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21세기판 오이디푸스 -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朱雀 2009. 11. 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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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지구의 멸망을 알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자신의 귀에 들리는 신비한 목소리 덕분에 모든 상황을 알 수 있고, 마치 신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론 커리의 장편소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모든 것을 알 수 밖에 없는 예언자적인 인물로 태어난 주인공이 겪는 일생을 마치 사실처럼 적은 글이다. ‘인류멸망’이란 상당히 무겁고 진부한 소재를 잡았음에도, 작품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존 티보도 주니어(이하 ‘주니어’)는 엄마의 태반에 있을 때부터 신비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목에 탯줄이 두 번이나 감겨 위험에 처했음에도 주니어는 신비한 목소리 덕분에 무사히 죽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그러나 주니어는 신비로운 목소리 덕분에 약 36년 뒤인 2010년 6월 15일 세상이 멸망할 것이란 사실을 안다. 따라서 그는 시한부 인생 아닌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주니어는 태어난 순간부터 선택받은 탓인지,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지능이 높은 존재다. 그는 성장할수록 침울하고 음침한 아이가 되어간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지구멸망’의 운명을 아는 데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귀에 들리는 신비로운 목소리 때문에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무리 절친한 이라도 그에게 등을 돌리면서 정신병자쯤으로 취급해버릴 것이다.

주니어는 어느 순간 비관론에 빠져 약물중독에 빠지고, 불행한 과거를 지닌 여자친구 에이미에게 전화를 걸어 폭언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 정신을 차려서는 자신이 아는 사실을 떠벌리다가 정부요원에 의해 감금되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론 커리 주니어 (비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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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나 ‘시지푸스’를 현대적으로 다시 재해석 한 듯한 느낌이다. 그는 신(같은 절대존재)에게 선택을 받아 빼어난 지능과 능력 그리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과 애인을 불행에서 구원하지는 못한다. 심지어 다시 선택한 인생에서조차 말이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의 스케일은 예상보다 작다. 소설은 집요할 정도로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등장인물의 심리상태와 상황을 그리는 데 골몰한다. 덕분에 우리는 ‘지구멸망’이라는 끔찍하고 거대한 상황에서조차, 그런 상황에 맞닥뜨린 개인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회한을 목격하게 된다.

소설은 97이란 숫자로 시작해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줄어간다. 이는 마치 시한폭탄이 폭발을 향해 다가가는 것처럼 긴장감을 돌게 한다. 만일 주인공처럼 내가 모든 것을 안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그런 상황을 알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어떤 능력을 갖는 것에 대해 ‘축복’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초능력을 얻고 부모보다 가까운 아저씨를 잃고, 평생을 괴롭게 사는 것처럼,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의 주인공 주니어도 몹시 불행한 삶을 영위해간다.

그렇다면 왜 책 제목은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지구멸망이 30년 정도 남은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인생은 과연 무의미할까? 어떻게 보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시한부인생을 살아가는 것인지 모른다. 우린 ‘운명’이란 이름의 시한폭탄을 장착하고 태어난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시한폭탄이 몇시에 맞춰져 있는지 모르는 탓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마찬가지다. 비록 지구멸망이란 끔찍한 재앙을 알고 있고, 그런 상황을 바꿀 수 없다해도 우리의 인생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는 그 순간 ‘희망’을 노래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다시 조명하게끔 만든다.

내용과 결말을 알리면 책을 읽는 재미와 의미가 반감하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 깊이 있게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론 커리는 겨우 두 번째 발표작인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통해 삶의 의미와 희망이란 쉽지 않은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단언컨대 <모든 것이 중요해지는 순간>은 무척 재미있다. 또한 감동도 있다. 아마존 닷컴 베스트 도서로 선정되고, 미국의 각종 언론 매체로부터 받은 각종 호평이 전혀 아깝지 않은 소설이다. 필독을 권하는 바이다!

본 도서리뷰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12/18 티스토리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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