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말하다

'찬란한 유산'이여, 신화가 되라!

朱雀 2009. 7. 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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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된 <찬란한 유산> 시청율은 약 39%로 결국 40%를 넘진 못했다. <찬란한 유산>의 팬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찬란한 유산>에 대한 감동과 재미는 더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번주 방영된 <찬란한 유산>을 먼저 살펴보자!

항상 서로에 대한 애정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해왔던 선우환(이승기)와 고은성(한효주)는 이번에 자신의 마음을 토로했다. 토요일 방영분에선 이승기와 흔들다리위에서 키스신을 감행했고, 고은성은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나 22회 방송에서 고은성은 안타깝게 외친다. “내게 다가오지 말아요!”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고은성은 선우환에게 끌리고 좋아한다. 허나 그녀의 처지가 그것을 막고 있다. 그 옆에는 항상 그녀만을 바라보는 박준세가 있고, 선우환에겐 유승미(이젠 어쩔 수 없이 원수가 되어버린)가 있다. 그리고 그녀를 사기꾼으로 여기는 모녀와 죽은 아버지(아직 살아있지만) 잃어버린 남동생이 있다. 이런 복잡한 사연 때문에 그녀는 몹시 힘겹게 선우환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밀어내고 있다.

22화에서 고은성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나 그 사람 좋아해”라고 하지만 자신의 사정 때문에 그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세뇌하고 있음을.

예로부터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은 수 많은 문학작품의 테마였다. <로미오와 줄리엣>,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등등. 서로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안타까움은, 청춘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찬란한 유산>은 그게 다가 아니다. 이제 유승미(문채원)은 22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냈다. 선우환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이미 그의 마음이 고은성에게 기운 것을 눈치 챈 김미숙이 ‘포기할 수 없니?’라고 넌지시 묻자, 그녀는 울부짖는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내가 이런 짓 까지 했겠어?”라고. 그 한 장면으로 문채원은 그 동안의 답답하고 공감가기 어려운 캐릭터에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되살아났다.

본디 착한 사람이지만 엄마가 하는 행동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기 위해 한 사람을 함정으로 몰아넣은 승미. 그녀는 <찬란한 유산>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물보다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캐릭터였다. 덕분에 표현하기 어려웠고, 심정적으로 이해가지만 드라마를 볼때마다 항상 답답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어제 그 한 장면으로 그런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결말을 향해 무섭게 질주하는 <찬란한 유산>은 각종 밑밥을 꾸준히 던지고 있다. 백성희(김미숙)은 박준세의 아버지 박태수를 만났고 손을 잡을 것을 제의했다. 그러면서 그녀가 한 말은 걸작이었다. “전 당신이 아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서두를 꺼낸 자신의 본심을 적당히 섞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화술을 보여주었다. 진실속에 거짓말을 섞어 상대방을 속이는 전술은 매우 고급스러운 기술이라 드라마를 보며 감탄했다. 박준세는 선우환과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는 고은성을 보다 못해 자신과 레스토랑을 함께 운영할 것을 제의했고, 고은성은 승낙했다. 그리고 변호사를 선임해 백성희 모녀와 소송할 계획이다. 한마디로 어지러운 합종연횡이 진행중이다.

22화에서 <찬란한 유산>이 던진 다른 밑밥들도 살펴볼까? 선우환은 설렁탕 한 그릇 배달을 투덜거리면서 간다. 그리고 거동이 불가능한 할머니를 보살피는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허름하고 낡은 지하에서 설렁탕 한 그릇 값밖에 없어 배달부가 오자 미안해하면서 그는 수고비로 사탕 두 개를 내민다. 사실 처음 이 장면이 나올 때 ‘넘 작위적이네’라고 콧방귀를 뀌고 있었다. ‘함께 사는 세상’을 강조한 드라마의 이벤트성 끼워넣기 장면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수고비로 사탕을 내밀고 선우환이 그걸 받아들고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변했다(한마디로 항복했다^^).

선우환은 어렵게 살아가는 노부부를 보면서 지난날 방탕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여태까지 선우환이 고은성에 의해 변했다는 견해에 적극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웠지만, 이번 에피소드의 등장으로 인해 어느 정도 반론이 가능해졌다. 원래 선우환은 막되먹은 이가 아니었고, 일을 하면서 점차 자신의 본성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고은성의 절친 이혜리는 선우환을 향해 마음이 기우는 그녀를 닦달(?)하면서 “사랑은 언제든지 또 온다. 다시 올때 힘들어서 그렇지”란 식의 대사를 읊었다. 그녀는 현재 박준세의 레스토랑에 자주 찾아오는 빈대손님 이형진과 티격태격하는 사이고, 둘의 사이가 사랑하는 사이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충실한 밑밥이다.

