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독서의 즐거움

안병도 작가와의 인터뷰, '무림파괴자'

朱雀 2010. 1. 13.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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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오직 전업소설가로서 <광개토태왕 정벌기> <만월의 나라> <사이버고스트> <난중기담>등등. SF-무협-팩션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무제한의 상상력을 풀어놓은 안병도 작가의 신작 <무림파괴자>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았습니다. 작품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괜찮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


관련 글: <무림파괴자> 리뷰

2009/12/14 - [독서의 즐거움] - 상상의 금기를 깬 ‘무림파괴자’


Q. <무림파괴자>로 제목을 지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현대에 사는 백수가 무림이라는 이계로 떨어지면서 시작됩니다. 거기서 살아남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능력으로 ‘총’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과학의 산물을 이용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총이라는 물건은 무림에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물건입니다.

현대 사람이 판타지나 무림등 이계에 진입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관련 소설이나 애니도 많지요. 하지만 실제로 현대의 사상이나 기술, 지식은 그 자체로 전혀 이질적인 문명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 무공이란 개념이 엷어지고, 무술이 본격적으로 파괴된 이유가 바로 총이었습니다. 의화단 사건이나 백련교도의 난에서 총 앞에 무림인들이 허무하게 무너져버렸기에 이후로는 무(武)로서 협(俠)을 실천하려는 생각 자체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즉 무협의 종말이지요.

<무림파괴자>란 제목은 나름 이런 진지한 고민에서 지었습니다. 단순히 충격적이고 얄팍한 자극을 위해서 지은 게 아닙니다.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현대의 백수가 무림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총을 사용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행동이 그 세계의 기본적인 존재의미를 파괴하게 된다는 의미지요.


Q. 27세의 백수가 이계진입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적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그야 무협소설은 청년 백수가 주 독자니까 감정이입을 위해서지요... 라고 하면 안되겠죠?

사실은 청년 백수란 위치는 가장 좌절감이 크고 사회에 대한 고민과 불만이 많을 계층이기에 선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에 대한 경각심을 주겠다’ 라는 거창한 목표의식까지는 아니라도,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취업 못한 청년백수라도 결코 그 인간이 쓸모없어서가 아니라는 주제의식을 나름 담고자 했습니다.

<무림파괴자>는 어떻게 보면 흔하고 허무맹랑한 이계진입 판타지란 장르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현실에서의 실패자가 다른 공간에 가서 쉽게 성공하고 꿈을 이룬다는 현실도피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현실이나 무협이나 삶은 힘들고 노력에 비해 항상 결과는 초라합니다. 하지만 어느 곳이든 진심으로 열정을 다해 노력하면 한발자국씩 성공을 쌓아갈 수 있으며 결국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싶습니다.


Q. 각장의 제목이 영화와 애니의 패러디이던데, 2권까지 어떤 작품들을 패러디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A: 영화와 애니 제목에 약간의 변형을 주거나 혹은 그대로 각 장 제목으로 썼습니다. 또한 이 제목은 단지 웃기고자 하는 이외에도 각장의 주된 주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제 1 권

제 1 장 백수여, 무림행 급행열차를 타라!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류승안 감독의 다치마와리의 부제)

제 2 장 진현, 대지에 서다!

-> 건담, 대지에 서다. (일본 애니 기동전사 건담의 제 2 화 부제목)

제 3 장 너희가 영웅을 믿느냐?

->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김승우 주연의 1996년 한국 영화)

제 4 장 남궁세가에 어서 오세요! (일본 애니 - 피아캐롯에 어서 오세요!)

-> 피아캐롯에 어서 오세요!

제 5 장 첩혈쌍웅.

-> 첩혈쌍웅. (오우삼 감독 주윤발 주연의 전설적 홍콩 느와르 영화)

제 2 권

제 6 장 사차원을 달리는 소녀.

->시간을 달리는 소녀. (최근에 개봉했던 일본 애니.)

제 7 장 내일을 향해 쏴라!

-> 내일을 향해 쏴라. (1969년 개봉한 유명한 미국 서부영화)

제 8 장 유성검의 비밀.

-> 유성검의 대결 (1976년 개봉한 왕우, 성룡 주연의 무협영화)

제 9 장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1999년 개봉한 이명세 감독의 한국영화)

제 10 장 누가 대협을 모함하는가?

