 그런 대접을 감수했다. 그리고 결국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오바마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내각을 보자. 철저하게 자신들의 사람들로 채워진다. 대통령이 원하든 원치 않든. 포용력이 부족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의 소 제목은 ‘마키아벨리로 본 이명박, 오바마로 본 노무현’이다.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악한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이익을 쫓아 움직이는 인간의 심리를 읽어서 실용적으로 움직이라고 주문했다. ‘실용’을 평소 즐겨 부르는 이명박 대통령과 잘 맞는 인물이라 하겠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그런 실용적인 움직임속에서도 절대 ‘미움’을 사지 않을 것을 주문한다. 비난은 피할 수 없지만 미움을 받게 되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은 마키아벨리의 수제자인지 ‘두려움’을 이용한 통치를 잘 한다. 촛불집회의 참가자를 비롯해 자신의 뜻과 다른 이들을 고소와 고발 등의 조치로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 ‘사랑’을 이용했으나 경멸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에도 실패했다.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전대통령과 지금 미워하는 대통령은 각각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하다.

반면 오바마는 공화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대화를 최대한 나누고 설득하고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1년에 몇 번 큰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지극히 ‘선한’ 지도자다. 그러나 자신의 가신들끼리 서로 팔꿈치로 밀치고 싸우면 즉시 화를 내고, 주변 사람들이 그가 화났다는 사실을 알고 삼가게 할만큼 영리한 자다.

링컨의 리더십을 다룬 <권력의 조건>을 백안관에 끼고 들어갈 정도로, 그는 링컨식 지도자상을 철두철미하게 따라가고 있다. 의료보험 개혁과 사상최대의 적자정부를 물려받았지만 저자는 그러한 이유로 미국의 앞날을 그리고 오바마의 앞날을 밝게 본다.

인간은 이익과 명예를 모두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익만 중시한 나머지 명예를 버렸다. 미국의 오바마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게 이익이지만 그보다 명예를 더욱 중시한다는 사실을 철저히 정치에 이용한다. 이 지점이 명예만 중시한 노전대통령과 이익만을 보고 그 외엔 외면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다른 지점이다.

이건 대한민국 국민에게도 곧장 통용되는 말이다. 우린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을 할정도로 사적인 이익이 아닌 명예나 명분 등을 찾는 행위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만이 아니다. 예상보다 많은 경우 인간은 명예를 위해 기꺼이 이익을 포기한다. 우리 사회에 반쪽짜리 대통령들만이 나오는 것은 우리가 너무 한쪽 덕목만을 중시한 결과가 아닐까?

우리의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항상 상생의 정치가 아닌 상극의 정치를 이뤄내는 것은 아닐까? ‘정치는 악하다’라는 전제가 우리 머릿속엔 내제되어 있다. 마키아벨리는 그런 전제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이론가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링컨을 보며 고대의 이상정치를 다시 현실에 되살렸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대통령, 그리고 그런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사회 모든 계층의 이야기를 듣고,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항상 국민을 존중하는 자세를 보이고, 명령이 아닌 설득으로 다가가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대한민국은 왜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가질 수 없는가?>에 저자는 명백한 답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논거는 상당 부분 논리정연하다. 해법역시 어느 정도 제공하지만, 당장의 인기에만 연연하는 국내 정치계에서 씨를 뿌리고 열매가 맺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가꿀 줄 아는 정치인과 단체들이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 지점이 이 책을 읽고 앎에 기뻐하다가 절망케 하는 지점이었다.


본 도서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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