백성희를 찾은 고은성의 아버지 고평중은 ‘자수’할 생각이 있다고 밝혀, 백성희의 파멸에 결정적인 작용을 할 것을 암시했다. 환의 여동생 선우정은 푼수 엄마 오영란과의 대화를 통해 일을 할 것을 말해 당당한 커리어 우먼이 될지도 모른 가능성을 미리 보여줬다. 장숙자 사장은 표집사를 통해 은밀히 백성희 모녀의 뒷조사를 하고 있으며, 환의 친구 진영석의 바에서 일하는 은우는 고은성과 거의 재회할 뻔 했다.

이렇듯 <찬란한 유산>은 여러 가지 복선과 암시를 깔아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충분히 납득이 갈만큼 시청자들의 ‘암묵적인 동의’를 세뇌시켜 놨다. 근래 이만큼의 드라마가 있었던가? <찬란한 유산>은 분명 현대판 캔디의 변주곡이다. 그리고 거기에 등장하는 나쁜 남자 ‘이승기’와 백마탄 왕자 배수빈은 전형적인 설정이다.

그러나 풀어내는 과정은 전혀 진부하지도 식상하지도 않다. 무척 잘 조율된 각본과 세련된 연출은 보는 이의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 정도 인기작이면 작가와 연출가는 실수하기 쉽다. 주인공들에게 포커스만 맞춰 주변인들을 챙기지 못하고 충분한 복선을 미처 깔아두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22화까지 진행되었음에도 위에서 밝힌 것같이 여러 가지 복선과 등장인물의 다양한 행동을 통해 앞으로 더 자유도가 높은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이 정도의 충실한 각본을 가지고 일관되게 세련된 연출을 한 드라마는 요 몇 년 사이에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찬란한 유산>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바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 안엔 장숙자 사장으로 대표되는 진성식품의 정신은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다. 본래 핏줄인 선우환에게 회사를 물려주려했던 장숙자는 고은성과 일주일을 함께 지내곤 그녀의 마음에 감명을 받아 유언장을 고쳐 상속인으로 그녀를 지명했다.

‘재산이 아니라 뜻을 물려준다’ ‘측은지심이 있다’등의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너무 교과서적이고 교훈적이라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시키기 쉬운데, <찬란한 유산>은 워낙 대본이 잘 되어있고, 반효정의 연기가 워낙 좋아 오히려 재미와 감동을 더해주고 있다.

엇갈린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세상을 향한 각자의 가치관을 펼쳐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찬란한 유산>은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다! 따라서 나는 <찬란한 유산>이 신화가 되길 바란다.

서두에서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찬란한 유산>은 40% 바로 앞에서 주저하고 있다. 제작진과 출연진은 제몫을 다했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는 이런 엄청난 완성도의 드라마를 보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화를 내고 싶을 정도다. 이런 드라마는 봐줘야 한다. 그리고 40%를 넘어 꿈의 시청율인 50%가 되길 기원한다. 그래서 단순히 2009 한 해의 인기 있었던 드라마, 화제의 드라마가 아니라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쓴 신화가 되길 바란다.

<찬란한 유산>은 그만한 명패를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여 <찬란한 유산>을 본방사수 해주시고, 주위에 권해주길 부탁한다. <찬란한 유산>은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되어야만 한다.

백성희를 빼곤 단 한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으며, 악녀로 분류되는 백성희조차 자신의 자식인 유승미를 끔찍이 생각하는 모습을 통해 동정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그뿐인가? 주인공 고은성의 아버지 고평중은 비록 한순간의 실수이긴 했지만 보험사기를 친 장본인이며, 오영란 모녀는 할머니의 유산으로 쇼핑이나 하며 지극히 소비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어하는 속물들이지만 할머니의 죽음까지 바라는 말종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고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는 <찬란한 유산>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까지 고민케 하는 드라마다. 이런 드라마가 오늘날 우리의 신화가 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작품이 신화가 될 수 있겠는가? 꿈의 50% 시청율을 달성한 <대장금>도 살펴보면 중간중간 어설픈 화도 많았고, 작위적인 설정도 많았다.

결코 <찬란한 유산>만큼의 완성도를 지니지 못했다. 하여 나는 <찬란한 유산>이 신화가 되길 바란다! <찬란한 유산>이여 신화가 되어,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돈에 대해,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달라! 당신들은 여태껏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해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찬란한 유산>이여, 한국 드라마계의 신화가 되라! 우리 시대의 신화가 되라!

이미지출처: 다음 검색
-상기 이미지는 인용목적으로 쓰였으며, 모든 권리는 제작사인 SBS 방송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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