->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 (1988년 개봉한 미국 실사-애니 합성 영화)




Q. 작품 곳곳에 영화와 애니를 패러디한 대목들이 많던데, 그중 가장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여겨지는 곳 몇 군데만 알려주십시오.

A: 이러니까 꼭 작가 추천 장면 같군요. 의외로 깊은 패러디를 많이 해서 알아차리기 미묘한 부분이 저는 오히려 제일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알아차리기 어려운 부분 몇 군데를 잠깐 알려드리겠습니다.

(1) 약간 비밀이었지만 작품속에서 진현과 두 번이나 싸우는 흑연삼살성(黑煙三殺星)은 기동전사 건담의 ‘검은 삼연성(三連星)’을 패러디 했습니다. 이들의 합체 기술 이름인 추운진혈격도 사실은 애니의 ‘제트 스트림 어택’ 의 변형이지요. 이름도 염대가(오르테가), 마주(매슈), 가허(가이아)로 거의 비슷하게 지었습니다.

(2) 흑연삼살성이 주인공의 방탄조끼를 보고 ‘그런 걸 쉽게 만들어 내다니 동이땅의 사람들은 무슨 괴물이냐?’ 라고 말하는 부분은 건담의 다른 부분에서 깨지지 않는 건담의 장갑에 놀란 지온군 파일럿이 ‘연방의 모빌슈츠는 괴물이냐?’ 라는 부분에서 따왔습니다.

(3) 갑자기 여운룡의 억센 팔이 내 어깨를 감았다. 그러자 여운룡과 나는 아무 밀착된 거리로 몸을 붙이게 되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 강호에 영웅은 단 두 사람 뿐이오.”

“그게 누구요?”

“한 사람은 나고 또 하나는 소형제요.”

“뭐라고요?”

잔뜩 폼 잡으며 말하는 것 같은데 어쩐지 어색하다. 이걸 어디서 봤지? 나는 여운룡의 말을 들으며 혹시 곧 이어서 천둥이 치며 내가 놀라서 뭔가 떨어뜨려야 하는 게 아닌지 망설였다.

-> 이 부분은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유비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것에 놀라 유비는 손에 들던 잔을 떨어뜨리고는 마침 치는 천둥에 놀라서 그랬다고 해서 조조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지요.


Q. 주인공의 이름이 안진현이던데, 이건 작가의 성을 따라간 겁니까?

A: 물론 그렇습니다! 라고 말하면 너무 간단하지요?

언령(言靈)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물은 그 이름 자체가 가장 강력한 주술 이고 주문이라는 뜻이지요. 안진현이란 이름은 그 자체에 대단한 뜻이 있습니다.

우선 안(AN)은 고대 수메르의 창조신 이름입니다. 수메르는 모든 신화의 기원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가장 오래된 신화이지요. 그곳의 창조신이라면 모든 창조신의 아버지 정도 될까요? 그런 신의 이름을 성으로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름인 진현은 ‘진실로 나타난다.’ 란 의미지요. 즉 ‘수메르의 창조신이 여기에 직접 나타났다’ 는 것으로 안진현의 전생 내지는 환생을 의미하지요. 향후 작품속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부분입니다.

6. <무림파괴자>를 보면 현실과 무협에 대한 풍자적인 비판 대목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기존 사회와 무협 소설에 대해 어떤 반감을 갖고 계신지요?

현재 한국 사회는 매우 불안합니다. 세련된 문화는 가지고 있지만 이에 비해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빈부격차는 물론이고, 소득은 적어지고, 외모지상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합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서로가 ‘같이 사는 사회’ 가 아니라 점점 ‘나만 혼자 사는 사회.’ 란 생각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대사회에 비해 무협은 나름 야만적이지만 또한 따뜻한 면을 가지고 있지요. 의리와 정을 중시하고 협을 숭상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협을 그린 무협소설도 많은 부분에서 합리성이 너무 모자라거나 천편일률적인 판타지로 흐르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 점이 제가 가지는 반감이겠지요.

