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읽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더 발칙한 한국학'

朱雀 2009. 11. 2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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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게 한국에서 보낸 시간 탓일까? 아님 UC 버클리에서 영문학과 수사학을 전공하고,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국내에선 1996년 이후 꾸준히 여러 매체에 기고한 탓일까?

엑스팻(expat)으로 살아가는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더 발칙한 한국학>은 읽는 나 같은 한국인을 상당히 불편하게 했다. 들어가는 글에서 스콧 버거슨은 한국 사회에서 좀더 받아들여지길 위해 ‘성전환 수술’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적는다. 거기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인’되는 우리 문화에 대해 뼈있는 농담이 절절히 흘러 나온다.

한국에 와서 이곳의 매력에 흠뻑 젖어 고국으로 돌아갔다가, 이내 다시 한국으로 오지만 결국 영영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땅위의 외국인을 가리키는 ‘엑스팻’처럼, <더 발칙한 한국학>은 그런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책과 방송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더 발칙한 한국학>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백인들에겐 잘해줄 거란 우리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백인이라는 이유로 두려움과 터부의 대상이 되어 주문이 거부당하자 “내가 외국인으로 보여?”라고 일행 중 한명이 화내면서 있었던 일화를 시작하는 데는 저자의 교묘한 장치가 느껴진다.

이후 <더 발칙한 한국학>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느끼고 당하는(?) 감정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다양한 외국인들을 인터뷰하며 써낸 <더 발칙한 한국학>은 전방위적인 관점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담아낸다.

더 발칙한 한국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J 스콧 버거슨과 친구들 (은행나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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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인도인이 한국에 와서 원장을 속이고 강사를 하는 일. 한국에 호의를 갖고 왔다가 외국어강사일을 하다가 어떤 원장에게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노동력을 착취만 당하는 사건. 말썽꾸러기 친구와 대사관 파티에 갔다가 대사 부인을 희롱해 도망쳤던 일 등등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건을 통해 우린 ‘한국’이란 나라를 좀 더 다른 외국인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비춰지는 ‘한국’은 매우 불편하다. 미국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으로 회생했건만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로 교묘히 그런 사실은 은폐하고, 특정 인물의 능력과 민족적 이유로 ‘광복한’ 것으로 거짓된 신화를 생산하고 알리는 나라.

미군에게 당한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문에 백인에 대해선 피해의식과 반발심을 가진 한국인들. 자신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상한 의식이 넘쳐나는 이상한 나라.

처음에 불편한 점들을 어느 정도 이겨내고 읽으면 곧 속도가 붙여 재미있게 읽게 된다. 저자에 ‘스콧 버거슨과 친구들’이라고 적혀있는 것처럼, 한국의 문화를 사랑해 이곳에서 살게된 다양한 계층의 외국인을 인터뷰한 2장과 3장은 특히 재밌다. 우리나라의 홍대 인디 문화에 외국인이 큰 역할을 했고, 한국 살사의 기원이 한 외국인이 ‘마콘도’라는 바를 열면서 시작되었으며, 한국에 아내를 둔 이가 북한을 찾아가 여행하는 이야기등은 스콧 버거슨이 얼마나 다양한 시각에서 ‘한국’을 재조명하고자 애썼는지 새삼 알게 한다.

그러나 진정한 충격은 우리에게 어쩌면 벅찬 감동과 실망이 교차하는 ‘2008년 촛불집회’에 대한 그의 보고서다. 대다수 민중의 기억과 달리 저자는 종로에서 살면서 자신이 보고 느꼈던 ‘촛불집회’의 모순을 과감하게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촛불집회’는 지난 10년의 정권을 잃은 386세대가 이명박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촛불집회 기간 동안 나타난 현상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소통이 없다고 말하면서 정작 소통을 거부한 것은 촛불 시위대였고, 경찰보다 폭력을 먼저 휘두른 것은 시위대 였다는 식으로. 아마 이 대목에 이르면 비록 실패했지만 ‘촛불 집회’에 대해 나름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이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베라 훌라이터의 <서울의 잠못 이루는 밤>이 그나마 한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한 인물이 좀 더 보기 편한 관점에서 썼다면, <더 발칙한 한국학>은 여지없이 통렬하게 자신이 본 한국의 모순에 대해 따지고 들어가고 통쾌하게 풍자해낸다.

아마 이 책을 읽는 한국인은 두 가지 중의 한 가지 입장을 택하게 될 듯 싶다. 하나는 스콧 버거슨을 향해 반발의 칼날을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고 좀더 자신의 시각을 넓히는 쪽이리라.

그 어느 쪽을 당신이 택하든 ‘불편하다’는 데 돈을 건다. 스콧 버거슨은 한국에서 10년이 넘게 살면서 각종 사회이슈를 누구보다 민감하게 파악하고, 스스로 1인 잡지 <버그>를 발행한 정도로 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그는 성역이나 읽을 한국인에 대해 크게 게의치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없이 쏟아내는 인물이다.

책머리를 보니 이 책은 이전에 쓰여진 책들에 비해 상당히 순화된 것 같던데, 이전의 책들은 어느 정도 수위였을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동안 한국에 대해 상당한 호의를 가지고 쓴 책이나, 가벼운 에세이집을 보았다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아마 그렇다면 당신은 이 책을 읽는 순간, 불쾌함에 책을 던져버리고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책이 다 있어!’라고 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좀 더 우리가 사는 한국에 대해 폭 넓은 시각으로 보기로 작심하고 봐야만 어느 정도 충격파를 견뎌낼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일부 내용에 대해선 반대하지만, <더 발칙한 한국학>을 읽고 오늘날 내가 사는 한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한 계기를 줬다는 사실은 밝혀야 겠다. 아마 그걸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할 것이다.

본 도서리뷰는 Daum책과 TISTORY가 제공하는 서평단 리뷰 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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