따스함이 없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와 틀에 박힌 듯 정형화되어 버린 기존의 무협소설에 대한 비판의식과 더 나은 지향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촉구하고자 하는 것이 나름 이 작품에서 던지는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Q. 안진현은 총을 가지고 싸우는데, 총기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A: 사실과 무협의 기반이 되는 무공과 총은 매우 이질적이기에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종종 우리는 영화 등에서 엄청난 무공으로 싸우는 무림고수를 보면서 ‘에이, 저거 총 있으면 그냥 쏴버리면 되겠네. 나한테 총만 있으면 가서 모두 쓸어버릴수도 있겠다.’ 란 상상을 하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정말 당신이 총을 가지고 무림에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원하는 대로 총만 가지고 가면 무적이 되고 고수가 될까? 하고 상황을 한번 만들어서 시뮬레이션 시켜보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대리체험이지요. 당신이 어느 날 총을 가지고 무림에 가면 대략 이런 상황과 이런 심정이 될 것이다. 라는 것 말입니다.


Q. 그동안 <광개토태왕정벌기><임진왜란><난중기담>등 정통적인 역사소설을 많이 쓰셨는데요. 이번에 B급 감성을 지닌 <무림파괴자>를 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A:역사소설은 쓰는 사람에게는 약간의 사명감을 주고 읽는 사람에게는 이야기와 인물의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가벼운 농담 하나를 넣거나, 재미있는 상황 하나를 만드는 데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많습니다. 때문에 그동안은 약간 자제한다고 할까, 스스로의 ‘끼’를 억눌러온 면이 있습니다. 재미있게 하고 싶은 말은 많은 데 그게 작가인 제 머릿속에 막혀 있었던 거죠.

무림파괴자는 그런 면을 과감하게 해방하기 위해 일부러 B급 감성을 지향했습니다. 고급적인 면보다는 서민적이면서도 솔직한 인간 심리를 묘사하려는 의도입니다. 때문에 좀 더 과감한 개그나 현실비판이 가능해졌습니다. 이 부분에서 좀 더 많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데 역점을 두려 합니다.

Q. <무림파괴자>를 집필하면서 많은 참고를 한 작품이 혹시 있습니까?

A: 무림의 기초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는 역시 김용의 작품 <천룡팔부>, <소오강호>, <신조협려> 등을 많은 작품을 참고 했습니다. 총기를 이용한 싸움에서는 홍정훈의 <월야환담>의 영향을 받았지요. 이 밖에 개그감각에서는 유기선의 <극악서생>도 재미있게 읽으며 참고했습니다.

영화에서는 <매트릭스> 의 영향도 받았는데 그것은 작품 초반이 아닌 후반부에 나오게 될 예정입니다.

이 밖에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은 전쟁소설가로 유명한 김경진씨입니다. 총기 전반에 관한 브리핑도 해주시고 관련 밀리터리 서적도 빌려주셨지요.


Q. 1부 8권으로 예정되어 있는데요. 8권이나 되는 분량을 잡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이제까지 한 작품을 그리 길게 쓰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1부는 6권이 최고였지요. 이번에 <무림파괴자>의 분량을 길게 잡은 것은 긴 호흡을 잡아서 보다 정교한 전투와 심리묘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총이 무협에 들어갔을 때 ‘과연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움직일까?’는 바꿔서 말해 외계인이 갑자기 광선총을 들고 지구에 떨어졌을 때 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을 독자와 작가가 함께 마음껏 즐겨보자는 것이지요.




Q. <무림파괴자>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A: 보통 ‘이계진입물’이라고 하면 그냥 현실에서 루저였던 인간이 낯선 세계에 들어가 단숨에 능력을 얻고 미녀도 얻어 마구 쏴부수고 거들먹거리는 대리만족 용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무림파괴자>는 기본적으로 당신이 만일 무림에 정말 떨어졌을 때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백수라는 표준모델 안진현이 그 안에서 무공이 아닌 현대에서 가져간 무기 약간과 지식만 가지고 어떻게 하면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지켜보면서 과연 사람이 공간을 막론하고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게 무엇인지 웃으면서도 한번쯤 생각하게 해보고 싶습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A: 무림파괴자를 처음 접하는 분들은 단순히 ‘이게 뭐야? 무림에 왠 총?’ 하며 비호감이란 선입관을 가지는 분이 많습니다. 아니면 제목 때문에 ‘또 그저 그런 이계진입깽판물 하나 나왔네.’ 라며 안이하게 대충 쓴 소설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림파괴자는 가볍게 웃어가며 읽을 수 있게 썼지만 그 안에서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이질적인 문화가 다른 문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등등 많은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글 행간에 숨어있는 많은 암시와 메시지를 찾아가며 읽어보신다면 더 많은 것을 얻으실 거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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